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가면 이야기가 있다] 예술로 다시 만나보는 17세기 우리 여성 시인
    [그곳에가면 이야기가 있다] 예술로 다시 만나보는 17세기 우리 여성 시인
    (98) 김호연재를 만나다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9.10.0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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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사진 1
    사진 2
    사진 2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대전에서 활동하는 한국화가 박석신 씨는 조선시대 여성으로 살다간 한 시인의 마음을 이렇게 따라가고 있다. (사진 1,2)

    “계족산 아래로 법천이 흐르고 이 법천은 삼천 합수머리에서 유등천 갑천을 만나 금강으로 흐른다. 삼천을 건너 계룡산 고개를 넘으면 공주를 지나는 금강을 다시 만난다. 공주에서 유구천을 따라 차동고개를 넘으면 예산과 당진을 아우르는 예당평야가 펼쳐진다. 그 벌판 서쪽 내포의 중심에 수덕사를 품은 덕숭산과 용봉산, 가야산이 동과 서를 지지해주고 서있다. 여기 수덕고개를 넘으면 서해갯벌이 드넓게 펼쳐져있는 갈산면 오두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여기 오두리에서 삼백년 전 한 여인이 이 길을 되짚어 신행에 오르고 법천이 있는 송촌 동춘당 송준길의 외손부가 된다.”

    지금의 홍성에서 대전 회덕에 이르는 이 긴 길은 김호연재가 집을 떠나 시집으로 온 길이며, 그래서 평생 그리움의 고비가 된 길이기도 하다.

    김호연재(金浩然齋, 1681~1722)는 고성군수를 지낸 김성달의 딸로 태어나 소대헌 송요화의 부인이 된다. 송요화는 좌참찬을 지낸 동춘당 송준길의 후손이다. 친가와 시가 모두 당대의 명문가인 셈이다.

    그러나 결혼 후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시댁의 분위기는 우호적이지 않았고, 남편은 거의 보기 어려웠으며, 규방에 갇힌 몸으로 친정의 동기들이 있는 먼 서쪽을 향해 달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살았다. 이런 처지에서도 김호연재는 호방한 선비의 기풍으로 현실과 이상의 갈등을 224편에 달하는 시로 풀어냈다. 시대를 숨 쉬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택한 것이다.  

    먼저 屬四兄(촉사형)이라는 시를 읽어본다.

    한 번에 몇 천 리 이별하고/ 쑥처럼 이 곳 저 곳 떠돌아다니노라니/ 십 년을 돌아가지 못 했네/ 서로 만나는데 다시 어떤 이유가 있나/ 만나지 못하는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하리/ 힘들고 어려움이 모두 근심이라네/ 마음은 고향의 달빛을 따라가니/ 밤마다 서쪽으로 흐르지 않은 적이 없네

    이제 한 폭의 한국화를 본다. (사진6, 7, 8)은 한국화가 진희란의 「달빛을 그리다」로 가로 160cm가 넘는다. 이 긴 그림은 끝없이 길었을 김호연재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 그림의 왼쪽 끝에는 홍성 바닷가 산 위에 정자가 있고, 정자에는 13명의 형제와 친정부모가 살갑게 모여 있다. 바다 위로는 호연재의 그리움만큼이나 꽉 찬 달이 떠있고, 달빛은 물을 따라 상류로 흐른다. 이 물은 법천으로 이어지고 이어져, 그림의 오른쪽 끝 동춘당 곁을 지난다. 동춘당 창호에는 옅게 비친 호연재의 실루엣을 찾아볼 수 있다.

    호연재의 그리움을 달빛으로 위로하고 싶었다는 화가는 옆 그림, 「송춘감회」(사진2)로 시선을 이끌었다. 작은 그림의 한 가운데는 굳게 닫힌 사립문이 보이고 그 위로 비가 내리는데 하얀 봄꽃이 떨어지고 있다. 꽃 사이로 역시, 보름달이 떠있다. 또 계절은 변하고 꽃 위로 비가 내리는데 문은 열릴 줄 모른다. 화가가 본 호연재의 마음이다.

    한국화가 진희란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대덕문화원 3층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당당한 그녀, 김호연재의 시와 삶을 그리다”에서는 과거에 살았던 대전의 시인인 김호연재의 모습과 마음을 현대의 예술가들이 다시 살려낸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그의 사료나 역사적 기록을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현대의 예술가 10명이 김호연재의 삶을 추적하고 예술을 재해석해 현대의 시각예술로 탄생시킨 작품들이다.

    이 기획은 대덕문화원의 주관으로 시작되었다. 이 기획은 먼저 10명의 예술가를 선정하고 평면, 입체, 설치, 영상, 드로잉, 텍스트 등 다양한 형태의 결과물로 한 예술가의 삶을 조명했다. 지난 2월, 첫 모임을 가진 프로젝트는 세미나와 답사, 전문가 초빙강좌, 스케치 등 일관되고 다양한 추적의 과정을 거쳐 9월 21일 전시를 열었다.

    강호생의 설치미술작품인 「The reason for being and life」 연작은 (사진9, 10)반투명 종이로 현대 여성들의 삶을 상징하는 작은 사진들을 싸고, 이것들을 이어 붙여 더 큰 상징을 완성했다. 이는 2.5cm의 정사각형에, 높이 0.5cm로 이루어진 형태의 집합체로 수천 개가 모여 새로운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를 ‘입체화된 태점(苔點)’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만화가인 탁영호는 만화적 기법의 판화로 호연재의 삶을 새롭게 표현한다. (사진11, 12)그의 말을 들어보자. “…처음에는 같이 한숨 쉬고, 그다음에는 같이 울고, 실컷 운 다음에는 시끄럽게 떠들고 웃으며 같이 술을 마셨다.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의 할머니였고, 나의 어머니였고, 나의 누이였다.” 이런 그는 해학을 가지고 호연재의 삶에 접근하고 있다. 

    전시를 돌아보고 나올 즈음이면 누구나 답답한 시대와 마주한 한 여성시인의 마음에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우리 시대의 거울이 되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런 성찰의 마음과 함께 다시 김호연재의 시 한편을 읽어본다.

    녹수는 콸콸 울타리 밖에 흐르고

    청산은 은은히 난간 앞에 펼쳐쳐 있네

    공명은 다만 인간사 한바탕 꿈일 뿐

    무엇을 구구하게 세상과 다투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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