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고민 Q&A] ‘싸가지 없다’는 말 때문에
[어르신 고민 Q&A] ‘싸가지 없다’는 말 때문에
  • 임춘식
  • 승인 2017.07.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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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前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노인의 전화 대표이사

[굿모닝충청 임춘식 前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노인의 전화 대표이사] Q. 우리 경로당에서 노인들끼리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한 노인(81)이 한 노인(78)에게 “싸가지 없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대수롭지 않는 말 같은데 너무나 민감하게 받아들인 거 같습니다. ‘싸가지’의 뜻과 그 유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대전, 남 79세)

A. 우리는 흔히 “싸가지 없다”고 쉽게 말합니다. 그리고 ‘싸가지’라는 말 때문에 언쟁이나 심한 다툼까지 벌어지는 사례를 흔히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싸가지’라는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싸가지’, 우리 모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 할 ‘4가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가 없다”는 뜻은 어른을 우러러 볼 줄 모르고, 어른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마음이 없고, 남을 생각할 줄 모르며, 점잖지 못하며, 무서운 것을 모른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막돼먹고 겁마저 모르는 막가파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그 첫째는 겸손입니다. 겸손한 자의 특징은 언제나 자기의 공을 남에게 돌리고, 윗사람을 공경할 줄 알며, 항상 자신의 일을 반성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둘째는 예의입니다. 물론, 겸손도 예의의 한 축을 지탱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러나 예의란 또한 사람들 사이에 서로의 존경에 대한 약속이니 겸손과는 조금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양보입니다. 옛말에도 양보지심(讓步之心)이라고 하여 언제나 나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자세를 처세의 으뜸으로 삼았습니다. 이 또한 배려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신용입니다. 신용 있는 행동은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되며 믿음을 줍니다.

이 네 가지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며 꼭 지켜야 할 덕목이며, 이것을 겸비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 네 가지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란 뜻의 ‘네 가지 없는 사람’ 이란 말로 불렀습니다.

또 다른 ‘싸가지’ 뜻도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싸가지’는 ‘싹수’의 전라도 방언입니다. 어릴 적하는 행동을 보면 ‘싹수’를 알 수 있다. ‘싹수가 노랗다’라는 표현들 자주 합니다. ‘식물의 싹이 올라올 때 보면 건강하게 잘 클 것인지 아니면 비실비실한 놈인지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싸가지가 없다=싹수가 노랗다. 싸가지가 있다=싹수가 좋다. 그래서 경우가 없고 욕심이 과해서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고 합니다.
또한 ‘싸가지’를 ‘싹수’의 강원·전남 방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싸가지’는 ‘싹수’라는 말의 방언에 불과합니다. 특정 지역의 방언에 불과한 단어가 지역에 관계없이 많이 쓰이게 되자 이 단어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싹수’는 어린잎이나 줄기를 가리키는 ‘싹’에 ‘수’가 결합된 어형입니다. ‘수’는 한자 ‘數(수)’이거나 ‘首(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數(수)’로 보는 것은 ‘數(수)’가 ‘운수’의 뜻이 있기 때문이고, ‘首(수)’로 보는 것은 ‘싹수’를 속되게 이르는 말에 ‘싹수머리, 싹수머리’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싹수’는 ‘앞으로 일이 잘 트일 수 있는 낌새나 징조’라는 비유적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싸가지’가 ‘싹수’와 같은 의미이므로 ‘싸가지’도 그와 같은 의미를 띱니다.

‘싸가지’는 ‘싹수’와 마찬가지로 ‘싹’이라는 단어를 포함합니다. 이 ‘싹’에 접미사 ‘-아지’가 결합된 어형이 ‘싸가지’이다. 접미사 ‘-아지’는 ‘강아지, 망아지, 바가지, 송아지’ 등에서 보듯 ‘작은 것’을 지시합니다.

아울러 ‘꼬라지, 따라지(보잘것없는 사람), 모가지’ 등에서 보듯 작은 것을 지시하되 비하(卑下)하는 의미를 더 보태기도 합니다. ‘싸가지’에 쓰인 ‘-아지’도 그와 같은 성격입니다.

그렇다면 ‘싸가지’는 ‘싹수’와 같이 ‘앞으로 일이 잘 트일 수 있는 낌새나 징조’라는 의미를 가지면서 ‘비하’의 의미를 더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싹수’와 감정적 의미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로써 ‘싸가지’가 본래 ‘예절’이나 ‘버릇’과는 거리가 있고 ‘가능성’ 내지 ‘장래성’과 관련된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싹수’는 ‘있다, 없다, 노랗다, 보이다’ 등과 어울려 ‘싹수가 있다’, ‘싹수가 없다’, ‘싹수가 노랗다’, ‘싹수가 보이다’ 등의 한 구성 요소로 쓰입니다. 이 가운데 ‘없다’와의 결합력이 대단히 강하여 ‘싹수가 없다’에서 주격 조사 ‘가’가 탈락한 뒤 축약되어 ‘싹수없다’로 굳어졌습니다.

물론, 방언인 ‘싸가지’도 ‘있습니다, 없다’와 잘 어울려 ‘싸가지가 있다’, ‘싸가지가 없다’의 형식으로 많이 쓰입니다. 반면에 ‘노랗다’나 ‘보이다’와는 잘 어울리지 못하여 ‘싸가지가 노랗다’나 ‘싸가지가 보이다’는 좀 어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싸가지’가 부정어 ‘없다’와 어울려 ‘싸가지가 없다’의 형식으로 많이 쓰이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싸가지’에 그야말로 ‘싸가지(싹수)가 없는 것’ 또는 ‘싸가지(싹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새로 생긴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적 의미는 ‘싸가지’와 빈번히 어울려 나타나는 ‘없다’의 부정적 의미 가치에 전염(傳染)된 결과 생겨난 것입니다. “아, 싸가지네.”, “뭐, 저런 싸가지가 다 있냐?”, “싸가지, 그런 재미있는 일을 저 혼자만 즐기다니!” 등에 쓰인 ‘싸가지’가 바로 새로 생겨난 변화된 의미로서의 그것입니다.

이렇게 ‘싸가지’에 의미 변화가 일어나면서 “싸가지 없네.”와 “아, 싸가지네.”라는 속된 표현이 거의 같은 의미를 띠는 것에 대해 굉장히 의아해 했던 것입니다. ‘싸가지’가 ‘없다’의 의미 가치에 전염되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고, ‘싸가지’에 ‘없다’가 붙는 표현과 ‘싸가지’ 자체가 어찌하여 같은 의미를 지니는가에만 골머리를 썩인 것입니다. ‘왕 싸가지’라는 단어나 ‘내 사랑 싸가지’라는 표현을 보면 ‘싸가지’의 의미 변화가 상당히 진척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싸가지’와 같은 의미인 ‘싹수’나 ‘싹’은 의미 변화를 겪지 않았습니다. 이들도 ‘없다’와 빈번히 어울려 쓰이지만 아직은 ‘없다’의 간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싹수’나 ‘싹’은 이들 ‘없다’와 통합된 표현에서도 여전히 ‘장래성’이나 ‘가능성’의 의미를 띱니다. 싸가지 있고 없고는 나이와 관련이 없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싸가지 없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의미적으로는, 싸가지 없다고 욕하는 이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앞으로 잘못 되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성나면 욕을 하겠나. 즉, 잘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누가 당신에게 싸가지 없다고 욕하면 욱하지 말고, 큰 절하며 감사하다고 하시라. 세상사 일체유심조로 살아가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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