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하의 작은 옹달샘] 왜 민정당이었고, 왜 새누리당이었을까?
[지요하의 작은 옹달샘] 왜 민정당이었고, 왜 새누리당이었을까?
언어의 도착 현상, 의문은 현재진행형
  • 지요하
  • 승인 2016.01.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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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요하 소설가

[굿모닝충청 지요하 소설가] 세상 사물들에는 모두 이름이 있다. 갈래 이름 아래 개별 이름들을 갖는다. 사람들이 모인 여러 갈래의 개별 공동체들 역시 고유 이름을 갖는데, 그 이름들은 저마다 정체성과 지향성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이름을 지을 때는 적잖이 고심도 하고, 그 이름이 생명력과 진실성을 갖게 되기를 기원한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과거의 민주정의당(민정당)과 오늘의 새누리당은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 한다. 왜 민주정의당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고, 왜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고도 흥미롭다. 궁금함과 흥미로움으로 글을 하나 써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뿌리와 역사

새누리당의 뿌리를 1980년대 초 전두환이 만든 민주정의당으로 보는 정치학자들도 있고, 5·16군사쿠데타 후 박정희 장군이 김종필을 앞세워 만든 민주공화당이라고 보는 정치학자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새누리당의 최초 뿌리는 이승만의 자유당이라고 생각한다. 당의 성격과 운영 행태, ‘보수(반공·친일·친미)’라는 아이콘으로 보면 자유당이 뿌리임이 분명하다.

이승만의 자유당-박정희의 민주공화당-전두환의 민주정의당-노태우의 민주자유당-김영삼의 신한국당-이회창의 한나라당-이명박/박근혜의 새누리당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그러므로 새누리당은 65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65년의 역사 안에서 여섯 번 (재)창당을 하며 도합 일곱 개의 당명을 표방했는데, 당명을 바꿀 때마다 ‘쇄신’과 ‘변화’가 고창되었다. 특히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이 창당될 때는 ‘새시대’와 ‘정의구현’이라는 말이 약방의 감초 격이었고, 김영삼의 신한국당 때는 ‘신한국건설’이라는 말이 활개를 쳤다.

일곱 개의 당명 모두 집권 여당의 지위를 누렸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 10년 동안은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으로 야당 노릇을 했지만, 신한국당을 한나라당으로 바꾼 초기에는 당연히 여당이었다. 또 한나라당의 기간이 14년 3개월이나 되니, ‘잃어버린 10년’ 후에는 여당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한나라당 14년 3개월 중에서 10년만 야당이었으니 도합 55년 동안 집권 여당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 14년의 앞과 끝은 여당이었으니 일곱 개의 당명 모두 여당의 지위를 누렸다고 보는 것은 타당한 견해일 것 같다. 달리 말하면 당명 하나도 통째로 온전히 야당이었던 적은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민주정의당의 ‘정의’는 무슨 뜻이었을까?

나는 도합 일곱 개의 당명들 중에서 전두환의 민주정의당과 이명박/박근혜의 새누리당에 대해서 의문이 크다. 육군 소장으로 국군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1979년 12·12쿠데타와 1980년 5·17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다음 민주정의당을 창당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체육관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됐다.

그는 당명으로 민주정의당을 채택했다. ‘민주’와 ‘정의’를 결합시킨 이름 민주정의당(민정당)의 깃발이 나부끼게 되면서 수많은 민주시민들이 곤혹스러움을 감내해야 했다. ‘민주(民主)’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이름이었다. 국민이 전혀 주인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체육관선거로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전두환과 추종 세력들이 민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세상은 한마디로 가치전도의 세상이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은 곤혹스러움으로 더욱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정의’와 ‘정의구현’이라는 말은 정의구현사제단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정의구현사제단은 결박당한 형태였고, 정의라는 말을 압수당한 꼴이었다. 광주시민 학살이라는 엄청난 만행을 저지르고 정권을 찬탈한 자들이 정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니 하늘과 땅이 뒤집힌 형국이었다.

전두환의 제5공화국이 뜨면서 ‘새시대’라는 말과 ‘정의구현’이라는 말이 촉새 날 듯 날아다녔다. 도시고 시골이고 모든 정치행사와 사회단체들의 행사에는 현수막마다 두 가지 단어가 꼭 새겨졌고, 모든 축사와 격려사들에 두 단어가 단골로 등장하곤 했다.

나는 당시 언어의 도착 현상 때문에 더욱 통증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그때의 통증이 남아 있고, 의문은 현재진행형이다. 전두환과 추종 세력은 왜 ‘정의’라는 말을 당명으로 채택했을까?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광주시민 학살을 자행한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불의를 인식했기에 그 불의를 정의로 둔갑시키거나 불식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일까? 정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면구스러움 같은 감정은 전혀 없었을까? 생각할수록 궁금하고 의아하다.

언어에 대해 아무런 외경심도 갖지 않는 것, 말의 의미에 대한 성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는 것은 또 하나의 야만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은 ‘옛누리당’이 아닐까?

▲ 2014년 6월 4일 실시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었던 윤상현 의원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연일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푯말을 들고 선거운동을 했다.

한나라당은 2011년 12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탈바꿈하면서 당명 변경 움직임이 일었다. 2012년 2월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가 합당하면서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이 채택되었다. 새누리는 새로운 ‘새’와 세상의 순우리말인 ‘누리’를 합친 이름이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나라를 뜻한다. 새누리당은 상징 색으로 오랜 세월 기피해왔던 빨강색을 채택했다. 그 과감성에 많은 국민들이 놀라며 큰 의미 부여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집권 여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어 새롭게 출범하면서 ‘쇄신’과 ‘변화’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두 날개처럼 펄럭이며 회자되었다. 새누리당 사람들이 빨간 점퍼를 입고 거리에 나타나자 다수 시민들이 충격을 받았다. 의심 가운데서도 많은 국민이 기대를 했다. 빨간 점퍼를 입은 그들의 입에서 ‘종북타령’ 따위는 다시 나오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2014년 6월 4일 실시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믿기지 않는 풍경이 등장했다. 당시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과 사무총장 윤상현을 비롯한 많은 당직자와 의원들이 시내 도처에서 일인시위처럼 푯말을 들고 서서 선거운동을 했는데, 하나같이 변화와 쇄신을 약속하는 말들을 내세웠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도와주세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라는 ‘약속’이었다. 그것을 보고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았다. 이미 당명도 바꾸고, 상징 색도 빨강색으로 바꾸고, 변화와 쇄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아직도 바꿀 게 있는가 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고, 그 후 바꾼 것이 과연 있는지, 그게 뭔지 지금도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바뀐 것이 있음을 요즘 들어 확실히 알게 됐다. ‘새’가 아니라 ‘옛’이 되어버리는 회귀 변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바꾸겠다’고 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를 지향한다는 그들은 옛날로 돌아가기 위해 난폭하게 후진을 감행한다.

박정희 부활도, 국정교과서도, 노동개혁(악)도, 전교조 법외노조도, 관제서명운동도, 일본과의 밀실협상도, 공권력 과다 의존도 후진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후진을 거듭하다 보니 자동차가 소음도 많이 내고 몹시 힘들어하는 형세다. 운전기사의 운전 실력이 너무 거칠고 조악해서 승객들이 멀미를 할 지경이다.

후진도 변화이긴 하지만, 지나온 풍경을 다시 보는 것은 신선하지도 못하고 피로감을 곱으로 겪게 한다. 그렇게 후진을 거듭할 양이면 새누리당 사람들은 차제에 당명을 아예 ‘옛누리당’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이름의 생명력과 진실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애초 당명을 ‘새누리’로 정할 때 진정으로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를 꿈꾸었다면 말이다. 언어의 도착과 의미 왜곡, 이름과 실체의 괴리 현상을 경계하고 정립을 추구하는 자세를 진심으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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