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트북을 열며] '노짱'이라면 부시를 어떻게 맞이했을까?
    [노트북을 열며] '노짱'이라면 부시를 어떻게 맞이했을까?
    노무현 집권기 한·미 관계 떠올리게 했던 조지 W. 부시 등장
    • 지유석
    • 승인 2019.05.25 05: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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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노건호 씨 등 고 노무현 대통령 유족과 함께 추도식장으로 들어가자 몇몇 시민들은 ‘부시’를 연호하며 환호했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노건호 씨 등 고 노무현 대통령 유족과 함께 추도식장으로 들어가자 몇몇 시민들은 ‘부시’를 연호하며 환호했다. ⓒ 굿모닝충청 = 지유석 기자

    [굿모닝충청 지유석 기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였던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노무현재단은 추도식이 진행 중이던 23일 오후 3시 기준, 1만 7천 여 명이 봉하마을을 다녀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추도식엔 미국에서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다. 퇴임 후 화가로 활동 중인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이 손수 그린 고 노 전 대통령 초상화를 건네주고자 한국행을 자처했다고 전한다. 

    부시 전 대통령은 영부인 김정숙 여사, 권양숙 여사·노건호 씨 등 고 노 전 대통령 유족 등과 함께 걸어서 추도식장으로 들어갔다. 이 모습을 본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몇몇 시민들은 부시 전 대통령의 이름을 연신 외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환호성에 흡족한 듯 미소로 화답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잠시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다. 부시 전 대통령 집권기는 고 김대중 대통령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시기와 겹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을 추구하며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려 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햇볕정책에 큰 이견이 없었다. 집권 말기엔 메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북미 화해의 기대감을 품게 했다. 

    클린턴은 오히려 전임 김영삼 정부와 대북정책에서 엇박자를 냈고, 이는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반도에도 불똥 튄 '테러와의 전쟁'

    하지만 부시는 달랐다. 부시는 집권 초기부터 햇볕정책에 부정적이었다. 2001년 9.11테러 이후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대결정책으로 일관했다. 한반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부시는 2002년 이란-이라크-북한을 '악의 축'(the axis of evil)이라고 규정했다. 다음 해엔 악의 축 중 하나인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때 한반도에도 긴장이 높아졌다. 이라크 침공 이후 다음 목표가 북한이라는 관측이 공공연히 불거졌고, 이에 북한은 특유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국가안보보좌관을 거쳐 국무장관에 올랐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북한을 압박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이 같은 기조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부시 행정부는 한국에 이라크 파병을 압박했다. 저간의 사정은 이랬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에 부정적이었다. 이라크 침공에 동조한 나라라곤 영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뿐이었다. 영어권을 제외하고 미국에 우호적인 나라는 스페인이 거의 유일했다.(하지만 2004년 스페인 총선에서 아스나르 총리가 이끌던 집권당은 패배했다. 새로 집권한 사파테로 총리는 이라크 주둔 병력을 철수시켰다)

    미국으로선 난감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이 '테러와의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국제전으로 성격을 확대하려 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 파병을 요청한 것이다. 

    미국의 파병 요청이 있자 우리나라에선 이를 수용할지 여부를 두고 한 바탕 논란이 일었다. 보수 진영은 우방 미국을 도와야 한다며 적극 찬성했다. 반면 진보 진영은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에 휘말려선 안 된다고 맞섰다. 

    노무현 정부는 고심을 거듭하다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미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비전투병 파병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후폭풍은 거셌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지지기반이던 진보 진영은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으로 국제사회를 분열시키더니, 이라크 파병 압박으로 우리나라 여론마저 뒤흔든 셈이다. 

    시선을 달리해보면 이라크 파병 논란은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갖는 힘의 한계가 드러난 사건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도 광장의 촛불에 힘입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촛불은 2002년 말 시청 광장을 밝혔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장갑차로 효순-미선 두 중학생을 숨지게 하고도 사과 한 마디 없이 가해 미군병사를 감싸는 미국 정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이때 대선후보 노무현은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고 외쳤다. 진보진영이 그에게 기대를 걸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의 호언장담을 무색하게 했을뿐 아니라 한·미 간 힘의 격차만 재확인시켰다. 

    그 시절 대통령이었던 부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아 한국행을 자처했다. 멀리서 찾아온 옛 친구를 박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인파가 부시를 보고 환호하는 모습은 참으로 불편하다.  

    ‘바보 노무현'이라면 부시를 어떻게 맞이했을까? 여전히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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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5 11:48:25
    전쟁미치광이 부시 화웨이 약속받아
    ㅆ나? 압박하러?
    미국말 잘듣던 노무현
    문재인 사드추가배치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