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하의 작은 옹달샘] 길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자연이 망가지다니…
[지요하의 작은 옹달샘] 길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자연이 망가지다니…
‘4대강’, ‘국정교과서’… 소통이 세상을 살게 한다
  • 지요하
  • 승인 2016.01.0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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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요하 소설가

[굿모닝충청 지요하 소설가] 한겨울인 요즘에도 거의 매일 오후에는 한두 시간씩 걷기운동을 한다. 주로 가는 곳은 ‘장명수’라는 이름의 아늑한 포구다.

집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다. 초입머리에다 차를 대놓고 해변을 걸을 때마다 행복감에 젖곤 한다. 요즘에는 사람 보기도 어렵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바닷가, 적막하고 호젓한 갯가를 홀로 걸을 때는 두 어깨로 내려앉는 우수 때문에 돌연 눈시울이 젖는 때도 있다.

모래톱 길과 제방 길을 50분가량 걸으면 안기2리 어촌계양식장 관리사무소 앞에 도달한다. 제방 아래 바닷물이 들고 나는 곳에 길이 20미터, 너비 2미터 가량의 둠벙이 있다. 시멘트로 축조한 직사각 형태의 둠벙이다. 어촌계 주민들이 대합을 잡아와서 깨끗이 씻는 곳이다. 도구들도 씻고 장화도 씻는다.

내가 거의 매일 오후 한두 시간씩 걷기운동을 하는 장명수 포구의 겨울 저녁 썰물 때의 풍경이다. 오른쪽은 태안군 근흥면이고, 왼쪽은 남면이다.

대합 철에는 제방 위 공터에 차량들이 몰리기도 하고, 둠벙 옆으로 내려간 트럭 위로 저울질을 마친 대합 꾸러미들이 잔뜩 실리곤 한다. 주민들이 잡아온 대합을 꾸러미째 둠벙 물을 퍼서 씻은 다음 저울 위로 올리는 일이 반복되어 한동안 둠벙 옆은 소란스러운 풍경이 연출된다. 정겹기도 한 어촌의 생생한 풍경이다.

갯벌 길 축조와 철거

태안군 근흥면 안기2리 어촌계 주민들이 갯벌에서 잡아온 대합을 둠범 물을 퍼서 씻고 있다. 2012년 5월에 찍은 사진이다.

몇 년 전 그 둠벙을 기점으로 갯벌에 신작로가 생겼다. 갯벌 위로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자갈길이 만들어졌다. 폭 7미터, 길이 1Km의 갯벌 길이었다. 사리 때 바닷물이 멀리로 물러나면 어촌계 주민들이 먼 갯벌로 나아가 작업을 하는데, 대합 꾸러미를 운반하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 고역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어촌계에서 갯벌 길을 만들었다. 그 갯벌 길 끄트머리까지 트럭이 가서 대합 꾸러미들을 받아 싣고 나오니, 주민들은 대합 꾸러미를 이고 지고 갯벌 위를 걷는 수고를 어느 정도는 덜 수 있었다.

그 갯벌 길을 만드느라 어촌계 자금에다가 수협 지원금을 합해 기천만원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 길 덕분에 나도 걷기운동이 좀 더 원활해졌다. 사리 때는 그 갯벌 신작로를 끄트머리까지 걷곤 했다. 1Km에 불과하지만 해무가 약간 있는 날은 더욱 아스라한 느낌을 주는 길이었다. 끄트머리까지 가면 동남쪽 남면 몽산리 마검포 앞 등대와 서남쪽 근흥면 용신리 채석포 앞 등대가 양손에 잡힐 듯했다.

태안군 근흥면 안기2리 어촌계 주민들이 갯벌에서 잡아온 조개들을 물로 씻은 다음 저울에 올려 셈을 따지고 있다. 2012년 5월에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서 보니 그 갯벌 신작로가 없어져 버렸다. 100미터 정도만 남고 말끔히 철거되어 예전의 갯벌로 돌아가 있었다. 왜 그 길이 없어졌는지 나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다음날 다시 그곳엘 갔다. 다행히 망원경을 들고 어장 감시를 하는 어촌계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곧바로 의문이 해결됐다.

그 길을 만든 후로 종패 번식이 감소되어 수확량이 격감됐다고 한다. 그 길 때문에 종패들의 이동이 차단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합은 여름에 산란을 하는데, 밥풀만한 종패가 3년이 지나면 사람 주먹 크기로 성장한다. 종패들의 이동이 원활할수록 어장은 풍성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민들의 편리를 위해 만든 그 길이 오히려 어장을 망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바닷물을 가로막는 제방을 만든 것도 아니었다. 야트막한 길이어서 사리 때 밀물이 들면 완전히 물에 덮이고 썰물 때나 조금 때는 드러나는 길이었다. 그 길 위로 물이 흐르니 아무 문제도 없을 줄로 알았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바닷물이 소통을 하지만 속에서는 생물 소통이 되지 않았던 셈이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소통

태안군 근흥면 안기2리 어촌계가 어촌계 자금에다가 수협 지원금을 보태 기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2011년에 축조했던 갯벌 신작로. 어민들의 편리를 위한 길이었다. 내가 종종 걸었던 길로, 1천 미터에 불과하지만, 해무가 어슬렁거리는 날은 더욱 아스라하게 느껴지던 길이었다. 2012년 5월에 찍은 사진이다.

사리 때는 밀물에 완전히 덮여 바닷물의 소통이 원활이 이뤄지건만, 그것과 상관없이 종패의 이동이 차단돼 어장이 생명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 물속에서 종패들의 이동이 차단된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한 탓에 기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길 만드는 공사를 했다가 몇 년 만에 다시 기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갯벌을 원상태로 되돌려놓은 것은 우선 자연 질서의 신비를 깨닫게 한다. 그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비용 손실을 무릅쓰고 갯벌 길 철거 공사를 감행한 어민들의 용단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는 그와 유사한 일들이 많다. 전임 대통령 이명박이 ‘업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4대강 파괴공사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4대강은 외양으로는 그럴싸하다. 강들을 호수로 만들어서 많은 양의 물을 확보해놓고는 있지만, 정작 가뭄 때 가뭄 지역으로는 퍼 나를 수도 없으니 쓸모없는 물이다. 가둬놓은 물은 나날이 썩어가고 있으니 이미 골병이 든 상태다. 계속 그대로 둔다는 것은 위험하다. 언젠가는 어떤 큰 재앙이 인간에게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

어민들의 편리를 위해 2011년에 만들었던 갯벌 길이 종패들의 이동을 차단하여 어장을 황폐화시킨다는 판단에 따라 2015년 철거됐다. 100미터 가량만 남고, 예전의 갯벌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용단을 내려 4대강 보들의 수문을 모두 열어 물을 흐르게 해야 한다. 조물주의 작품인 강을 호수로 만든 것은 인간들의 만용이다. 다시 강으로 되돌려 물을 흐르게 하고, 자연의 순리와 소통 구조에 승복해야 한다. 4대강의 물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국가사회의 숨통과도 관련이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갯벌의 그 길과 성격이 유사하다. 밀물이 길을 덮으니 겉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생명 소통이 차단되는 것과 같다. 그것을 생각 못하고 국정화 공사를 감행하지만, 언젠가는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철폐를 해야 할 기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역시 ‘시한부’인 셈이다.

나는 장명수 어귀 안기2리 어촌계양식장의 갯벌 길 축조와 철거 상황을 보면서 2016년 새해의 소망을 확인한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진정한 소통이 인간과 세상을 살게 하는 길임을 우리 모두 명심하기를! 우리 사회가 정치권력의 불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소통의 시대를 열어가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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