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언덕길을 걷다
믿음의 언덕길을 걷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⑫ 목동-용두동-선화동-대흥동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5.04.1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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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토요일 오전을 택하여 그간 미루어 두었던 도심의 언덕길을 걷는다. 용두동 언덕마을에서 시작해 최근에 새로 개관한 대전예술가의 집까지, 대략 3km정도의 도심 길을 걸으며 햇살에 취하고 몇 해 전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언덕길에 새겨진 사연들도 소개해 본다. 내가 걷는 언덕길은 위치상 대전의 동서 구도심을 가르는 경계와 같은 역할을 한다.

보문산에서 시작해 유등천에서 멈춘 그리 길지 않은 산줄기는 도심이 형성되면서 들어선 빌딩과 아파트들로 인하여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대전4거리에서 유성방향으로 곧게 뻗은 길에서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남서쪽에서 유등천이, 남동쪽에서는 대전천이 서쪽과 동쪽을 감아 흐르고 그 가운데 경계를 보문산의 한 줄기가 만들고 있다. 이 줄기는 대흥동에서 시작하여 선화동을 거쳐 용두동, 목동으로 길게 구릉을 형성하며 뻗어 내려 유등천에서 멈춘다.

용두동과 목동을 잇는 고갯길에서 출발한다. 설레는 기분으로 학교에 가던 길이다. 고갯마루에는 옛 목원대학교와 대성중고, 을지대병원의 대문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었고 좁고 긴 골목은 서점과 당구장, 학사주점 들이 채우고 있었다. 물론 학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곳은 또 87년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목소리들이 골목에 메아리쳤었다. 옛 목원대학 정문 골목길을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자 처음 세워진 성당이 자리한 목동성당과 프란치스꼬 수도원, 거룩한 말씀의 수녀원이 나타난다. 세월도 걸음도 멈춰 서게 하는 거룩한 공간이다.

출입이 통제된 수도원을 뒤로 하고 목동성당 안쪽 거룩한 말씀의 수녀원으로 향하면 1919년 천주교 대전 본당이 만들어진 이후 1921년에 지은 대전 최초의 성당과 마주한다. 단순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중세의 고딕양식이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와 내부 벽면의 ‘십자가의 길’ 부조, 그리고 첨탑의 십자가는 독일에서 각각 수입한 것으로 지금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전 최초의 성당도 한국전쟁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프란치스꼬 수도원과 목동성당이 인민군의 정치보위부 건물로 사용되면서 사제를 비롯한 우익인사, 양민 수백 명이 학살된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서슬 퍼런 일제의 식민 하에서도 꿋꿋이 세상을 향해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용두산 언덕의 예배당은 전쟁을 겪으면서 골고다 언덕처럼 숭고한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전쟁이 끝난 1954년, 목동성당 주변으로 목원대학의 전신인 감리교 대전신학원과 기독교재단인 대성중고등학교가 설립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대성고를 설립한 계남 안기석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8촌동생이자 고당 조만식 선생의 조카사위였다는 사실로도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자의 배경을 알 수 있다.

성당의 담을 돌아 충남여고 육교를 건너면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빼곡한 용두동 골목길로 접어든다. 변한 것이라고는 포장된 아스팔트뿐, 골목의 시간은 멈춘 듯하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화려한데 이곳의 삶은 처음 이곳에 정착한 모습 그대로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 한국전쟁 전후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학교의 담을 벽채 삼아 형성된 집들이 길게 늘어서있다.

쏟아지는 햇살에 널린 빨래들이 눈길을 잡는다. 옥상화분에 만개한 꽃들을 위안 삼아 발걸음을 옮긴다. 이정표가 없다면 한참을 헤맸을 골목을 빠져나오니 용두동과 선화동을 가르는 언덕이다. 동쪽으로는 가까이 선화동과 멀게는 계족산 자락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건물에 가려진 유천동과 태평동의 아파트 숲이 줄지어 서있다. 이곳 언덕을 중심으로 아파트와 작은 집들이 교회와 맞닿아 있다. 이웃들과 함께 나누려는 교회가 있어야할 자리이기도 하다. 갈등과 고통, 좌절과 절망조차도 함께 나누어야하는 곳이다.

언덕 위 빈들교회에서 남쪽 골목길을 따라 300m 정도 천천히 내려오면 서대전초등학교에서 올라오는 길가에서 호수돈여고와 만난다. 호수돈여고는 1899년 미국인 갈월 선교사의 도움으로 개성에서 주일학교로 시작된 학교이다. 개성에 있던 혼수돈여고는 한국전쟁 중인 1953년 대전으로 옮겨 새롭게 개교했다. 개교일로만 따져본다면 대전에서 제일 오래된 116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어느 여학교와 비할 데가 없이 조선의 딸로 길러주는 학교”라고 언급할 정도로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호수돈여고를 뒤로 하고 옛 충남도청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우측 길로 방향을 잡으면서 늦어진 걸음을 재촉한다. 이 길을 따라 5분여 걷다보면 언덕 위, 교회건물 중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산교회를 만난다. 1957년 용두동교회로 첫 예배를 드리기 시작해 지금의 성산교회가 되기까지 58년의 시간을 이 언덕에서 지켜왔다. 1999년에는 건축문화의 해를 맞아 대전광역시 지역추진위원회가 선정한 좋은 건축물 40선에 선정되었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교회를 돌아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영렬탑이 있던 자리로 향한다. 지금은 공원조성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지만 광복 이전인 1942년, 전사한 일본군의 위패를 안치하기 위한 계획으로 이곳에 영렬탑을 세웠던 자리이다. 이후 일본의 항복으로 물거품이 되었지만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영렬탑 자리는 한국전쟁 이후 국군 전사자들의 위패를 안치하는 추모공간으로 활용되다가 2007년, 보문산 보훈공원이 조성되면서 이마저도 옮겨가게 된다.

공터로 남은 영렬탑 자리.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던 곳이 우리 전사자들을 위한 추모공간으로, 또 3.1절과 한국전쟁 기념식장 역할까지 했다는 사실을 단순히 역사의 아이러니로 치부하기에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치욕의 역사를 반면교사 삼을 수 있는 상징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보문산으로 눈을 돌리니 아파트단지 사이로 성모초등학교가 들어온다. 저 자리 또한 일제의 상징인 대흥동 신사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일제가 대전이라는 도시를 건설하면서 옛 충남도청이 정면으로 보이는 소제동 솔랑산 자락에 태신궁이라는 신사를 건설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소제호가 매립되면서 그곳에 있던 신사를 1929년 현재의 성모여고 자리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일제의 잡신을 모셔놓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자리에 1966년부터 천주교 학교가 들어선 것 또한 아이러니이다.

보문산 한줄기가 곧게 뻗어 서대전4거리를 거쳐 유등천을 만나기까지 대전 원도심을 가르는 경계의 언덕 곳곳에는 식민지 시절과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지만 이와 더불어 교회와 학교들 또한 많이 들어서 있다. 아마도 사람이 살지 않는 야산이었을 이곳은 도시가 커지면서 도심에서 밀려난 이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을 따라 학교도 교회도 자리 잡았을 것이다.

마지막 종착지인 대전예술가의 집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옛 시민회관을 철거하고 새로이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탄생한 곳이다. 누구는 시민의 공간에서 예술가의 공간으로 축소되었다고 아쉬움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100년 동안 대전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이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도시가 기억하는 역사의 흔적들이 어디에선가는 빌딩과 아파트로 빠르게 바뀌고 있을 것이다. 현재만 존재하는 도시에 역사는 없다. 역사를 인식하는 도시는 과거의 기억과 함께 존재해야 한다. 대전의 변화도 역사와 함께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밖으로 지나온 언덕길이 스쳐 지난다. 갈급한 영혼을 위해 누군가는 기도를 했고, 배움을 이어갔고 또 누군가는 제사를 지냈던 언덕의 풍광이 버스 뒤로 밀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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