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이야기] 초겨울 중앙시장을 헤매다 만난 사람
[원도심 이야기] 초겨울 중앙시장을 헤매다 만난 사람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26) 중앙시장에서 50년 살아온 심경자 씨 이야기를 듣다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5.12.1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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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시장을 찾아가는 일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거기에는 사람의 온기가 흐르고 있으며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가 넘치고 있기에 가슴을 연 사람들이 서로를 쓰다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눈발이 흩날린 다음날, 추위는 많이 풀렸지만 하늘은 구름의 몸으로 노점들의 천막 위까지 내려와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토요일 오후였다.

양말을 잔뜩 쌓아놓고 지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있는 노점 사장님이나 북적이는 먹자골목에서 전을 부치고 있는 어른에게 시장에 관해 말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곁을 내줄지 눈치를 보며 시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무작정 한집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바둑용품점, 거기에 난방용품과 의료보조기구를 같이 취급하고 있었다.

난로 옆에서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고 있던 나이 지긋한 사장님에게 중앙시장에 관한 얘기를 붙여보았다. 중앙시장에서 20년을 보냈다는 그는 손사래를 치며 침구를 파는 집 사장님을 추천한다. 이곳에서만 50년이 넘게 장사를 하고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예전 중앙시장 A동에서 담요 파는 일로 시작해 20년을 넘겼고 여기 중앙시장 화월통으로 옮겨 침구로 30년이 다 되었으니까, 50년이 훌쩍이네. 시집오면서부터 시작한 일이. 아이들 다 키우고 시집, 장가보냈으니. 이제 나이도 70이 넘었고.”

적잖은 손님들이 오가는 매장에서 70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 심경자 사장님은 작은 의자를 선뜻 내밀었다.

“시장도 많이 변했지. 모습도 변했고 인심도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그래도 전통시장이니까 아직도 따뜻한 마음씨들을 간직하고 있어요.”

중앙시장을 가로로 관통하는 긴 길은 예전부터 화월통이라 불렸다. 이야기는 길의 이름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부터 시작했다.

“이 길에 화월식당이라고 있었어요. 대전에 있는 최고급 식당 중에 하나였지. 일식집인데 대전시의 연구원이나 공무원, 기관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찾던 유명한 식당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식당으로 통하는 거리라는 말이지. 원동국민학교 그러니까 옛 동구청 있던 자리부터.”

   
   
   
 

앙시장 내에 화월통은 시장의 중심으로 유명한 거리였다. 지금은 전통시장을 위협했던 대전의 백화점과 대형 상가들 또한 시대의 뒤꼍으로 사라졌지만 화월통은 아직도 거리를 부르는 이름으로 살아남았고 또 상인회의 이름으로도 자리를 잡고 있다.

“옛날에는 여기 대전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충청도, 전라도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모였어. 굉장히 크고 유명한 시장이었지. 한복, 혼수용품, 수산물, 먹거리, 일상생활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 여기에 모였어.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은 여기를 거쳐야만 장사를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중간도매상들이 모두 여기로 모였지. 그런데 지금은 그랬던 도매상이 많이 없어졌어. 도로가 좋아지고 다 차로 실어 나르니까 그렇게 공장도 소비자도 다 직거래가 되니까.”

1904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대전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어 호남선도 이어지면서 대전은 명실상부 사람과 상품이 모이는 상업도시로 발전한다. 그 중심에 중앙시장이 있었다.

일본인들이 먼저 원동, 중동, 인동, 정동에 상가를 이루면서 대전어채시장, 일용잡화를 파는 공설시장, 건어물을 취급하는 인동시장 등이 생겨났다. 이렇게 대전 상권의 중심이 만들어졌다. 광복 후 잠시 주춤했던 상권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다시 활기를 찾고 5~60년대 전성기를 맞는다.

말 그대로 중부권 최대의 시장으로 성장한 것이다. 당시 중앙시장의 상권은 전국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특히 주단, 포목, 한복업계는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이때는 빈털터리도 시장에 들어가면 부자가 되어 나갔다는 말이 유행했다. 한때 잘나갔던 동방산업, 동양백화점, 중앙데파트 등도 시작은 중앙시장의 보따리 장사였다.

그러나 70년대에 들면서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개통되자 중앙시장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좋아진 도로와 차량으로 어디든 직접 거래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전국적인 도매시장이었던 중앙시장이 그 기능을 빼앗긴 것이다. 전체적인 기능도 소매로 바뀌고 상권도 충청도를 중심으로 줄어들었다.

“가만히 보면 시장의 규모는 지금이나 그때나 그대로 있던 자리이니까 변한 게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많고 장사가 시끄러워야 크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래서 지금이 외려 작아진 것 같아. 땅이야 그대로이지만 사람들이 줄었으니까.”

중앙시장은 대전역에서 원동 사거리, 대흥교와 목척교를 잇는 사각형의 땅에 그 넓이가 12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큰 시장이다.

그 안에는 9개의 상설시장과 3개의 대형상가, 귀금속거리, 한복거리, 생선, 건어물 거리 등 6개의 각종 특화거리가 있으며 약 4천2백 개가 넘는 점포와 노점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규모에 비해 심리적인 규모는 많이 줄었다는 말이다. 

“시장 전체적으로 다루는 품목은 많이 늘었어. 소비자들도 똑똑해지고 요구하는 것도 많아졌으니까. 그런데도 조용하잖아. 옛날 장사는 하루 종일 그냥 서있질 못해.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이것저것 찾고 그럼 꺼내러 다니고 해야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너무 한가하잖아? 젊은 사람들도 많고 하루 종일 장사가 잘됐으니까. 근데 지금은 장소가 그대로인데 전체적으로 작아졌다니까. 마음이 작아진 것이지.”

일단 젊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그렇게 또 한 세대가 가면 시장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생각이 많아진다는 말과 함께.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여러 자치단체와 시민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도저한 시대의 흐름이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심 씨가 말하는 침구시장의 변화도 눈여겨 들어볼 대목이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한일합섬과 태광산업의 특약을 했어. 그러니까 독점 대리점 같은 거지. 굉장했었어. 소매가 아니라 도매로 뭉텅이 뭉텅이로 팔았지. 한참 벌 때에는 두 시간 잤어, 세 시간도 못 잤어. 그런데 언제부턴가 담요가, 그러니까 화학섬유가 하향 길에 접어들고 또 소비자도 더 싼 걸 요구했고 그러다가 큰 공장들이 없어졌지. 그래서 이쪽으로 옮기면서 소비자에게 직접 여러 가지 침구들을 다 팔기 시작했어.”

시대에 따라 한 개인의 변화는 그대로 시장의 변화이기도 했다. 도매에서 소매로 변하면서 가양한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했다.

“화학섬유가 점점 사라지면서 90년대에는 주로 실크를 많이 찾았어. 그리고 2000년대 들어와서 면을 많이 좋아했고. 그러다가 양모나 극세사, 너도밤나무에서 뽑는 모달, 뭐 이렇게 다양해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그때 창밖으로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밀며 시장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심 씨의 눈은 그들이 사람들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쫓고 있었다.

“저렇게 젊은 사람들이 시장을 찾으면 이뻐. 너무 이뻐. 그래서 더 주고 싶어. 또 외국 사람들 오면 나는 직원들한테 절대 바가지 씌우지 말라고 말해. 한 가지라도 더 주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달라고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지만 그 사람들은 말이 안통하고 그래서 나가면 바로 나라 욕이잖아. 외국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싶어.”
이 또한 시장의 변화이다. 젊은 사람들을 찾기 어렵고 외국인이 많아진 것.

“예전에는 막말로 백화점에서는 비싼 것 팔고 그래서 있는 사람이 가고, 시장은 서민들이 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백화점 물건이 여기에도 다 있어. 그런데도 사람들이 시장을 별로 안 찾지. 그래도 여기 오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따뜻해. 주로 50대, 60대 이상이고 40대, 30대는 크면서 엄마랑 같이 다닌 사람들이야. 추억이 잇는 거지. 그 사람들 때문에 시장이 이어지고 있는 거야. 우리도 사는 거고.”
이렇게 중앙시장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살아온 심 씨의 소원은 소박한 것이었다. 9시 뉴스를 보는 일이 예전의 소원이라고 했다.

“요즘은 집에 가서 9시 뉴스 봅니다. 좋기는 한데 그만큼 경기가 없다는 얘기지. 그래도 건강이 되는 한 일해야지. 그래야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완전히 일 안하고 쉬면 안 돼. 그리고 아직 더 시장에 있고 싶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하나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들이 늘어나자 안절부절 하는 신 씨를 더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어김없이 시장에는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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