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리즘] 왕의 하루
[시사프리즘] 왕의 하루
  • 이홍준
  • 승인 2016.12.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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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준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체육관광과장

[굿모닝충청 이홍준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체육관광과장] 조선 국왕의 하루는 파루(罷漏)와 함께 시작한다. 파루란 도성 내의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해 종각의 종을 33번 치는 것이다. 그 시각은 새벽 4시 쯤인 오경삼점(五更三點)이다. 33번은 제석천을 이끄는 하늘의 33천(千)에게 하루 동안 나라가 편안하기를 비는 것이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은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 이처럼 실용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왕이 가장 먼저 하는 일과는 새벽 4~5시쯤에 기침해 간단한 죽 등으로 요기를 하고 왕실의 웃어른인 대비전에 문안을 드리는 것이었다. 나라 안 모든 사람의 스승이자 모범으로서 효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했다. 대비전을 문안하고 아침 7시경 식사를 마치면 조강(朝講)을 해야 했다. 경연(經筵)의 일종인 아침 공부는 학문에 밝은 유신들과 학문, 시사를 논하는 자리로서 오늘날의 학술토론회 또는 정책토론회를 하는 것이다.

조강이 끝나면 아침 10시 부터 조회(朝會)를 하는데 조참(朝參)과 상참(常參)이 있었다. 조참은 한 달에 네 번 정도 열리는 정식 조회이고, 상참은 매일 열리는 약식 조회다. 상참이 끝나면 윤대(輪對)를 하는데 이는 각 부서에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왕에게 직접 현안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것이다. 임금은 정승, 판서 등 고위직만을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경국대전을 보면 6품 이상의 문관과 4품 이상의 무관은 각각 관아의 차례에 따라 매일 윤대하도록 되어 있어 지금으로 치면 각 부서의 과장이나 그 이하의 실무자들의 보고를 받았다.

윤대는 상당히 세밀한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임금의 건강을 우려해서 매일 5명 이하로 보고인원을 제한했다. 왕이 실무자들과도 매일 직접 보고를 받다보니 모든 국정 현안을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꿰뚫을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면 다시 주강(晝講)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연에 열심이었던 임금들이 대부분 성공한 임금의 반열에 들었다. 세종, 성종, 정조 등이 그러하다. 그만큼 성공한 왕의 필수 조건이 ‘지식 경영’임을 알 수 있다.

주강 이후 오후 3시 경에는 다시 관료들과 직접 접견하는 자리가 이어진다. 지방으로 가는 관원들과 중앙으로 올라오는 지방관을 만나 해당 지방의 현안을 들으면서 지방이 사정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준비란 세자 시절부터 익히는 것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왕도(王道)를 익히는 이유는 바로 최고의 성군이 되기 위한 것으로 열심히 노력해야 ‘준비된 왕’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신료 접견이 끝나고 나면 군사 업무를 했다. 궐내에서 근무하는 신료들의 명단과 대궐을 호위하는 군관들의 명단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매일의 암호는 국왕이 직접 결정했다. 언적(言的) 또는 군호(君號)라고 하는 암호는 역모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암호는 매일 신시(申時)인 오후 3~5시에 입직한 병조의 참의나 참지가 세 자 이내로 밀봉해서 올리면 임금이 가부를 결정했다.

이렇게 그날 밤의 암호가 결정되고 오후 5시에는 궁권내의 야간 숙직자를 확인하였다. 오후 6시경에는 다시 석강(夕講), 야간공부를 하고 저녁식사가 끝난 후 오후 8시경에는 다시 한 번 대비전에서 잠자리 문안인사를 드렸다. 오후 10시경에 되면 왕은 을람(乙覽), 즉 독서를 하고 상소문을 읽었으며 깊은 밤 11시가 되어서야 잠을 청했다.

이처럼 조선의 왕들은 초인적인 의지로 국정을 수행하였다. 정조대왕의 경우 국정 외에도 특히 강조한 것은 자기반성이었다. 그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일일삼성(一日三省)을 몸소 실천한 것으로 유명했다. 정조는 “남을 위해서 일하는데 정성을 다했는가? 벗들과 사귐에 있어 신의를 다했는가? 배운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했는가?”를 어릴 때부터 교훈삼아 몸소 실천했다.

정조는 이에 더해 “밤에는 하루 일을 점검하고, 한 달이 끝날 때면 한 달 동안 한 일을 점검하고, 한 해가 끝날 때면 한 해 동안 한 일을 점검한다. 이렇게 여러 해 실천하니 정령(政令)과 일처리 과정에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마음 속에 깨닫게 되고 이 역시 날마다 반성하는 한 가지 방도다”라고 말했다.

조선의 왕들의 하루는 모두 공개되었다. 왕의 일상에는 늘 승지와 사관이 함께 하였다. 임금은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하고 모범을 보이고 반성을 함으로써 백성의 신뢰를 얻어 나갔다. 임금의 역할은 하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경건하고 그만큼 조심스럽게 행해진 것이다.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고 역대 대통령의 대부분의 말로가 하나 같이 비참해 진 것은 바로 이런 하루하루의 일상이 비밀리에 벌어졌기에 쌓이고 쌓여 곪아 터진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행적은 공개되고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한 달이 넘도록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한 최순실 게이트는 그 어느 때보다 부정부패의 강도가 심해 총체적인 국정의 혼란을 가져왔다. 대통령에게 사생활이 보장되는 것은 일견 타당한 일이지만 근무시간에는 사생활이 배제되어야 한다. 세월호 사태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있던 때 대통령의 행적을 두고 국민이 여전히 의심을 갖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대통령의 동정 공개가 되었다고는 하나 그에 대해 국민이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쌓여 부패가 산더미가 되어 국민의 분노를 넘어선 행동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안보와 경제가 휘청이고 있고 세계적인 흐름이 미묘한 이 때 대통령은 선택, 해결의 열쇠마저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처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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