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 허락받은 시인’, 정의를 노래하였다
사랑이 그리움을 먹고 자라나듯
민주라는 이름은
고통을 먹으며 자라나는 것
기나긴 겨울이 하도 지루해
나사 빠진 생활을 털어내 버리고
눈 내리는 들판을 방황해 본다
싸움처럼 발자국을 내며 걸어가 본다
문득 나의 눈앞을 막아 선
어머니 마음같이 넓은 하늘, 하늘로
어딘지 훨훨 날아가는 새여
하늘이 모두 너 혼자 것인 새여
나는 하늘을 날고 있는 너보다도
비록 자유는 없지만
헛된 것에는 눈을 주지 않는다
정의만이 민주임을 굳게 믿는다
추운 겨울이 하도 지루해
하루만의 위안이라도 받고 싶지만
위안이 또 얼마나 절망인가를
이 땅에 살아보지 않은 이는 모르리라
새여
어디론지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여
- 정의홍, ‘하루만 허락받은 시인· 1’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정의홍 시인 (1944∼1996) 20주기를 맞이하여 ‘정의홍 전집’이 출간되었다. 1967년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시 창작과 비평 활동에 정진하던중 1996년 5월 고향 초등학교 동창회 행사에 다녀오던 길에 충북 괴산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시인이 떠난지 꼭 20년,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정의홍 시인은 어휘 하나, 구절 하나에도 예리한 감각과 함의를 이끌어 내면서 선명하고 독특한 이미지 탐구와 상징구사에 주력하였다. 오랜 독재체제를 거치면서 현실에 대한 당당한 비판과 날카로운 고발 그리고 저항의 목소리를 고유한 색깔에 담아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던 시인이었다. 그는 실생활에서도 도리와 명예, 의리를 중요시했고 온갖 불의에 대항하면서 거침없는 경구, 독설, 비판으로 시창작에 정진해 왔다.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쇠락해가는 고향과 1970∼80년대 사회현실을 향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시집 ‘하루만 허락받은 시인’(1995)에서 그는 단 하루만이라도 위안을 갈구하지만 그 위안이라는 것이 또 깊은 절망임을 아는 까닭에 얽매임없이 더욱 자유롭고 넓은 의식과 내면을 갈고 닦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시는 그에게 있어 부조리와 모순, 시대의 어둠을 녹여내는 최선의 해법이었고 시인이 감당하는 시대의 사명으로 시를 연마하고 후학을 지도했던 강골의 선비였다. 그가 떠난지 20년. 세상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삶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탈바꿈해 가지만 정의홍 시인이 화두로 삼았던 ‘정의’, 그의 이름처럼 ‘정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