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몸무게는 일급비밀!
[정덕재 콩트, 살다보면…] 몸무게는 일급비밀!
  • 정덕재 시인
  • 승인 2021.06.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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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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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정덕재 시인] 오전 11시 30분 즈음이 되면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은 업무의 집중보다는 맛있는 점심메뉴로 관심이 이동할 시간이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벗어나 있을 때가 가장 즐거운 법, 회사 밖 점심식사는 이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아침부터 기다려지기 마련이다.

이런 즐거움을 아직 느끼지 못하는지 단발머리 신입 여직원은 며칠째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나가지 않는다.

“점심은 안 먹나?”

점심을 먹은 뒤 배를 두드리며 들어오는데도 단발머리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먹었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내 자리에서 고개를 빼고 보면 단발머리가 앉아 있는 자리가 보인다. 부서를 나눈 파티션 건너편이라 어떤 업무를 하는지 파악할 수는 없어도 존재 여부는 쉽게 알 수 있는 거리다. 최근에 나보다 먼저 점심을 먹으러 나간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보다 늦게 들어온 경우도 보지 못했다. 점심을 먹었다는 말에 궁금증이 커졌다.

“오늘은 누구랑 먹었는데?”

“혼자 먹었어요.”

“혼자?”

“네.”

“그럼 도시락 가지고 다니나?”

“도시락이라기보다는 요즘 오나오를 먹어서요.”

“아, 오나오…”

계속 대화를 주고받으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나오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돌아왔다.

잠시 후 동태탕 후배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무실에 들어왔다. 오늘도 동태탕을 먹은 게 분명하다. 후배는 동태탕을 먹었을 때와 스파게티를 먹었을 때의 표정이 사뭇 다르다.

“오늘도 동태탕?”

“맞춰보세요.”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후배의 메뉴선택은 다섯 손가락을 벗어나지 못한다. 첫 번째는 동태탕 두 번째는 생태탕 세 번째는 김치찌개 네 번째는 알탕이다. 스파게티는 열 손가락 안에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그의 입맛은 토속적이다.

“여기 사무실에서 네 메뉴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냐?”

“그럼 선배님은 뭐 드셨어요?”

“나는 다이어트 하느라 오나오.”

“누가 온다구요?”

나도 모르게 농담으로 ’오나오‘를 말했는데, 동태탕 후배 역시 그 실체를 모르고 있었다. 옆에 있는 30대 초반 젊은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선배님이 오나오를 하세요. 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데, 놀랍네요.”

나는 오나오라는 말 한마디를 뱉는 바람에 갑자기 놀라운 사람으로 변신이 됐다.

“근데 누가 온다는 거야, 그게 사람이야 물건이야?”

동태탕 후배의 채근에 젊은 직원이 설명을 했다.

“오버나이트 오트밀을 줄여서 오나오라고 하는데요, 요즘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많이 먹더라고요.”

나는 젊은 직원의 설명에 귀를 바짝 세우고 들었다. 볶은 오트밀에 요거트를 넣고 블루베리나 바나나를 섞어 먹는 다이어트 음식을 오나오라고 부른다고 친절하게 말했다. 오트밀에 요거트나 두유를 넣어 냉장고에서 하룻밤을 재우면 다음 날 먹기 좋게 된다는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농담으로 던진 ‘오나오’ 때문에 할 수 없이 다음날 죽에 가까운 오트밀을 만들어 왔다. 11시 30분이 지나자 주변에 있는 동료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7080 노래를 들으며 오늘의 점심 ‘오나오’를 한 숟가락 떴다. 불린 오트밀의 맛은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맛있다고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식감이 좋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맛이었다. 토핑으로 올려놓은 블루베리 씹는 맛이 상큼한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밀폐 용기 통에 묻어있는 요거트까지 깨끗하게 긁어먹고 난 뒤에도 포만감은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점심시간에 쫒기지 않고 의자를 젖힌 채 잠시나마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잠시 눈을 붙였다. 동태탕 후배가 들어온 것은 12시 40분 남짓, 시간을 확인하고 난 뒤에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오나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 정확히 30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선배님, 그거 먹고 되겠어요?.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건데.”

“맨날 밥만 먹고 사는 것도 지겹지 않냐, 간편식도 먹고 그러면서 생활의 리듬을 바꿀 필요도 있지.”

나는 본심이 아니었고, 동태탕 후배 역시 수긍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후배는 자리를 돌아가면서 손을 들어 V자를 나타냈다. 열심히 잘 해보라는 응원이 표시로 보였다.

“승리의 빅토리를 안 해줘도 다이어트 열심히 할 테니 걱정하지 마.”

“저는 응원의 빅토리가 아니라, 다이어트를 이틀 밖에 못 한다는 표시였는데.”

후배는 비아냥거리는 말투와 함께 묘한 미소를 던졌다. 오나오를 꾸준히 하고 있는 단발머리의 자리로 갔다. 책상은 단정했다. 책꽂이에는 여전히 내 시집이 꽂혀 있었다.

“몸무게가 몇키로여?”

큰 목소리로 물어본 것도 아니었는데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더니 다른 여자직원 두 명과 남자직원 두 명이 일제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서양식 포즈가 어색했던지 단발머리가 슬쩍 웃었다.

“나는 73키로야, 키보다는 쫌 많이 나가는 편이지, 근데 어디 살을 뺄 때가 있다고 다이어트를 하는 건데, 지금 몇키로야?”

어색한 미소를 짓던 표정은 금세 당황스러운 얼굴로 바뀌었다. 단발머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의 시선은 그대로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궁금증과 날카로움이 함께 묻어있는 눈빛들이었다. 어제 오나오를 친절하게 설명했던 젊은 남자직원이 급하게 달려와 옆구리를 툭 쳤다.

“선배님, 여직원한테 몸무게를 물어보는 사람이 어딨어요?”

“내가 못 물어볼 걸 물어봤나? 나도 밝혔잖아. 73키로라고.”

“여자 몸무게 물어보는 게 실례라는 걸 모르세요. 그리고 자칫 성희롱으로 걸릴 수도 있어요.”

“나는 73키로, 당신은 몇키로냐? 이런 질문이 왜 성희롱인데?”

말하는 중에 갑자기 목소리 톤이 높아지자, 단발머리 여직원이 벌떡 일어나 얼굴을 나에게 내밀었다. 입술이 볼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를 뱉었다. 모기소리 만큼 가늘었다.

“저는 54키로에요. 혼자만 알고 계세요.”

 

단발머리 여직원의 몸무게가 54kg인 걸 아는 사람은 회사 내에서 내가 유일했다. 그 사실을 확인해 준 것 역시 단발머리였다.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카톡이 울렸다.

“제 몸무게는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남자친구도 몰라요, 그러니까 54키로는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 가셔야 해요.”

무덤까지라는 말이 다소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혹시나 가지고 있을 단발머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답장을 보냈다.

“내 몸무게 73키로는 동네방네 소문내도 아무 상관없으니, 부담 갖지 않아도 돼요.”

“제 사생활의 일급비밀을 알았으니 49키로로 빠질 때까지 저랑 같이 점심은 오나오를 계속 드셔야 합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문자가 날아왔다. 자신이 다이어트 성공할 때까지 오트밀 죽을 같이 먹어야 한다는 돌직구 발언은 난감했다. 한 달이 걸릴지, 두 달이 걸릴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현기증이 났다. 점심 한 끼의 다이어트 후유증 탓인지, 아니면 오나오 점심을 계속 먹어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퇴근 무렵 단발머리 여직원의 책상에 감자튀김이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 뛰어가 감자튀김을 빼앗았다.

“이걸 먹으면 다이어트에 실패할까 싶어서.”

단발머리가 놀라서 쳐다봤다.

“오나오를 계속 드셔야 하는 걸 걱정하시는 건 아니고요.”

그 이후 나는 단발머리의 주전부리를 만류하느라 신경이 곤두섰고, 점심시간마다 오나오를 수행자처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는 늘 배가 고파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적잖은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닷새 뒤 저울에 올라간 내 몸무게는 71kg을 가리켰다. 2kg 감량은 오나오 때문이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단발머리의 몸무게는 좀처럼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어 책상 서랍에 과자가 쌓여있다는 소문은 확인할 수 없었다.

정덕재 시인
정덕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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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 시인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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