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예전 같으면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다 점검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럴 인원조차 없어요. 사람이 없고 그런 걸 하려면 위에서 예산을 내려줘야 하는데 그런 걸 안하죠.”
KT 통신케이블관리 직원 이해관 씨가 MBC <PD수첩> 제작진에게 한 말이다.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은 8일 '통신부도의 날'편을 통해 2018년 11월 24일 KT 아현지사 화재 사건의 이면을 파헤쳤다.
KT의 통신망 관리 실태는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통신 멘홀은 오물과 악취로 가득했다. 오물 속 부유물들은 작업자들의 안전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KT가 시설 투자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KT 협력업체 노동자의 증언은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KT에서는 이 시설 투자는 전혀 안 해요. 관리자들은 선로 쪽에는 전혀 신경 안쓰고 핸드폰만 많이 팔연 진급되고 좋은 데 가고, 전국적으로 이런 현상이 된다고 그러면 그때는 아현동 화재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봐요."
KT는 시설은 물론 노동자에게도 인색했다. 2014년 1월 취임한 황창규 회장은 명예퇴직을 명분으로 구조조정에 나섰다. 대상인원은 8,304명에 달했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8,000명이 넘은 인원 감축은 충분히 사회적인 이슈를 만들어 낼 좋은 소재다. 분명 불상사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구조조정 와중에 50명이 자살·심장마비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극단적 선택 가능성을 먼저 간파한 쪽은 사측이었다.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직원들의 투신을 막기 위해 각 지사의 옥상을 폐쇄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쌍용자동차의 경우처럼 노사 대립은 없었다. 언론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PD수첩>은 이 대목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KT노조와 회사와의 밀실협약이 원인임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여전히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추가 취재를 통해 진상을 더 자세히 알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동자들이 강제로 퇴직을 강요당하는 사이 황창규 회장의 연봉은 치솟았다. 취임 첫해 5억 700만원이던 그의 연봉은 2015년 12억 2900만원, 2016년 24억 3600만원으로 뛰었다. 그런데 황 회장의 연봉은 노동자들을 희생시킨 대가다. KT 현직 임원의 말을 들어보자.
"영업이익이나 이런 것들 보면 8,000명 구조조정 한 그런 상황을 엔조이 한 거지, 그 다음에 원가절감을 통한 그런 것들이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그 다음에 미래를 위한 수익을 낸 건 없죠."
황 회장은 통신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게 KT 직원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황 회장이 KT 회장으로 취임한 과정에서는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의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그런 인사가 KT에 와서 직원들을 해고하고, 시설 유지 관리는 안중에도 없이 수익 창출에만 골몰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결국 아현동 KT 지사 화재와 뒤이은 통신대란은 예고된 수순이었던 셈이다.
노동자마저 위협하는 KT 부실경영
그런데 화재가 끝이 아니다. KT의 부실경영은 노동자들의 삶을 무너뜨렸다. KT 노동자 안성용 씨는 5년 전 녹슨 통신주에 올라가 작업하다 통신주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안 씨는 뇌 한 가운데 있는 숨골을 다쳐 지금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또 정건우 씨(가명)는 지난 해 5월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작업 중 추락사로 숨졌다. 전화 고장 신고를 받고 단자함을 찾으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KT 서비스 직원 김신재 씨는 KT의 투자소홀이 참변을 불렀다며 탄식했다. 김 씨는 단자함을 가르키며 이렇게 말한다.
"지금 눈에 띄어서 제가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도 못 찾은 거예요. 이거 누구나 보겠어요. 이거? 이런 걸 누구나 볼 수 있게 화재 그거 하나는 것과 똑같아요. 통신단자함도 그렇게 만들면 돼요.
KT가 예산을 쓰고 투자를 해서 이런 구형 건물도 바꿔주면 돼요. 그런데 돈 때문에 안 하잖아요. 직원들은 죽고 있는데 얼마나 더 죽어야지 이거, 해줄 건지 모르겠어요."
고 정 씨의 죽음은 태안서부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KT가 이대로 운영될 경우 또 다른 죽음을 부를 수도 있다는 의미다.
KT 아현지사 화재는 통신대란을 불러왔다. PD수첩 제작진은 이 사태를 '통신 부도의 날'로 규정했다. 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사고의 배후 원인, 그러니까 KT의 투자소홀과 방만 경영은 더 끔찍하다. 그럼에도 황 회장은 묵묵부답이다. KT 사측은 <PD수첩>에 " 124명의 사망자 중 3명은 황창규 회장 취임 전 퇴직자이며 산업재해로 인정된 경우는 4명뿐이다. 나머지 117명의 죽음은 개인사유이거나 KT그룹과 무관하다"는 입장만 전했다.
KT 서비스 직원 김신재 씨는 KT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외친다. 하루하루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일하는 직원들의 외침에 황창규 회장 이하 KT 경영진들은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KT가 좀 똑바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 황창규 회장님한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한 죄,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시설들에 정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장님."
국민들이 다함께 촛불을 들지 않는다면 즉 국민이 바꾸지 않는다면 누가 이사태를 멈추고 바꿀까?
기업은 악마고 정부는 악마에 하수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