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하의 작은옹달샘] 다시 5공 시절의 기도를 바치다
[지요하의 작은옹달샘] 다시 5공 시절의 기도를 바치다
  • 지요하
  • 승인 2016.03.2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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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요하 소설가

[굿모닝충청 지요하 소설가] ‘기도(祈禱)’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신명에게 빎, 또 그 의식’이라고 적혀 있다. 한마디로 신에게 소원을 빈다는 뜻이다. 나는 천주교 신자인 고로 늘 기도 속에서 생활한다. 습관적으로, 또 의도적으로 많은 기도를 바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노년기에 접어든 시절에도 본당 성가대에 몸담고 있는 덕에 성가 연습을 많이 하는데, 나는 성가 연습도 기도라고 생각한다. 성가는 노래로 하는 기도이고, 성가 연습은 기도를 아름답게 하려는 일이며 기도를 반복하는 일이다. 그만큼 기도를 많이 하는 셈이다. 공동체의 반복적인 기도와 ‘화음의 완성’ 속에서 희열과 행복감을 얻기도 한다.

기도는 네 가지의 요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감사, 찬미, 통회, 청원이다.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고백하고, 그러고 나서 소원을 빌어야 한다. 이 네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온전한 기도일 수 있다. 그런데 개인의 기도는 대개 청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온통 청원만으로 이루어진 기도도 있다. 세속의 복을 빌기 위한 신앙, 즉 ‘기복신앙’도 우리 주변에는 많다.

▲ 지난 2월 8일 광화문광장 시국미사에서 ‘보편지향기도’를 바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신자들.

천주교의 미사전례 안에는 ‘보편지향기도’라는 예절이 있다. ‘신자들의 기도’라고도 부른다. 미리 정해진 신자들(대개는 4명)이 한 사람씩 개별 기도를 한다. 평일미사에는 없고 주일미사와 의무축일, 또 판공미사 등 특수한 미사에는 신자들에게 개별 기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 현재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에 거행되는 ‘시국미사’에서는 매번 보편지향기도가 신자들에게 배려되고 있다.

광화문에서는 위정자들의 회개를 청원하는 기도, 생명‧환경 파괴 문제를 환기하는 기도,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과 노동개악 저지를 청원하는 기도, 세월호 진실 규명을 애원하는 기도, 국정교과서 문제를 환기하는 기도, 남북 관계의 파탄을 아파하며 민족의 평화통일을 갈망하는 기도, 또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현재 수개월째 서울대병원에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 있는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비는 기도 등이 바쳐진다.

우리나라의 현실상황을 반영하는 특수한 기도들이지만, 보편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기도들에서 ‘보편지향’의 구체성을 더욱 명확히 실감할 수도 있다. 각 본당의 주일미사에서 바쳐지는 보편지향기도들은 대개 일률적인 것이어서 무미건조한 면이 없지 않다. 형식적인 느낌도 들고,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기도 해서 신자들의 감응은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미사 중간에 신자들에게 개별 기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대개는 한 사람당 1분 내외이므로 시간 소모도 적당하고, 정해진 사람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기도를 바치므로 전례 분위기를 해치는 일도 없다. 여러 명의 신자들이 참여하는 보편지향기도는 과거의 ‘보는 미사’를 ‘함께 하는 미사’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다.

1980년대 5공 시절에 바쳤던 기도들에 대한 기억

광화문광장에 가서 미사를 지내며 보편지향기도들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본당에서는 들을 수 없는 특수한 내용의, 다소 길기도 한 기도들이어서 나는 자연 추억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옛날에는 미사 중간에 신자들이 참여하는 개별 기도가 없었다. 초대 교회 때는 성행했으나 지나치게 사적인 일, 개인적인 감정 표현의 남용으로 6세기 이후 사라졌다가 1960년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복구되었다.

▲ 사진에 연도 표기가 없어 아쉽지만, 대략 1980년대 중반 30대 시절 태안성당에서 주송봉사를 하던 때의 모습이다. 내게도 머리칼이 검고 풍성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각 나라별로, 교구와 본당별로 시행 속도가 달랐다. 제대의 위치를 옮김으로써 사제가 신자들을 등지지 않고 마주보는 자세로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일시에 전 세계적으로 실현되었지만, 미사 중에 신자들이 참여하는 개별 기도는 본당 사정에 따라 유보되기도 했다.

필자가 속한 대전교구 태안본당의 경우 1980년대 중반에서야 ‘신자들의 기도’가 정착되었다. 지금은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매월 발간하는 <매일미사> 안에 매주일의 보편지향기도가 4개씩 수록된다. 대개의 본당들이 그것을 활용한다. 1990년대까지는 <매일미사>도 없었다. 미사 중간의 ‘신자들의 기도’에 참여하려면 신자 본인이 직접 기도문을 작성하거나 즉석 기도를 해야 하는데, 신자들이 그 일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까지 태안성당의 미사 주송(사회)을 내가 전담했다. 당시는 오늘의 ‘전례분과위원회’도 없었다. 내가 매주 주송을 맡으면서 제대 앞으로 나와 성경을 읽는 독서자들(2명)을 미사 직전에 지정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미사에 나온 신자들 중에서 옷차림이 괜찮은 이들에게 직접 독서를 부탁했으나, 전화기가 널리 보급된 후로는 전화를 이용하여 미리 부탁하기도 했다.

독서자를 지정하고 부탁하는 일은 비교적 수월했으나, ‘신자들의 기도’를 부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도문 작성을 부담스러워하는 신자가 많았다. 내가 기도문을 써주어야 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일껏 신경 써서 기도문을 써주었더니 기도 내용이 부담스럽다며 거부하는 신자도 있었다.

미사 주송을 전담하면서 나는 매번 ‘신자들의 기도’를 바치곤 했다. 주송자들을 양성하여 주송 봉사를 교대하게 된 후에도 자주 신자들의 기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곤 했다. 기도 지향의 일반적인 순서는 ①교회를 위하여 ②위정자와 세계 평화를 위하여 ③가난과 질병 등 여러 가지 곤경에 처한 이들을 위하여 ④지역이나 공동체를 위한 소망 등으로 이루어지고, 특수한 목적을 포함시킬 수도 있는데, 나는 주로 정치적인 문제나 시국과 관련하는 내용의 기도를 바치곤 했다.

▲ 사진에 연도 표기가 없어 아쉽지만, 대략 1980년대 중반 30대 시절 태안성당에서 주송봉사를 하던 때의 모습이다. 내게도 머리칼이 검고 풍성하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군사정변과 광주시민 학살의 엄청난 죄과를 안고 있는 폭압정권 시절이었다. 정권의 속성을 생각하는 쪽으로도 용기가 필요했고, 신자들의 반응을 염려하는 쪽으로도 용기가 필요했다. 그만큼 기도 내용은 절절했다. 나는 진실과 정의를 갈망했고, 하느님 신앙 안에서 추구할 수 있는 대의(大義)를 생각하곤 했다.

미사 후 성당 밖에서 내게 악수를 청하는 신자들도 있었다. 절절한 내용에 감동 받았다는 신자도 있었고, 기도를 들으면서 괜히 다리가 떨렸다고 하는 신자도 있었다. 물론 언짢아하는 기색들도 있었고, 묵인으로 일관하는 본당 신부에게 항의를 하는 신자들도 있었다.

오래 전 일이 되었지만 1980년대 엄혹했던 시절 내 절절한 기도들에 동감을 표시했던 신자들, 묵인으로 동조를 해주신 사제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나는 1980년대의 기도문들을 모두 간직해오다가 2000년 이후 홈페이지에도 올려놓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소개를 피하기로 한다.

2016년에 5공 시절의 기도를 바치다

최근 실로 오랜만에 미사 중의 보편지향기도에 참여했다. 내가 속한 구역의 판공 덕분이었다. 또 한해 사순절을 맞아 각 구별별로 판공성사를 보고 미사를 지내는데, 해당 구역이 미사전례의 독서와 보편지향기도를 하게 되어 있는 덕분이었다.

구역공동체에서 내게 1번 기도, 즉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하도록 지정해주었다. 나는 감사하며 기도를 준비했다. 조금은 고심이 필요했다. 수상하고도 요상한 시절이었다. 1980년대 5공 시절에 바쳤던 기도들과 비슷한 맥락의 기도를 바치고 싶었다. 그러자니 그 시절처럼 용기가 필요했다.

▲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된 4대강 파괴사업 중단을 위한 ‘생명/평화미사’에서 매번 미사 전 묵주기도 주송 봉사를 담당했다.

우리에게는 10년 동안의 민주정부 경험이 있지만, 민주주의를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국민들도 많았다. 남북 교류가 원활하여 평화통일을 꿈꾸며 금강산을 가고 평양을 갔다 온 사람들도 많지만, ‘종북타령’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실정이었다.

자유가 너무 넘친다며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의 독재가 필요하다는 기상천외의 사람들은 신자들 가운데도 많았다. 세월호 문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세월호를 그만 잊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갖가지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정보도 전혀 얻지 못하고 한 번도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위해 성당에 나온다는 신자들도 많았다.

시대의 아픔을 겪으면서 그 아픔 때문에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과 시대의 아픔을 전혀 느끼지도 못하면서 평화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차이를 체감한다는 것도 나로서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고통 때문에 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내용을 하느님께 말씀 드리자니, 사람들의 반응이 염려되어 정말로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끝내 용기를 선택했다. 용기를 발휘하여 기도문을 짓자니, 5공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곤혹스러움도 컸다. 정말 얄궂은 심사였다. 지금은 분명 2016년이지만, 5공 시절로 돌아갔고, 또 유신시대로 되돌아간 상황이었다. 2016년에 1980년대 5공 시절에 바쳤던 형태의 기도를 바친다는 것은 정녕 슬픈 일이었다. 나는 뼈저린 슬픔을 안고 기도를 바쳤다. 그 기도문을 여기에 소개한다.

▲ 올해 3월 7일에도 광화문광장 시국미사에 참례했다. 맨 앞의 내 모습은 멀찍이에서 보기에도 완연히 늙은 모습이다.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저희에게 공평과 정의를 가르치시고 바라시는 하느님.

역사의 수레바퀴가 후진을 거듭하여 다시금 독재의 기운이 발호하는 가운데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불평등 구조 속에서 서민경제는 계속 나락으로 빠져드는 암울한 현상이 이 나라를 뒤덮고 있습니다. 남북대화와 교류는 단절되어 통일의 꿈은 더욱 멀어지고, 거짓과 왜곡과 조작의 언어들이 언론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가 가려지고 훼손되는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가 중심을 잡게 하소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공정을 실현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구약시대 예언자들과 영원한 진리를 위해 세속의 권력에 당당히 맞섰던 신약시대 수많은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실체화하는 교회, 정치문제들에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뜻을 받들어 신자들에게 사회정의와 사회교리를 가르치며 힘차게 이끌어가는 교회가 되도록 교회의 장상들과 사제 수도자 신자 모두에게 뜨거운 성령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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