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오래된 미래, 예정된 미래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오래된 미래, 예정된 미래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0.10.12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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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다크에서 배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을 벗 삼아 평화롭게 농사나 지으면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서구화 산업화 물결이 세계 곳곳에 몰아친 현재 이것은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소박하게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라다크(Ladākh)라는 곳이다. 라다크는 ‘라 다그스’라는 티베트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되는데 ‘산길의 땅’이라는 뜻이다. 

라다크는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맥들에 둘러싸인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라다크는 티베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왔으며 종종 ‘작은 티베트’라고 불린다. 

1975년 스웨덴의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는 토속어 연구를 위해 라다크에 온다. 그는 16년 동안 라다크에서 보내면서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산업문화의 모습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본다. 

그는 기존의 방법 이외 더욱 바람직한 삶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이 책 《오래된 미래》는 아름다운 라다크의 전통과 산업화 정보화라는 미래 세계라는 새로운 문화 사이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가라는 새로운 목표 설정을 고민하게 한다. 

 

헤레나 노르베리 호지
헤레나 노르베리 호지

척박한 땅

그녀는 처음에 왔을 때 하나의 의문을 갖는다. 무엇보다 낯선 사람들을 아는 사람인 양 별일 아닌 듯이 맞이하는 라다크 주민들의 언제나 웃고 지내는 행복한 모습이다. 

라다크 사람의 대부분은 고도 3500m가 넘는 고원의 사막지대 이곳저곳의 소규모 농토로 살아가고 있다. 밭의 3분의 2는 보리이고, 나머지는 성장이 빠른 밀 종류이다. 여름은 뜨거운 햇볕으로 폭염에 시달리고, 겨울은 40도 이하로 떨어지는 살인적 추위로 모든 사물이 꽁꽁 얼어붙는다.

라다크 사람들은 실제 일하는 시간은 4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긴 겨울은 이야기 계절로 축제와 파티가 열리지만 풀이 자라는 여름철에는 농사일을 하는 기간으로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 나누는 것을 금기시한다. 

여기서는 시간에 대하여 무척이나 여유롭다. 시간을 재는 아름다운 표현들이 있다. 새의 노래라는 뜻인 ‘치페 치릿’은 해뜨기 직전 새들이 지저귀는 이른 아침을 뜻하고, ‘나이체’는 해가 산꼭대기에 걸려있는 한낮을 말한다. 

그들은 어떤 것도 그냥 버리지 않는다. 사람이 먹을 수 없으면 동물의 먹이로 사용하고, 연료로 쓸 수 없는 것들은 비료로 쓴다. 옷이 낡아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는 수로의 구멍을 막는데 쓴다. 라다크의 가정에는 1층 높이의 화장실이 있는데 화장실에서 나온 배설물에 흙과 화로에서 나온 재를 섞어 악취를 제거시키고 좋은 퇴비로  만든다. 

 

마을의 의사

몸과 마음, 영혼은 하나의 통합된 형태로 연결되여 있다고 보고 신체기관의 장애를 바라본다. 라다크에서 ᆢ환자를 돌보는 것은 ‘암치’라고 불리는 마을의 의사이다. 암치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공동체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들인데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의술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전수받는다. 

‘암치’말고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은 ‘라바’라 불리는 샤먼(shaman)이고. 다른 하나는 ‘온포’라 불리는 점성가이다. ‘라바’는 무아지경에 몰입한 후 자신의 몸을 통하여 영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과거 60년대 우리 농촌에서 본 무당에 해당된다. ‘온포’는 별자리를 기록한 책에 근거하여 자문을 한다. 새로 집을 지을 자리와 파종이나 수확을 시작하는 날, 결혼을 앞둔 남녀의 궁합과 장례 일정을 잡는 일까지 그 모든 일을 관장한다. 

 

공(空)의 문화

라다크의 생활 방식은 불교 철학인 공(空) 사상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공 사상의 핵심적 화두는 세상의 만물은 관계의 사슬로 매여 있다는 것이다. 너와 나’는 완전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관계이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하여 일체감을 느낀다. 잡아먹는 동물조차 죽이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물을 죽일 때도 마음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신에게 용서를 구한다.

나만 잘 사는 것보다는 함께 사는 ‘공존’을 택한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우리의 ‘만두레’와 같은 자조 조직이 분야마다 구성되여 있다. 예를 들어 ‘파수푼’이라는 조직은 출산이나 결혼 그리고 장례와 같은 것을 치를 때 서로 도와주는 조직이다.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시 한다. 필요해서 방 하나를 빌릴 때도 이해관계인 이웃에게 마음 상하지 않게 배려하는 모습이다. 인간 간의 오해나 갈등이 생겼을 때는 ‘자발적 중재자’에게 모든 것을 의뢰한다. 이곳에서 가장 심한 욕설은 ‘숀찬’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삶의 과정

라다크의 결혼 형태는 전통적으로 일처다부제이다. 두 남자가 한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한다. 어느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지 개의치 않고 동등하게 대우한다. 하지만 라다크인들의 결혼 형태는 각 가정의 토지의 규모, 자녀와 잠재적 배우자의 수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여 일부일처나 일부다처도 할 수 있다. 

엄마는 아이와 항상 함께 있고 어린아이가 보채는 일이 있어도 화를 내는 일이 없다.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뜨거운 찻 주전자를 잡으려 하자 주의 주려고 찰싹 때리지만 거의 동시에 그를 꼭 껴안았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크면 자기보다 어린아이를 등에 업어 보살피고 남에게 먹을 것 하나라도 나누려고 한다. 

노인들은 죽을 때까지 공동생활에서 중요한 구성원으로 모든 부분에 참여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곧 값진 경험과 지혜를 가졌다는 의미이다. 

 

라다크
라다크

라다크도 변화가 왔다.

20세기 중반까지 경제 낙후국으로 불렸던 한국은 20세기 후반 박정희 전 대통령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의 성공에 따라 근대화된 산업국가라는 위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문제는 전보다 먹고 살 만해졌는데 우리의 삶이 행복한가이다. 

라다크는 필자가 1975년 처음 갔을 때 혹독한 기후, 쉽지 않은 접근성으로 개발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 있었으나 인도정부가 그 지역을 관광 지역으로 개방했던 1974년부터 라다크는 서구식의 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서구 문물의 유입이 ‘옳다’ ‘그르다’ 라는 것이 아니다. 서구의 문물의 무분별한 유입에 따른 라다크 문화의 파괴를 주목해야 한다. 급속하게 성장한 한국 사회의 모습처럼 라다크 또한 전통이 무참히 파괴되었다. 

중앙으로부터 예산이 주로 도로나 에너지 생산시설과 같은 인프라에 투입되고, 의료와 교육 부분에 서구식 영향력이 확산되면서 금융 각 분야에 화폐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으로 슬럼가가 형성되고, 관광산업개발계획에 따라 100개가 넘는 호텔과 접객시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국제 화폐경제의 한 부분이 되면서 외부 세계에 의존하는 상황이고, 돈만 있으면 외국 제품을 살 수 있으므로 온통 돈에 정신을 빼앗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전에 상부상조로 농사 지을때는 돈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농부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임금이 많아지면서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가거나, 환금성 작물로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렸다. 모든 가치는 돈이라는 가치척도로 환산하는 황금만능주의로 변했다. 

라다크의 시각에서 외적으로는 성공적으로 보이나 외국인들의 겉모습을 보면서 라다크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양 사람들의 눈에도 라다크 사람들은 가난하게 보였다. 

청소년들은 영화 속에서 느끼는 현대화된 겉모습을 보고 그들 고유의 전통문화에 비해 더 우월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자신들의 문화가 한심한 것으로 생각하는 등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라다크 사람들이 갖고 있던 마음의 평화나 가정, 공동체의 가치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서 서구화된 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지루함, 좌절감 같은 것을 경험한다. 

농기구로 동물을 이용할 때는 짐승들은 친구가 되고 무엇인가 관계를 맺는 생명이었으나 기계를 사용하고 기계하고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자신도 기계처럼 인식되었다. 

전통적 경제체제에서는 시간이 풍부하고 계절이 바뀌는 경우에만 제한을 받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시간은 더 작은 조각으로 수량화되었고 시간을 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더욱 빠르게 만드는 시간 절약 기술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고 전화나 가스를 사용하여 요리 시간이 절약되었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다. 

기술의 변화는 빈부의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들고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이 달라지면서 여성들이 홀로 남겨졌고 지역공동체는 분할되었다. 전통사회에서는 라마 승려가 가장 존경받는 존재지만 도시 지역에서는 엔지니어가 그 위치를 대신하고 있다. 

 

라다크 마을 전경
라다크 마을 전경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라다크에 온 지 몇 년이 지나서 필자는 삶에 있어서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라다크 인들이 정말 삶 자체에 대한 순수하고 거리낌 없는 태도를 보고 그들이 이루고 있는 공동체와 땅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통해 물질적 풍요나 기술의 진보 같은 것들을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라다크와 서구사회를 오가며 계속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활동은 1980년에 라다크 프로젝트(Ladakh Project)라는 이름으로 성장했고 작은 국제기구협회 ISEC로 재탄생되었다. 그 설립 취지는 생태 친화적이고 공동체에 기반을 둔 생활방식을 장려하기 위함이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오래된 미래》는 과거 라다크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개발이냐 전통으로의 회귀이냐라는 흑백논리화 시키지 않고, 각자의 문화적인 토양 위에 생태적 가치와 공동체 가치의 실현을 이야기 한 것이다. 자연환경과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문제만 생기면 우선 서양식 해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진 뛰어난 문화와 전통을 다시 찾아내고 오늘의 문제 해결의 열쇠를 그곳에서 찾아야 할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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