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석의 新만인보]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의 도래와, 노동시장의 변화
[나정석의 新만인보]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의 도래와, 노동시장의 변화
  • 나정석 대기자
  • 승인 2016.09.2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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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석 대기자.

서울대 독어독문과 졸업.
월간지 코리아뉴스매거진 발행인.
전문기업 이노프트 전 대표

[굿모닝충청 나정석 대기자] 유럽에서 러다이트 사태가 있었다. 기계파괴운동이다. 증기기관차, 전기라는 발명이 일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노동시장의 대변화가 일어나면서 기존 노동자들이 삶의 빈곤함을 호소하며 일으켰지만, 기술혁명을 통한 신흥 부루조아지들은 정치체제를 변혁하고 식민지를 개척하며 세계질서를 새로 구축했다.

미국은 1970년대 초 CALS라는 정보통신혁명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국방성이 주체였고 과학연구기관, 군산복합형 기업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3차 산업혁명을 준비했고 그들은 1990년대 인터넷 및 정보통신혁명을 실현했다. 무기체계는 스마트 병기로 대체됐고 금융 및 서비스 산업은 새로이 재편되었다. 신자유주의라는 논리를 무기로 세계경제 질서를 재편한 것이다. 이 와중에 노동시장은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한국사회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대자본의 집중적 지배체계, 관료 및 정치인의 유착, 노동조합의 귀족화, 극빈층의 증가, 노동의 의미변화 등 한국사회는 모순덩어리의 나라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다. 노동의 변화는 더욱더 극명해 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의 시대를 넘어-일자리의 감소
인공지능 시대와 관련해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면서 가장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은 노동과 관련된 것이다.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 ▲노동의 의미와 가치의 근본적 변화 ▲노동자 및 노동조합이 갖는 지위의 근본적 변화 등이 예상된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대부분 일치하지만 일자리가 줄기만 하고 별로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과 줄어든 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생길 것이라는 주장이 서로 대립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 대중들도 일자리가 줄긴 하겠지만 또 그만큼 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근대사회 초기에 ‘기계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 우리 일자리가 다 없어지는 거 아니냐’라고 우려했지만 많은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가 생겼듯, 인공지능 시대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는 다르다.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은 손발을 쓰거나 머리를 쓰는 것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손발을 써서 일하는 것은 기계나 로봇이 대신하고, 머리를 써서 일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대신해주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남겠는가.

단순화시켜 계산해보면 일자리가 100개 줄고 100개 늘어난다면, 늘어나는 100개 중 70~80%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할 것이다. 이것도 인공지능 시대로 가는 과도기 중기 정도의 현상이고, 과도기 후기로 가면 100개 중 95%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다. 결국 일자리가 줄어드는 속도는 갈수록 가속화될 것이다.

전문가들이 상상하는 새롭게 생겨날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아주 특수하고 고용인원이 아주 적은 일자리들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전문가들이 10년 후, 혹은 15년 안에 새로 탄생할 일자리로 증강현실 건축가, 대체통화 은행가, 글로벌 시스템 세계기구 구축가, 불필요한 데이터 관리자, 아바타 디자이너, 3D 인쇄 디자이너, 3D 식품 프린터 디자이너, 소셜 교육 전문가, 풍력터빈 전문가, 기상기후 변화 전문가, 나노 메딕 신과학 철학자, 80세 고령자 서비스 제공자 등을 제시한 것을 보았다. 설사 이런 일자리들이 모두 사람으로 채워진다고 하더라도 고령자 서비스 제공자를 제외한다면 모두 아주 소수의 인원에게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위에 열거한 대부분의 일자리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한 것들이다. 인공지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한다면 일자리가 실제 생기더라도 인간이 인공지능에 비해 우월성을 가지고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는 거의 없다. 줄어드는 일자리에 비해 새로 늘어나는 일자리는 아주 미미할 것이다.

일자리 축소는 몇 십 년 후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정보화, 자동화 등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빠른 속도로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20대는 20~30년 전의 20대에 비해 그 수가 현저히 적은데도 일자리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고 상당수의 비정규직은 말만 비정규직이지 사실 거의 실업자나 다름없다.

현재 전체 실업률은 5% 전후, 청년실업률은 10% 전후인데 실제 체감실업률은 그 2~3배에 이르고 있다. 중국은 수십 년 동안 7~10% 대의 아주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현재도 6%대의 높은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자리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 있다. 중국의 임금수준은 아직 한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데, 많은 중국 기업이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로봇을 대거 도입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유명해진 중국 최대의 고용기업 팍스콘은 올해 장쑤에 있는 공장 한 곳에서만 근로자 6만 명을 로봇으로 교체했고 몇 년 안에 근로자 100만 명을 로봇으로 교체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산업용 로봇 생산량을 1년에 15만대, 산업용 로봇의 보유는 80만대로 계획하고 있다. 중국 식당 등에서도 주문과 결제가 앉은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가능해져 인력 감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경제역동성이 높아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일 뿐 한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가 이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이제 겨우 시동만 걸었을 뿐 아직 본격적으로 가속을 내지도 않았다. 가장 앞서가는 인공지능인 IBM의 왓슨을 비롯해서 많은 인공지능 기업들은 최근에야 각종 기업과 병원, 언론사, 로펌 등에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고 왓슨의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서비스는 이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준비 단계에 있다.

인공지능 발전이 본격적으로 가속을 내기 시작하면 일자리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2020년까지 세계에서 500만개 정도의 일자리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인간사회에서는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쉽게 관찰하기 어려운 각종 다양한 보수성과 저항이 존재하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 빨리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존슨앤존슨(J&J)이 지난해 출시했던 수면유도 마취 로봇인 ‘세더시스’(Sedasys)는 FDA의 승인도 받고 기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평균 연봉이 30만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 마취 전문의들의 집단 저항에 직면해서 기업이 일단 스스로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의료계가 주요 고객인 기업 입장에서 전략적 고려에 의해 후퇴를 했지만 기능에 문제가 없고 의료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시장에 돌아오겠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만만치 않은 저항을 경험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이런 저항은 발생할 것이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기업에 압력을 넣을 수도 있고 노조와 각종 사회단체들이 집단으로 위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소비자들의 습관이나 동정심도 저항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저항들은 결코 만만치 않은 힘을 발휘하겠지만 시장을 이길 수는 없다.

선진국의 기업들과 한국과 같은 준 선진국의 기업들, 중국과 같은 중진국의 기업들이 피를 말리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기술 격차나 제품의 질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비용절감에 대한 압력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20~30년 전 기술 우위와 제품의 질 우위만 믿고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는 것을 간과하다가 몰락한 일본의 전자산업처럼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기업은 아차 하는 순간에 경쟁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에서 기업을 상대로 다양한 협박을 하기도 하고 고용보조금을 비롯한 각종 당근을 제공하기도 하겠지만 이것들은 아주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효과만 있을 뿐이다. 수익이 충분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일부 대기업에서 이런 정부 시책에 적극 호응하는 듯 한 제스처를 취할 뿐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런 것을 수용하는 시늉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게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따라서 각종 사회적, 정치적 저항들은 초기 일정 기간 동안만 큰 힘을 발휘할 뿐 본격적인 시장논리가 발동하기 시작하면 그런 저항들을 강력하게 쓸어버릴 정도의 큰 힘과 속도로 인공지능이 확산될 것이다. 2020년까지 500만 개의 일자리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은 조금 섣부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정 시기, 특정 임계점을 넘게 되면 그보다 몇 배 빠른 속도로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국가가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감소를 줄이기 위해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어 보이는 것도 대부분 왜곡이나 은폐에 의한 효과일 뿐 본질적 효과를 내기 어렵고 중장기적으로 본다면 국가가 개입하든 개입하지 않든 일자리 감소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만 떨어트려 국가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노동의 의미 변화
그 동안 노동은 과대평가 돼왔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로 대표되는 좌파이론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파이론가들도 노동을 과평가해 온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처럼 생산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거나 100% 가깝다고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노동이 생산에서 절반이나 절반이 조금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좌파나 우파를 막론하고 많이 있다.

생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지식이다. 뉴턴, 와트, 에디슨, 테일러 등 많은 선각자들에 의해 발명되거나 발견되고 계승되어 온 지식들, 더 멀리 올라가서 도구의 발명, 언어의 발명, 농업의 발명 등 인류 발전의 초기 단계의 많은 중요한 지식들이 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다. 고대사회에서 이미 생산에서 지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30~50% 정도로 토지, 노동, 자본, 지식 중에서 지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근대사회로 오면서 지식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70%로 높아졌고 현 시점에서는 지식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90% 정도 된다고 생각된다. 노동과 자본 등은 모두 합쳐서 겨우 10~20% 정도의 비중만 차지할 뿐이다.
우리는 그 동안 노동과 지식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지식은 또 기계나 설비 등으로 대표되는 자본에도 녹아 있는 것으로 이것 역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노동을 전혀 빌리지 않고 지식과 자본만으로 생산을 하려고 하는 시대에 진입하면서 지금까지의 우리의 생각이 아주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지식은 노동의 일부나 자본의 일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독립적 요소로, 그것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독립적 요소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노동을 중시했던 것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자나 다양한 좌파이론가들의 영향을 받아서만이 아니다. 노동집약적 성장을 해야 했던 정부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노동을 존중하고 중시하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농경사회 때부터 이어져온 사고습관 때문에 관성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측면도 있다.

노동을 중시했던 것은 대기업 노조의 비정상적 행태로 대표되는 부정적인 모습을 낳기도 했지만 노동집약적 성장의 시기에 노동자들이 생산에 집중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준 측면도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벌써 오래 전에 노동집약적 성장 시기를 벗어났고 중국조차도 노동집약적 성장 시기를 벗어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노동을 중시하는 것이 긍정적 측면이 전혀 없고 폐해만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폐해가 압도적으로 많다.

노조의 비정상적 행태는 부정적 측면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가장 폐해가 큰 것은 경제활동에서 고용이 필수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표를 주는 일반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정치가 왜곡되고 행정이 왜곡되고 경제생활이 왜곡되는 것이다.

이런 왜곡된 사고방식은 최근 10~20년 사이에 더 심해졌는데 한국보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 훨씬 심하다. 고용상태를 개선하지 못하는 정치인이나 관료는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취약계층이나 실업자에게 매달 1천 달러를 지원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많이 지원해주느냐고 화를 내면서도 겨우 500~600달러 정도 가치의 노동을 하고 3천~4천 달러의 월급을 받아가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화를 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노동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필연적으로 노인, 병자, 장애인, 주부, 반실업자, 실업자 등을 비하하는 사고를 끌어낸다. 아무리 이들을 존중한다고 말을 하더라도 노동 중시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으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들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흐를 가능성이 높다. 말로는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들을 도와주는 데에 매우 인색하다. 본인은 연봉 1천만원짜리 일을 하면서 연봉 7천만원을 받으면서도 세금을 3천만원을 내서 이들을 도와주자고 하면 결사반대한다. 본인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이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동 중시적 사고방식에 여전히 깊숙이 젖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지위 변화
노동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변하면 노동자의 지위도 근본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들도 그런 면이 있지만 특히 한국은 노동집약적 발전 시기에 노동자들의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부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노동자들을 과잉착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과보호하고 과대 존중해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 주부, 실업자, 반실업자, 노인보다 훨씬 소득이 높은 노동자들이 각종 세제 혜택도 많이 받고 건강보험이나 연금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우대받으며 심지어 저축 등에서까지 우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에 대한 우대가 얼마나 심한가 하면 연봉 1억이 넘는 노동자 중에 소득세가 완전히 면제된 노동자가 1441명(2014년)이나 된다고 할 정도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사회취약계층에 지원되어야 할 돈이 고소득 노동자에 대한 세금혜택으로 돌아간 꼴이다.

작년의 한국 노동자 평균임금은 연 3281만원(월 273만원)이다. 이는 아주 많은 돈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많은 것을 감안하자면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런데도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노동자가 48.1%(2014년)이나 된다고 한다. 세금을 적게 걷고 노동자들이 그 소득을 직접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 경제를 위해 낫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 돈을 세금으로 걷고 취약계층에 나눠줘서 그들로 하여금 돈을 소비하도록 하더라도 경제효과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노동자에 대한 과보호 정책의 관성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노동자의 지위가 신성불가침의 고귀한 것이 된 이유는 노동자를 세상의 주인이자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 세상을 변혁시키는 원동력으로 보는 좌파적 관점에다가 노동집약적 산업 발전을 위해 노동의욕을 고취시키려는 우파적 관점이 합작해서 만든 것이다. 30~40년 전에는 좌파든 우파든 자연스럽게 그런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노동보다는 지식과 각종 자본(기계, 설비, 사회간접자본)이 훨씬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노동의 의미는 퇴색했는데 노동자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 노동우대 제도가 과거에는 소득재분배를 위해 순기능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효율적인 소득재분배에서 역기능을 하고 있다. 노동자보다 처지가 훨씬 더 어려운 사람들을 역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 노동의 의미는 더 퇴색하고 노동자들의 의욕을 고취시켜야 할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는 이미 사회에서 기득권층의 이미지가 아주 강해졌다. 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를 세습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할 정도까지 되었다. 만약 인공지능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 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을 때, 다시 말해 반실업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완전 실업자가 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거의 대부분 실업자에 가깝게 되고 한계상황에 있던 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도 거의 반실업자나 실업자가 되었을 때 이중삼중으로 보호되고 있던 일자리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극소수의 상층자본가의 뒤를 이어 사회의 대표적 기득권층으로 될 것이다. 이들을 특별히 보호하는 것이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노동유연화의 시대적 의미
현재 노동자 보호의 핵심은 해고를 아주 어렵게 해 놓은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신분 불안에서 벗어나서 열심히 일에만 집중하라는 취지이고 사용자에게는 사적인 감정이나 사적인 이해관계 등 경영 외적인 이유로 함부로 해고하지 말라는 취지다.

새로운 일자리가 넘쳐나던 시절에는 이런 높은 수준의 고용보호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일자리가 미미한 시대에서도 기존 노동자들이 이중삼중의 고용보호를 받다보니 새로운 세대에게는 일자리의 기회가 바늘구멍이 되고 말았다. 중장년층이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 반실업자들이 정규직으로 진입하는 것을 극히 어렵도록 만들어 놓았다. 노동자를 보호한다고 높은 수준의 고용보호를 해놓았는데 처지가 아주 좋은 노동자들만 보호하고 처지가 좋지 않은 노동자들(새세대 예비노동자, 비정규직, 실업자, 반실업자)을 소외시키고 차별하는 제도가 되어버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장년 세대와 청년세대의 일자리를 둘러싼 위화감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진입하게 되면 이 위화감과 대립이 훨씬 더 심해져서 심각한 사회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대립이 심각해지기 전에 이를 해소하거나 완화하는 데 집중적인 노력을 쏟아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과보호 받아와서 과보호 받는 것이 아주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기득권은 그대로 가져가겠으니 그건 건드리지 말고 비정규직 지원하고 청년세대 지원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의 일자리 구조에서도 불가능한 일인데 앞으로 도래할 인공지능 시대에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유일한 해법은 기득권을 상당 정도 양보하고 노동유연성을 점차 높여나가는 일이다. 기득권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 청년세대에게 최소한의 공정성을 느낄 수 있는 수준까지라도 양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층대립, 세대대립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면 모든 기득권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사회의 안정성도 크게 훼손될 것이다.
노동유연화는 가까운 미래에서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노동조합의 시대적 의미
노조는 근세의 산물이다. 근세 초기 노동자들이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 하고 낮은 임금과 긴 노동시간,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노동환경, 비인격적인 처우, 각종 인권유린 등에 시달렸다. 국가 행정조직이나 사법기관은 노동자들을 위해 제 기능을 못 했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조합을 조직하고 단결된 힘을 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환경, 적절한 임금과 적절한 노동시간을 보호해주는 각 종 법률, 각 종 행정조직, 사법조직 등이 아주 잘 조직되어 있다. 노동자의 권익이 침해당하거나 분쟁이 생겼을 때 이런 행정기관이나 사법기관에서 대체로 공정하게 처리하고 있다. 어느 한 쪽에 유리해 보이는 행정결정이나 판결도 대체로 노동자에게 유리해 보이는 결정이나 판결이 훨씬 더 많다. 자신의 직업이 아주 안정적인 것이라 믿고 자녀에게까지 물려주려는 것도 이러한 누적된 행정결정들과 판결들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처럼 달라진 현재와 같은 시대에서 노동조합은 별로 필요 없어졌다. 노동조합이 별로 필요가 없어진 시대에 살면서 노동조합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임금, 처우, 고용유지 등에서 비시장적인 위력을 과시하여 우위에 서겠다는 뜻일 뿐이다.

현재 노동조합 중에서 조직력을 과시하며 활성화되어 있는 노동조합은 대체로 대기업 노조가 많다. 이들은 이미 다른 노동자보다 임금, 처우 등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데 노조를 이용해서 이런 격차를 더 크게 벌이겠다는 것이다. 대기업 노조의 이런 행태는 이미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질시와 지탄을 받아왔고 그로 인해 생긴 위화감이 매우 커져 있는 상태다.

대기업 노조는 말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태를 계속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말로는 ‘천만 노동자의 단결’을 외치지만 기득권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위화감만 조성하는 자신들이야말로 노동자들의 단결을 저해하는 핵심요인이라는 사실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미 노동조합은 진보적 의미를 상실했다. 앞으로 본격적인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노동의 지위, 노동자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되고 노동조합도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노조가 사라지게 되는 것은 필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이 비정규직과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에 집중하다가 사라지게 될지 아니면 사회에 특별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이 조용하게 사라지게 될지 아니면 훨씬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기득권만 끝까지 고수하다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추한 모습으로 남으며 사라지게 될지는 자신들의 선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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