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40] 한민족의 인문환경 아이콘Ⅱ, 소나무....예산군 용궁리 소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140] 한민족의 인문환경 아이콘Ⅱ, 소나무....예산군 용궁리 소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1.11.04 15: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굿모닝충청 글 백인환, 사진 채원상 기자] 전종환 등이 쓴‘인문지리학의 시선(2005년)’에서 ‘풍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일본의 환경 철학자 와쓰지 데스로우(和辻哲郞)는 일정 범위의 지역에 나타나는 기후, 지질, 토질, 지형, 경관을 총칭하는 인간의 거주 환경을 풍토(風土)라 한다”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한반도와 지중해를 비교해 보면 보다 쉽게 이해된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사계절이 뚜렷하여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과 봄은 극히 건조한 날씨를 보이는 계절풍이 발달했으나, 지중해는 바람과 강수량이 적어 여름이 건조하고 겨울이 상대적으로 다습한 기후를 보인다.

바람과 비의 차이는 식물이 만들어내는 풍경부터 농사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경관을 보여준다.

바람과 강력한 폭우로 우리 나무들은 부러지거나 한쪽 방향의 비뚤어진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바람과 비의 영향이 없는 지중해의 나무는 반듯한 모습으로 자란다.

이런 풍토의 차이는 회화나 종교와 철학에 영향을 준다.

우리 문인화의 소나무가 비대칭으로 묘사되어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면, 지중해 국가 및 유럽 회화 속의 수목은 대칭 형태로 표현되고 풍경화의 원근법 탄생에 기여했다.

반복되는 자연재난과 기근은 합리적인 이유보다 자신의 태도와 복 없음을 한탄하면서 기복과 민간 신앙에 의존하는 우리에 비해, 농업과 목축이 발달한 지중해의 삶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 이성을 추구한 서양철학의 발상지가 됐다.

청년 이어령도 ‘흙속에 저 바람속에(1963년)’라는 저서에서 한국인의 DNA를 풍토에서 찾았다. 우리 민족에게 새소리조차 슬픈 것은 먼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가난함과 한 많은 삶에서 이유를 찾았다.

요즘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오징어게임’의 줄다리기에서 불리한 체격조건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청년 이어령은 ‘가래질’에서 이미 얘기했다.

즉 한쪽의 일방적인 힘으로 전진할 수 없는 ‘가래질’처럼 서로 다른 위치에서 힘을 합치려면 호흡과 장단이 중요하고 그 힘의 단압이 우리 특유의 장점이라 했다.

이런 풍토론의 입장에서 소나무는 단연코 우리의 인문환경을 대표하는 나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농업기술 발달은 농업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고, 덩달아 인구가 증가하면서 촌락들이 여기저기 생겼다.

목재와 땔감 수요부터 거름과 먹을거리, 그리고 가축을 키우기 위해 점차 사람들은 숲에 개입하게 됐고, 숲의 토양은 척박해졌다.

그동안 마을 주변의 숲은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가 주로 분포하였지만, 점차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소나무가 많아졌고, 농토 확장과 물류 유통의 수요까지 소나무 쓰임새는 더욱 많아졌다.

민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솔잎으로 금줄을 쳤고, 솔잎과 솔가지를 태워 음식을 지어 먹었고, 보릿고개에는 소나무껍질로 궁핍한 기근을 버텼고, 송화 가루와 솔잎으로 다식부터 송편·송기떡·송엽주를 만들어 먹었다.

결혼식 초례상에는 소나무를 꽂아 정절을 약속했고, 죽어서는 소나무 관에 누워 일생을 마치는 우리의 삶에는 소나무가 늘 있었다.

예산군 용궁리 밀양박씨의 무덤 또한 소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었다.

추사고택로를 따라 좌우로 약 400년의 소나무 숲과 200년의 백송, 그리고 주변의 우람한 소나무들이 심어져 소나무 정취를 느끼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사과밭에 둘러싸여 외부에서 바라보면 소나무 숲이 왜소해 보이거나 쉽게 볼 수 없다.

눈에서 멀어지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법.

지금의 예산 사과밭이 주민의 피땀으로 일구어 자손을 공부시키고 출가시키는 서사 또한 예산 주민의 삶을 드러내는 인문환경이지만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한민족과 소나무와의 관계를 잘 설명하는 밀양박씨의 무덤이 근현대에 형성된 사과밭 풍경에 둘러싸여 잊힐 것만 같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어쨌든 밀양박씨의 소나무가 위치한 곳은 ‘추사고택로’이다.

추사를 기념하고 추사를 체험하는 곳임에도 추사의 상징과도 같은 소나무 풍경은 사적지 주변의 숲길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소나무들뿐이다.

오히려 밀양박씨의 소나무와 맞은편의 추사의 백송의 서사를 엮고, 추사의 삶과도 연결한다면 추사와 용궁리 소나무 역사가 다양한 이야기와 체험 프로그램으로 재현될 수 있다.

우리나라 유교문화권 사업 대부분의 콘텐츠가 매우 빈약하다는 평가와 활용도가 낮다는 점과 달리, 드라마와 영화 속의 우리의 인문환경은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앞으로 외국인들이 우리 것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다면 추사고택로의 소나무 숲은 한민족의 인문환경을 느끼고 체험하는데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3-1(밀양박씨시묘) : 소나무 379살(2021년 기준)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