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용기, 그 위대함에 대하여
[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용기, 그 위대함에 대하여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21.02.08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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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야간비행

내가 제일 좋아하는 쌩텍쥐뻬리(1900~1944)의 《어린왕자》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동화로 비행기 조종사인 저자가 자신의 비행 경험을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야간비행》도 그렇습니다. 《야간비행》은 상상력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한 그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쌩텍쥐뻬리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 의지의 위대함과 무한한 책임감을 내세우는 행동주의 문학을 하나의 영역으로 개척했습니다. 

작가는 프랑스 리옹 출신으로 오지노선인 북서 아프리카나 남  대서양, 남아메리카 항공로의 개척자입니다. 그는 항공사에서 우편기 조종사로, 2차대전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고 나중에 미국에 망명하여 소설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불운하게도 《야간비행》을 세상에 내놓고 한 달 후 2차대전 중인 1944년 7월에 정찰 비행단원으로 출정했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

《야간비행》은 당시 프랑스 대문호 앙드레 지드(1869~1951)가 서문을 썼습니다. 글은 시처럼 아름답고 음악처럼 감미롭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아름다운 정경을 그린 것으로 출발합니다. 마치 독자가 비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느낌입니다.

“남극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파타고니아 노선 우편기를 오던 파비행은 바다의 물결로 항구가 가까워졌음을 알듯이 평온한 구름이 보일 듯 말 듯 그리는 잔주름과 그 고요함을 보고 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이제 거대하고도 행복한 기항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야간비행하면 왠지 커피 한잔하며 노래를 듣는 낭만적인 기분이 들지만 실상은 비행 속에 위험은 늘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늘은 어항 속의 물처럼 고요했고 모든 비행장에서 ‘맑음, 바람없음.’이라고 알려오고 있었으나 과일 속에서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듯이 어딘가에 뇌우(雷雨)가 숨어 있을 거라고 했다. 밤 하늘은 아름답긴 하지만 어딘가 상한 데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곧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는 몹시도 싫었던 것이다.”

소설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세 사람입니다. 리비에르, 아르헨티나의 항공사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본부장으로 야간비행을 책임지는 인물로 겉으로는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이지만 늘 부하직원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내면적으로는 따뜻한 사람입니다. 로비노, 리비에르의 지시를 받아 직원들을 감독하는 중간 책임자로 리비에르와 일선 직원 사이에서 마음고생하는 사람입니다. 파비앵, 책임감 있는 우편기 조종사로 나중에 심한 폭풍우로 실종됩니다. 그외에 정비감독 르루, 파비행의 아내 시몬, 조종사 펠르랭이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인 1930년대만 해도 야간비행은 대단한 모험이었습니다. 뜻밖의 사고가 많이 발생하여 예측 못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리비에르의 설득으로 야간비행이 새로운 분야로 개척되었고, 그만큼 리비에르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낮 동안에 일껏 철도나 배를 앞섰던 것을 밤마다 잃고 있어서 우리에게 있어 속도 경쟁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소설은 하룻밤에 일어나는 일을 다루었습니다. 리비에르는 파타고니아와 칠레, 파라과이에서 출발한 우편 비행기 3대가 도착하여 그것을 모아 자정 무렵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를 띄웁니다. 한시도 하루도 안심할 수 없기에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리비에르는 책임감이 강하여 규칙이나 명령으로 부하를 엄격하게 다루며 사적인 관계를 전혀 맺지 않는 인물입니다. 어쩌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 조종사에게 위험한 출발을 명령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독관에게도 엄격하게 규정 준수를 명령합니다. 그런 그의 행동으로 비행기의 이착륙은 빈틈이 없습니다. 모두를 위하여 악역을 하는 존재입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동정 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동정하지 않는다. 아니 동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내 능력에 내 스스로도 이따금 놀란다.” 

세계의 절반을 감시하는 야간 파수꾼인 그는 매일 밤하늘에서 극적인 사건이 꾸며진다고 생각합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여 부에노스로 올 때까지 통과한 지상의 도시를 전투에서 함락한 도시로 여겼습니다. 그는 정시에 도착한 비행사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나 절대로 밖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40년 동안 정비해온 늙은 정비 감독 르루는 밤 10시나 자정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리비에르는 무심코 선문답 같은 질문을 합니다.  

“르루,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었나?” 
“아! 사랑! 본부장님도 아시다시피······.”
“하긴 나나 자네나 그럴 시간이 없었지.” 
“그렇죠, 정말로 그런 여유가······.”

이것은 아주 짧은 답이지만 리비에르의 삶입니다. 오로지 리비에르는 목표 달성을 위해 부당한 처사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강직하게 일을 처리합니다. 규칙이란 종교의식과도 같은 것으로 부조리하게 보여도 인간을 단련시켜 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공정한 사람인지 불공정한 사람인지, 그건 나도 모른다. 내가 강력하게 처벌하면 사고가 줄어든다. 그 책임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묘한 힘과 같아서 모든 사람을 처벌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절대 처벌할 수가 없다. 내가 아주 공정하다면, 야간비행은 매번 치명적인 상황을 맞을 것이다.”

“밤의 깊은 속으로 내려간 그 조종사가 그 어둠의 두께 속에서 손이나 날개 밖에 비추지 못하는 광부용 램프 없이도 딱 벌어진 어깨로 그 미지의 세계를 헤치고 나오게 만든다.” 

리비에르는 감독관 로비노에게 자신이 만든 규칙을 엄격하게 집행하길 지시합니다. 감독관이란 사랑을 베풀라고 만든 직책이 아니라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만든 직책이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은 과실과 싸우는 것이고, 자신보다 더 가치가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책임 짓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로비노는 새로운 방식이나 기술상의 해결책을 제안하는 것을 단념했습니다. 

“당신은 6시 15분에 이륙했으니 당신에게는 정근수당을 지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감독관님, 5시 30분에는 10미터 앞도 볼 수 없었어요.” “이건 규칙입니다.” “감독관님! 우리가 안개를 쓸어 내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편으로 리비에르는 로비노 감독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부하들을 사랑하시오. 그들이 알지 못하게 사랑하시오,” 로비노가 부하직원들과 친하게 지내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매우 잘못된 행동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역할 때문에 누구와도 친하지 못하는 로비노는 외로워하고 저녁식사를 제의하는 등 사적으로 친하려고 합니다. 로비노를 직원들은 “보고서에 작성할 만한 걸 아직 찾지 못했다면 허기진 사람처럼 잡아먹으려   들겠지.”라고 생각합니다. 

리비에르에게 어떤 동정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로비노가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볼꼴사나운 병 때문에 인생을 망쳐버렸다는 고백을 했을 때  참으로 기막힌 반응을 보입니다. “그것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 당신이 하는 일에는 도움이 될 거요.”

날씨가 나쁘면 휴식을 취하게 됐다며 마냥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조바심을 치며 날씨가 개기를 기다리도록 만들었고, 하찮은 잡역부까지도 기다린다는 것은 내심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철책처럼 둘러싼 악천후라는 장애물에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그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북쪽 트였다. 출발!”

리비에르도 사람입니다. 인간적인 고뇌로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지만 마음을 다잡습니다. 오직 자신이 직무를 행하는 과정에서 우정과 인간적인 기쁨을 얻습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동정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동정하지 않는다. 아니 동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나도 우정과 인간적인 기쁨 속에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파마앵은 파타고니아 노선의 우편기를 모는 조종사입니다. 그는 밤이 감추고 있는 폭풍과 안개, 예기치 못할 난관을 향해 시속 200키로로 하늘을 나르고 있습니다. 그는 어딘지도 모르고 폭풍 속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도시의 희미한 불빛에 의지하며 비행을 계속합니다. 폭풍권이 1천키로 미터에 깔려있어 어느 곳에서도 기착하지 못하고 연료도 1시간 40분밖에 없고 속수무책입니다.

결혼한 지 6개월 밖에 안되는 파비앵의 아내 시몬은 남편이 돌아오는 밤이면 남편이 모는 우편기의 진행과정을 예상해 보고  커튼을 젖히고 하늘을 봅니다. 새벽 1시경이 되면 남편이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었고, 남편을 위해 음식과 뜨거운 커피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사무실로 도착했는지 전화를 겁니다. 

“날씨가 나빠서 아주 늦어지고 있습니다.” 
“통신은 무어라고 했나요.?”
“그런 날씨에는······ 통신이 들리지 않아서요.”

파비앵의 아내는 생의 또 다른 의미와 대립하고 있습니다. 리비에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가냘픈 목소리, 몹시 애처롭지만 적의에 찬 그 목소리를 들어주고 동정하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이 부인이 말하는 현실에 반대하여 내세울 만한 것이 리비에르에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봐요, 로비노. 인생에는 해결책이 없는 거요. 전진하는 힘이 있을 뿐이니 그 힘을 창조해 내야 합니다. 그러면 해결책은 저절로 나오는 겁니다. ”

한편으로 파비행의 비행기가 실종한 후 리비에르는 무슨 명목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승무원들의 권리를 빼앗는지, 아니면 어쩌면 구하여야 할 영속적인 뭔가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페루의 잉카족이 세운 산 위에 똑바로 서있는 돌기둥들을 떠올렸습니다. 아마도 산 위로 끌어올리는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지만, 사막에 묻혀버릴 종족의 소멸에 대하여 동정심을 느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파비행의 비행기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육지를 찾지 못하고 폭풍우를 피해 상공으로 구름을 뚫고 높이 솟아 올라갑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을 보게 되지만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아서 30분 후면 다시 구름 아래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야 할 운명입니다. 그리고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지상으로 내동댕이쳐질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무선기사는 마지막 교신 내용을 보냅니다. “다시 구름 속으로 하강함.” 그러고 나서 무선전신국에 분명치 않은 문장 중에서 두 마디가 나타납니다. 
“······ 아무것도 안 보임······.”

마음이 가볍지 않는 소설입니다. 우리는 늘 인간의 허약함을 말하지만 《야간비행》은 초인적인 의지, 긴장된 성실함을 통하여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실로 부하 조종사들에게 명령을 내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리는 것이 그 명령을 실행하는 것 이상으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동정하기만 해도 되지만 명령은 동정보다 더 차원 높은 사랑을 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개인주의보다 집단적 책임을 다하는 행동을 원칙으로 삼아 인간의 가치를 더 높입니다. 독자에게 덤으로 마치 자신이 비행하면서 하늘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느낌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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