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돌풍과 국힘의 딜레마》
이준석이 국힘 당대표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나경원을 두 배 가까이 앞서 나가며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이준석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준석은 (국힘 당대표 후보 중에서) 압도적인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2030 남성들의 전폭적 지지다.
이준석은 급진적 페미니즘의 최대 수혜자가 되고 있다. 이준석은 연일 반페미니즘 발언으로 2030 남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 모으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메갈'이 이준석을 키운 셈이다. 일종의 '미러링 효과'다. 한마디로 이준석은 '메갈 왕자'라고 할 수 있다.
〈데일리안〉과 〈알앤써치〉의 5월 넷째 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0.2%가 이준석을 선택했다. 나경원 15.6%, 주호영 5.4%였다.
특히 이준석은 20대에서 36.8%를 기록해 7.7%에 그친 나경원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이준석은 전체 남성 응답층에서 39.8%의 지지를 받아 나경원을(14.2%)을 크게 앞질렀다. 2030 남성의 전폭적 지지가 이준석 돌풍의 진원지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국힘에 도움이 될까?
젠더이슈는 제로섬 게임이다. 젠더이슈 때문에 남성의 지지율이 높아졌다면, 반대 급부로 여성의 지지율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대남'이 압도적으로 오세훈을 지지한 것도 민주당이 이른바 박원순 미투사건에 대해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국힘 당대표선거에서 젠더이슈가 부각되고 '반페미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면 이준석의 지지율은 높아질지 몰라도 국힘은 반여성정당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일 이준석이 당대표가 된다면, 여성 지지층의 이탈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국민의힘은 애초 27일 여론조사를 마치고 그날 오후 결과를 공개하기로 했으나, ‘젊은 여성층’ 표본 수집을 끝내지 못해 발표를 하루 미뤘다. 벌써 여성 지지층 이탈조짐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준석의 반페미주의는 일종의 '유사 파시즘'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에서 파시즘은 대체로 인종주의로 나타난다.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유색인종을 공격함으로써 정치적 지분을 확보한다.
인종문제가 없는 한국에서 파시즘은 지역주의로 나타났다. 호남혐오는 한국판 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나는 한국의 파시즘을 '유사 파시즘'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역주의가 점차 희미해지면서 파시즘의 정치적 영토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때문에 일베와 같은 유사 파시스트들은 지역주의(혹은 인종주의)를 대체하기 위해 젠더갈등을 악의적으로 유발시켰다. 즉, 호남혐오를 여성혐오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갈등을 젠더갈등으로 대체하려는 유사 파시즘적 시도는 성공 가능성이 낮다. 서구에서 인종주의가 일정한 정치적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유색인종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호남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은 소수가 아니다. 유권자의 절반은 여성이다. 유권자의 절반을 적으로 만드는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게다가 모든 남성들이 일베는 아니다).
때문에 이준석의 지지율이 높아진다고 그것이 국힘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이준석의 반페미 마케팅은 잘해야 본전이다.
둘째, 진보층의 역선택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 당연히 이준석이다. 왜? 재밌으니까. 이준석이 '합리적 보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마디로 국힘에 '빅엿'을 먹이는 거다.
때문에 '이준석 현상'의 상당지분은 비국힘 지지자들의 몫이라고 봐야 한다. 비국힘 지지자들의 전략적 역선택이 이대남과 함께 이준석의 지지율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힘은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를 배제했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을 100% 걸러내기도 힘들 뿐더러,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비국힘 지지자를 걸러 낼 수 없다.
이준석은 예비경선에서 41%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 여론조사에는 51%를 득표했다. 기대 이상의 선전이다. 여론조사의 밴드왜건 효과가 실투표에 영향을 준 것이다. 비국힘 지지자를 100% 걸러 내더라도 밴드왜건 효과까지 제거할 수는 없다. 본선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종합하면 이준석 돌풍은 당 안이 아니라, 밖에서 불어오고 있다. 때문에 이준석 돌풍이 국힘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여전히 국힘은 꼰대들의 정당이다. 밖에서 부는 돌풍이 시끄러울 수는 있어도 기둥을 흔들지는 못 한다.
현실적으로 이준석이 당대표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본선에는 당원투표 70%, 여론조사가 30%가 반영된다.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도 당원투표의 열세, 즉 조직력의 열세를 만회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나경원이나 주호영이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준석 돌풍은 결국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것이다.
압도적인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이준석이 패배한다면 국힘의 '꼰대정당' 이미지는 더 굳어지게 될 것이다(덤으로 반여성정당이라는 이미지도 얻는다). 민심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 당대표선거 이후 이준석 돌풍은 이준석 역풍이 될 것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물론 이준석이 당대표가 된다면 국힘은 당분간 상승세를 타게 될 것이다. 2030세대의 지지를 받는 '젊은 보수정당'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대신 반여성정당의 이미지는 강화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준석이 과연 여전히 국힘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꼰대 정치인들을 제어할 수 있는가다. 또한 안철수, 윤석열과의 통합 혹은 연대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가다. 나경원의 지적처럼 복잡한 야권통합의 정치적 함수를 풀기에는 이준석의 경륜이 너무 짧다. 정치적 기반도 약하다.
80대 노인도 손을 든 '아사리판'을 이준석이 정리할 수 있을까? 돌출적인 이준석의 언행을 고려할 때 김종인의 말처럼 이준석 체제는 '아사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힘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그냥 예전처럼 '꼰대정당'의 길을 묵묵히 가거나, 아니면 '아사리판'으로 가는 것이다. 결국 이준석이 떨어져도 문제, 당대표가 돼도 문제다.
이준석 돌풍은 단지 2030 남성들의 반란이 아니다. 국힘의 변화, 즉 국힘을 '합리적 보수'로 견인하기 위한(혹은 아사리판으로 만들기 위한) 유권자의 전략적 선택이다. 국힘은 재집권을 위해 당의 문을 열었지만 그 문으로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 밀려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국힘은 전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변화를 거부하면 꼰대가 되고, 변화를 수용하면 아사리판이 된다. 국힘의 당원들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