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공섭의 포토에세이] 낙양성(洛陽城)의 보물, 용문석굴(龍門石窟)의 장인정신
[길공섭의 포토에세이] 낙양성(洛陽城)의 보물, 용문석굴(龍門石窟)의 장인정신
  • 길공섭
  • 승인 2016.08.1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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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공섭 사)대전동구문화원장, 시인/사진작가

[굿모닝충청 길공섭 사)대전동구문화원장, 시인/사진작가] 낙양은 우리에게 익숙한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냐’하는 성주풀이 노래의 그 낙양 이다. 달리는 차장으로 보이는 하늘은 황사로 인하여 온통 뿌연 하다. 중국에서 황사가 가장심한 곳이 하남성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없어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늘 찌푸린 날씨는 1년 내내 계속되며 강수량도 크게 모자라 매 마른은 곳이 낙양이라고 한다. 낙양 용문석굴에 도착하면서 황사와 미세먼지 그리고 더위까지 우리를 협공해도 용문석굴의 매력에 빠진 시간이었다.

낙양은 중국의 7대고도(古都)의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며 중국의 삼대석굴(대동의 원강석굴, 둔황의 막고굴)중의 하나인 용문석굴이 있는 곳으로, 2000년도에 세계 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산이며, 용문석굴은 당대의 문화 예술 혼이 도도히 흐르는 곳이다. 정과 망치 그리고 손으로 굴 하나를 파는데 30년~40년 걸린다는 설명에 그들만의 장인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굴 하나하나에 불교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과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1.5km에 걸쳐 2345개의 석굴과 2800개의 비석, 50개의 불탑과 10만개의 조각상이 그들의 손에 의해 축조된 것을 보면서 세계사에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대형 조각 박물관을 연상한다. 해설사의 이야기를 전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시대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정교하고 세밀하게 또는 웅대하고 작게 그 시대적 가치를 표현하려는 석공들의 노고와 장인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용문석굴을 답사하면서 만난 석굴에 있는 대부분의 불상이 파손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불교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여 개인이 소장하고 싶어서 떼어 같다는 해설사의 설명에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벌집 같은 석굴들을 보면서 불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대역사로 생각하며 시공을 초월한 그 시대의 불교에 대한 열정이 가슴에 와 닫는 시간이었다.

낙양은 ‘천하의 명도(名都)’로 불릴 만큼 유명한 고도(古都)다. 한 국가의 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전국 각지로 연결되는 교통이 편리해야 하고 외침을 막는 데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또 산물이 쉽게 집결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낙양은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황하가 낙양의 북방 지역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고, 낙하(洛河)와 이하(伊河)가 남쪽 지역을 관통하므로 외침에 대비하고 아울러 수로를 통해 사방으로 뻗어나가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길지라고 한다. 또 낙양 서남쪽으로는 복우산맥(伏牛山脈)이 뻗어있고, 동쪽으로는 대평원이 펼쳐져 있어서 산과 평원에서 나오는 풍부한 농산물들로 풍요로운 낙양성이 되었다. 이런 지리적 장점 덕분에 중국 역사상 13개 왕조가 낙양에 도읍을 정하고, 8개 왕조가 이곳을 제 2의 수도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낙양에는 수많은 유적지와 문물들이 산재해 있지만 불교학적으로 귀중한 자료인 용문석굴 (龍門石窟)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불교 신자는 물론이고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불상들을 통해 서역의 간다라미술이 어떻게 중국에 전래되었으며, 또 그것이 신라의 석굴암으로 어떻게 재현 되었는지를 알게 하는 문명 교류사의 귀중한 세계 문화유산인 것이다. 용문석굴은 낙양 시내에서 13㎞ 떨어진 곳인 야트막한 향산(香山)과 용문산(龍門山) 사이에 이하(伊河)가 흐르고 있는데, 양안(兩岸)의 암벽을 조각하여 만든 것이 바로 용문석굴이다. 그 가운데 백미는 봉선사(奉先寺)의 노사나불(盧舍那佛)이다.

봉선사는 당(唐)나라 황후 무측천(武則天)이 고종 함형(咸亨) 3년(672년)에 지분전(脂粉錢)
42만관(貫)을 희사하여 축조하기 시작했으며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675)에 낙성했다고 한다. 오늘날 봉선사의 건물들은 소실되었고 석굴만이 남아 있어 아쉬움이 크다.

중국하면 항상 느끼는 것은 그들의 거대한 땅덩어리에 삼천년 역사가 수없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역사적 가치와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서 중국을 대국 이라고 한 호칭이 왜 나왔는지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오천년 역사와 비교하면 우리문화유산이 우월한 문화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관리는 우리가 본받아야 하며, 차제에 우리 고유 문화유산을 국가적 관리와 관심 그리고 관리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고 체계적 기록유지가 꼭 이루어져야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당당하게 설 것이다. 문화유산은 그 시대의 삶과 정치 문화적 역사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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