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이야기] “다리 아픈 분 쉬었다 가세요” 어슬렁 어슬렁 선화동 산책길
[원도심 이야기] “다리 아픈 분 쉬었다 가세요” 어슬렁 어슬렁 선화동 산책길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20)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5.09.0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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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화동길

[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교보빌딩과 옛 충남도청 사잇길로 들어서니 귀 아프게 울리던 자동차 소음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어깨를 부딪던 그 많은 인파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시간과 공간을 이동한 것 같은 뜸한 인적과 고요, 살짝 당황스럽다. 드문드문 개성을 달리한 커피집이 있을 뿐, 왠지 목소리를 크게 내면 안될 것 같다.
자연스레 말소리는 조용조용, 나직나직 줄어들고 발걸음의 속도 또한 서행으로 줄어든다. 늦여름의 평일 오후, 북적일 거란 예상은 안했지만 이렇게 한가로울 줄이야. 그래도 선화동 아닌가.
 

▲ 선화동 주택가, 담장을 훌쩍 넘은 오래된 나무

그래도 선화동 아닌가… 의 ‘그래도’ 의 속뜻을 선화동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알아챌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왕년에 말이여~’ 와 비슷한 뜻이란 걸. 선화동은 도청과 법원, 세무서 등 공공기관과 사무실이 밀집한 곳이었다.

아파트가 거의 없던 시절, 고급 2층 양옥집이 즐비한 소위 ‘부촌’ 이었다. 지금도 집집마다 그 시절 심었을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감나무, 모과나무가 하늘 높게 솟아있다.
충남도청이 들어서면서 선화1·2·3동으로 나뉠 만큼 많은 인구로 북적였던 동네였던 선화동, 2013년 내포 신도시로 도청이 이전하기 전, 그러니까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곳은 행정과 민원을 보는 공무원과 오가는 시민들로 활기차고 분주했다.

대전에 경부선, 호남선 열차가 통과하고 역이 생기면서 공주에서 이 곳에 자리 잡은 도청은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 한국전쟁 때는 임시중앙청 건물로 사용된 우리 지역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야말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금은 등록문화재 18호가 되었다. 나와 함께 동시대를 지내온 건물이 문화재가 되었다는 것에 괜히 기분이 이상해진다.

정신없이 달리는 기차 안, 바깥 풍경이 어지럽게 뒤로 사라지듯, 현재가 과거로 사라지고 다시 문화유산이 되는 동안 나도 나이를 먹고 있다.
이 동네와 이 거리와 옛 건물과 함께…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니 녹슬고 낡아버린 대문이며 귀퉁이가 바스라진 계단과 쇠락한 골목길에 왠지 모를 동질감이랄까… 괜히 더 정스럽다.
 

   
   
▲ 옛물건 삽니다

원도심 동네 대부분이 그렇듯 선화동 또한 많은 것들이 떠나갔다.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옛것은 곧 헌것, 값어치가 나가지 않는 것이라 여겨 미련도 정도 두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사를 떠났고 관공서가 이전하고 그에 따른 사무실들이 이전했다. 지금은 오래된 인쇄소, 낡은 책방, 옛날 물건을 산다는 표지판이 나붙은 골동품점 가게들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초라하고 쓸쓸한 기분만은 아닌 것이 옛것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시도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옛 도청 건물 별관에 둥지를 튼 시민대학도 그 중 하나일 터.

▲ 옛 충남도청 건물에 자리한 시민대학

‘행복해지는 힘을 기르는 시민대학’
스펙을 쌓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닌 행복해지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는 문구를,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어슬렁 어슬렁, 천천히 산책하는 길이 아니었다면 그냥 스쳐 지났을 문장이었을 것. 그러다 발걸음을 멈추게 한 또 다른 광경. 작은 가게 앞에 유난히 많은 의자들이 의아했다. 과장을 좀 하자면 오가는 사람보다 의자가 더 많아 보였다. 무슨 용도일까.
 

▲ 의자가 있는 거리

가죽소재부터 나무, 플라스틱까지 소재도 모양새도 다 제각각인 채 거리를 향해 놓여진 의자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 다리 아픈 분 쉬었다 가세요

‘다리 아픈 분 쉬었다 가세요’ 라고 쓴 사람, 의자를 가져다 놓은 사람은 아마도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해지는 힘’ 을 이미 기른 사람일 것이다. 모르긴 해도 맨 처음부터 저 의자 개수는 아니었을 터, 한 두개가 놓여진 자리 옆으로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가 하나 둘 가져와 이런 풍경이 만들어졌으리라. 아무리 피곤해도 잠시 앉았다 가면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마법의 의자가 거기 있다.
 

▲ 선화동 착한거리

역사가 오래된 동네엔 손맛 깊은 원조집, 맛집도 꼭 있기 마련, 선화동엔 대전을 대표하는 맛집이 많이 있다. 전국 최초로 ‘착한 가격 특화거리’ 는 선화동의 명물, 선화동 고려회관에서 선화동 우체국까지 거리 안에 20 개의 맛집으로 그야말로 맛도 착하고 가격도 착하다.

도청 이전으로 침체된 선화동 거리를 활성화하기 위한 아이디어인데 다른 업소보다 평균 10%정도 가격이 저렴하다. 시뻘건 고춧가루 양념에 부드러운 두부가 어우러진 광천식당 두부두루치기, 대전 사람이라면, 이 두부 두루치기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벌써 입안에 침이 고일지도 모를 일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맵다 맵다 하면서도 자꾸 먹게 되는 중독의 맛, 칼칼한 청양 칼국수도 빼놓을 수 없는데 두 식당 모두 40년 전통에 빛나는 착한 식당이다. 변변한 광고도 없이 메뉴 하나로 40년을 한결 같이 사랑받아 왔다는 사실이 놀랍고 반갑고 고맙다.
 

▲ before I die 벽보판

발길 닿는 대로 동네를 어슬렁 거리다 만난 벽보판이 눈에 띈다. 캔디 창(Candy Chang) 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머니의 죽음 후, 삶을 되돌아 보며 동네 폐가의 벽에 거대한 칠판을 설치하고 글귀를 써놓은 것에서 시작된 일명 ‘비포 다이 프로젝트’  죽기 전에 나는(before I die I want)…
그 후 전 세계 60개국 30여개 언어로 무려 500개가 넘는 벽을 세우는 공공예술이 되었다. 익명에 기대어 조금은 솔직할 수 있는 공간, 사람들의 마음속 소망을 들여다본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 는 철학적인 소망부터 ‘백억부자가 될테야’ ‘내집마련을 하고 싶다’ ‘000과 키스하고 싶다’ 까지 다채로운 소망으로 가득 찬 담벼락.  죽기 전에 당신은 무엇을 하기 원하는가 before I die I want (                               ) 무엇으로 빈칸을 채울 지 잠시 고민해야 겠다면 사색하기 좋은 동네, 선화동길을 추천한다. 나만의 산책길로 감춰두고 싶었지만 당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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