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새로운 시작의 불편한 현실
졸업, 새로운 시작의 불편한 현실
  • 정덕재
  • 승인 2014.02.1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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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가사를 쓴 ‘졸업식 노래’는 졸업식장을 숙연하게 만든 노래였다. 교과서를 물려받는다는 당시의 시대상과 요즘의 교육현실에 차이가 있기는 해도 이 노래만큼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지난주부터 각 급 학교의 졸업식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졸업식장 뒤풀이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경찰까지 나서고 있는 상황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과거에도 졸업식장에서 교복을 찢거나 밀가루를 뿌리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적정 수위를 넘는 사례가 간간이 있다고 한다. 언젠가 교복을 벗기고 알몸으로 기합을 받는 행위가 휴대폰으로 촬영 유포돼 사회적 파문이 일었던 경우가 있었다. 밀가루 뿌리는 단순한 행위를 유쾌한 퍼포먼스로 여길 수도 있지만, 명랑함을 벗어나는 자극성 있는 행위가 다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규제와 억압에 시달렸던 시절을 잊으려는 행위가 예술적으로나 문화적인 행위로 이어진다면 하나의 문화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일탈적 행위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경찰의 감시 아래 졸업식이 치러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고딩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졸업식이 치러지는 날에는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는 뜻에서 의미 있는 선물을 건네곤 한다. 필자가 기억하는 예전의 졸업식 선물은 주로 만년필과 시계였다.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중고등학교를 보낸 세대들의 경험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당시 대중적인 시계로는 오리엔트나 시티즌이라는 브랜드였다. 만년필은 파카나 몽블랑 등이 주목을 받았다. 이런 만년필은 지금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받은 시계는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수난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은 추억속의 주점으로 사라졌지만 옛 충청은행 맞은편 골목에 있었던 “대중집”이나 “서라벌”같은 막걸리 집과 후발주자였던 “백야야식”에서 술을 먹다가 술값이 떨어졌을 때 단골로 등장하던 게 시계였다. 인근에는 작은 전당포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 시계를 맡기고 술값을 변통하곤 했다. 이 전당포는 동양백화점 뒤편에 자리한 “청양식당”이나 “광천식당”과도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선화동과 은행동 일대를 찾는 주당들이 자주 애용했다.

“사장님 조금만 더 쳐주세요. 천원만 더 주시면 안돼요?”
“학생! 오천 원도 많이 준거야”

지금도 우리를 안경 너머로 측은하게 바라보던 전당포 주인의 눈동자가 생각난다. 그 시계를 찾았는지 아니면 그냥 전당포 창고에 쌓아 두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만 이 시계를 몇 차례 더 활용한 기억은 선명하다.

부모가 시계를 사준 것은 단순히 시간을 보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간을 맞는 자식들에게 미지의 삶을 그려보라는 깊은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사람은 망설이지만 시간은 망설이지 않는다” “시간은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다” “일 분 전만큼 먼 시간은 없다” 위대한 인물들이 시간과 관련해 수많은 명언을 남긴 것은 그 만큼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졸업을 하는 이 땅의 고딩들은 힘겨웠던 지난 3년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3년이란 세월은 잊혀 지지 않은 채 오랫동안 인연의 관계를 이어간다. 또한 견디기 힘든 시기를 벗어났다고 해도 새롭게 펼쳐지는 삶이 기대한 만큼 온전해질 수는 없다. 우리의 삶 앞에 놓여 있는 건 여전히 불편하고 안녕하지 못한 현실이며,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날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삼년만 참으면 된다”던 어른들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몸과 마음은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더불어 니체나 아인슈타인 같은 여러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시간에 매달렸던 이유도 살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놀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우리 집 고딩 녀석은 졸업식 날에 학교에 가지 않는다며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잠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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