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01]기억을 새기다-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산돌배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01]기억을 새기다-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산돌배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0.11.25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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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사진 채원상 기자, 글 윤현주 작가] 나무는 기억을 품는다.

우리는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해 나무를 심기도 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 수목장이라는 이름으로 나무를 통해 존재감을 남기기도 한다.

이처럼 나무에 기억을 담기 시작한 건 아주 오래전부터다.

1, 2차 세계대전 때 병사들은 죽은 전우의 이름을 나무껍질에 새기며 그들의 이름은 가슴에 다시금 아로새겼다.

나무에 새겨진 글자는 나무가 자라나며 조금씩 흐려져 갔지만, 기억 속에서 새긴 이름은 쉽사리 흐려지지 않았다.

나무에 이름을 새기던 그 찰나의 기억이, 그 떨림이 나무 밑동에 깊이 박힌 까닭이다.

그렇다면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산돌배나무는 어떤 기억을 품고 있을까?

1986년 보호수로 지정된 산돌배나무는 보호수 지정 당시의 수령이 400년이었으니 현재 수령은 434년이다.

400년이 넘은 노거수를 만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노거수와는 달리 산돌배나무는 몸집이 크지 않다.

줄기와 가지를 크게 넓혀온 여느 노거수와는 사뭇 비교되는 외형을 지녔다.

그러나 긴긴 세월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만큼 생의 굴곡 또한 깊다.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430여 년의 생을 이야기하듯 사방으로 뻗어있다.

묵산리 산돌배나무는 이치대첩이라는 역사의 순간을 생생히 지켜본 산증인이다.

묵산리는 진산면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이곳에서 묵을 만들었기에 먹미, 묵산 등으로 불린다.

이치대첩은 묵산리에서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로 넘어가는 배티재 고개에서 벌어졌는데 권율 장군은 묵산리에서 수많은 의병들을 이끌고 왜군과 싸웠다.

배티재라는 명칭은 배나무가 많아서 생긴 것으로 이치(梨峙) 혹은 배티고개, 배티재 또는 배재라 불리기도 했다.

434살의 산돌배나무는 이치대첩이 발발했을 당시 고작 6살 남짓이었다.

지금보다 작고 가녀렸을 산돌배나무에 그 엄혹했던 순간의 기억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앙상하게 굽이친 나뭇가지에 방울방울 흰 배꽃이 터질 때마다, 이치대접에서 쓰러져간 이름 모를 이들의 영혼이 함께 맺히고 있는 건 아닐까?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남도청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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