[탄탄스님의 ‘산방원려(山房源慮)’] 적멸(寂滅)의 본질
[탄탄스님의 ‘산방원려(山房源慮)’] 적멸(寂滅)의 본질
  • 탄탄(呑呑) 스님
  • 승인 2018.07.2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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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呑呑)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여진선원 주지 동국대 출강

장마와 태풍이 지나고 나니 연신 태양이 뜨겁다. 도량을 둘러 보고 운력을 좀 하려니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강렬한 자외선에 노출되어 쓰라릴 지경이다.

삼라만상이 태양의 계절 여름을  잘 이겨내어야 결실의 가을을 맞이하듯, 여름이어서 뜨거운 태양 빛이 당연하다고 여겨야 할테지만,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밤의 괴로움을 이 또한 인생고 이려니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의 유력한 언론은 대부분 지방지 이지만 국내 지방지의 현실은 열악하기만하다. 그동안 보수를 자처한 중앙 4대 일간지의 편파적인 보도로 많은 비난이 있었고 양식있는 지식인들은 외면 하여 왔지만, 균형감있고 올바른 정론지를 기대 하기는 어려운듯 하다. 지방지나 군소 언론, 더 나아가 모든 대중이 SNS를 통하여 정보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사회에서 미디어가 알권리와 권력과 비리를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만 해주어도 사회는 이토록 혼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설하고,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에 대한 시사적이고 현실적 문제를 거론해 볼까 여러번 고심 하다가 결국은 2562년전 역사적으로 이 땅에 오시어 인류에게 큰 깨우침을 준 부처의 사상과 가르침에 대한 글을 써야 할 듯하다.

부처의 깨닫기전의 이름은 ‘고타마 싯타르타’였다.

지금의 네팔 지역에 있던 일종의 작은 공화국 ‘카필라바스투’의 왕자로 태어났다.

샤카족의 왕인 부친은 깨끗한 쌀(정반왕) 이라는 ‘슈도다나’이었고, 어머니는 코살라 왕국의 공주였던 마야 부인이다.

부처는 태어나는 그 순간 부터 황금수저보다 더 최상위인 왕족 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색적이며 늘 명상하였고 일상의 삶에 대하여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러한 성향은 일주일만에 어머니를 여윈 아픔과 왕국의 정치적 상황이 어렵고 복잡한 양상이 요인이었지 않나 추정하여 본다. 결국 고타마는 스물아흡 되던해 세상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찿아 수행자가 되었다.

경전에서는 부처의 출가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사문유관’의 이야기가 전한다.

‘아시타’라는 선인이 고타마가 태어날 때 예언하기를 성장하여서 현실 세계에 머무르면 전세계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될 것이며, 출가를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사생의 대자부’, ‘위대한 각자(깨달은이)’가 되리라는 예언이 있었다.

부친 정반왕은 온갖 방법으로 아들의 출가를 막으려 하였지만, 부처는 궁전을 벗어나게 된다. 성문의 사대문 밖에서 만난 나이든 노인과 병든 사람과 그리고 죽은 시체를 보고 ‘생로병사(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와 인생 무상을 절감 하던 중 수행자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는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부처에게는 사랑하는 부인과 갓 태어난 아들이 있어 장애가 아닐 수 없었으나, 단호한 심정으로 6년 동안의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고행길을 나서 왕궁에서의 온갖 쾌락을 만끽하며 살던 삶을 던져 버리고 극심한 고행을 스스로 선택한다.

그러나 이또한 옳은 수행의 방법이 아님을 깨달으며 극단적 고행이나 쾌락이 아닌 ‘중도’의 명상방법을 통하여 마침내 무상의 깨달음을 얻고 '정각'을 이루워 부처가 된다. 6년의 고행을 마치고 서른다섯이된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베나레스’ 근처의 사르나트(녹야원, 사슴동산)에서 첫 설법한 이후 삼십오년 동안 우기를 제외 하고는 여러곳을 다니며 부자와 가난한자, 지위가 높고 낮은자, 남녀의 구별이 없이 자신의 법(불법)을 근기에 맞게, 모든이들에게 설 하였으니 부처와(불), 가르침(법), 부처를 따르는 승단(승)에 귀의하면 누구든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자가 될 수 있도록 하였으니,불법문중(불가)이 태동한 인연이다. 쉼없이 서른 다섯해동안 중생에게 무명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을 주시다가 여든살이 되던 해 ‘쿠시나가르’에서 니르바나(열반)에 드신 것이다.

불교는 인도 전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가 오늘날은 세계 최대의 종교로 성장 하였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힌두교에 흡수되어 종교로서의 모습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부처의 가르침인 불교의 기본적인 흐름은 일체개고(모든것은 괴로움에서 출발한다)이다.

중생이 처한 현실에서 겪고있는 모든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나 어떤 절대적 존재에 의해서 주어진 필연적인 것으로 해석 할 수 없다.

부처는 중생의 고통 또는 괴로움 이란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고하는 인생은 사고(네가지 고통)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애별리고), 미워하는 이와 만나지는(원증회고), 구하고자 하지만 얻을 수 없는(구불득고), 오온(색-육체, 수-감각, 상-상상, 행-마음작용, 식-의식)이 불같이 일어나 생기는 고통 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 고와 백팔번뇌(인간은 108가지의 번뇌의 수 가 있다. 6근(눈, 코, 귀, 입, 몸, 뜻)에 각각 고, 낙, 불고불락의 셋을 곱하여 18가지, 이것을 탐,무탐의 둘로 나누어 36가지로 하고, 다시 과거, 현재, 미래의 셋에 배당하여 모두 108가지라 함)가 있고 이 모든것이 무명(미혹함)이 원인이 되어 겪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사바에서의 중생은 무명, 사견,망집에 사로잡혀 진정한 내마음(진여심)을 잃고, 가짜의 나를 집착하며 사는 존재이다. 몸(물질)은 죽어 없어지더라도 업은 영원히 살아 다른 육체(물질)에 옮아 수레 바퀴가 돌듯이 멎지 않고 여러가지 환경과 생명으로 새로히 태어나서 무시무종을 되풀이 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중생의 삶을 끝내고 윤회하지 않는 것이 결국은 니르바나(열반)이다.

인생에서 죽고사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는 없다. 생사일대사는 기필코 금생에 해결 해야할 문제 이기에 나고 죽는 일이 없는것이 참된 열반락 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바의 세상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으며, 가진자들의 횡포와 착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사는것이 이토록 갈 수록 어려지는 것도 결국은 인간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점철된 물질주의(자본주의)에 기인 하는것이다.

부처의 경지란 부모 형제 버리고 일체의 인연을 끊고 출가입산을 하고 면벽수도(面壁修道)를 해야 하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고 하듯이 사바에서 중생의 아픔을 함께하고 헤아려 보듬는 것이 진정한 불제자이다.

그러하기에 번뇌의 숲을 벗어나 생사계를 초월한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한 경지인 열반은 생사의 괴로움을 초극한 해탈, 번뇌를 말끔히 지워버린 상태이며 적멸(寂滅)을 이르는 것이고 불가의 ‘궁극의 경지’, 그 이상향이 이르테면, ‘적멸의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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