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리즘] 지역어의 소중함과 미적 가치
[시사프리즘] 지역어의 소중함과 미적 가치
  • 김현정
  • 승인 2017.10.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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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교수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수

[굿모닝충청 김현정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수] 기나긴 추석 연휴도 오늘로 끝이 났다. 개천절과 한글날, 대체 휴일과 임시 휴일이 합쳐져 추석 연휴가 열흘 가까이 되는 황금연휴가 된 것이다. 이 황금연휴로 귀성객수는 물론 해외여행객수도 많이 증가하였는데, 인천공항 이용객수가 자그마치 206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는 역대 연휴 최고치에 달하는 수치이다.

추석 때만 되면 떠오르는 해프닝이 있다. 20년 전의 일이다. 그해 봄에 결혼한 아내는 처음으로 추석 명절을 쇠러 시댁으로 갔다. 아내는 은근히 걱정했지만, 난 미리 우리 집안의 명절풍속에 대해 귀띔을 해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와 아내는 차례상에 놓일 음식들을 하나하나 잘 준비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에서 발생했다. 한창 음식을 장만하던 어머니가 전(煎)을 담을 용기가 더 필요했는지 아내에게 “댄이 가서 채반 가져오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순간 아내는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한 기색으로 다시 묻자 어머니는 똑같이 “댄이 가서 채반 가져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아내가 우리 고향에서 쓰는 방언인 ‘댄’(뒤뜰)의 의미를 알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그때 내가 뒤뜰에 가서 채반 가져오라는 말이라고 일러주자 아내는 알았다는 듯 이내 가져왔다. 뒤란(뒤뜰)의 의미를 지닌 강원도 방언인 ‘댄’이 어떻게 충남 금산에까지 전해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참으로 예쁜 말임에 틀림없다. 이외에 ‘쩜매다’(잡아매다), ‘갱변’(강변), ‘피리’(피라미), ‘딸치’(쉬리) 등의 방언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고향이 정겹기 그지없다. 어쩌면 이는 점점 사라져가는, 소중한 지역어(고유어, 방언)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 지역의 언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고 한갑득 향토사학자와 한상수 대전대 명예교수가 펴낸 ‘진산언어박물관’(웃는나무)으로,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에 걸쳐 충남 금산군 진산에서 쓰이던 지역어와 속담, 수수께끼 등을 모아 일목요연하게 묶은 것이다. 진산은 지금은 금산의 관할에 놓여있지만, 역사적으로 933년 동안 진산군청 소재지였기에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 책은 부자(父子)가 36년 동안이나 고향의 언어를 거의 완벽하게 채록했다는 점에서, 국어사전에 누락된 1700여개의 단어를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의미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저서는 단순히 지역어를 채록한 데 그치지 않고, 그 말에 관련된 풍경과 생활, 풍속의 내용 등이 함께 포함되어 있어 해방 이후에서 한국전쟁, 그리고 1950년대의 실상까지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국어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지역어를 소개해보기로 한다.

지명 : 갱갱이(강경), 논미(놀뫼, 논산) 등
신체 : 가랑지(다리), 가심(가슴), 나빤대기(얼굴), 몸띵이(몸) 등
사람 : 자그매(작은어머니), 메누리(며느리), 아수(동생), 쟁인(장인(匠人)), 할아부지(할아버지) 등
동물 : 개골이(개구리), 개꽃새(철쭉새), 까마구(까마귀), 물뱜(물뱀), 빠가살이(동자개), 쌩쥐(생쥐) 등
식물 : 개버들나무(개버드나무), 개복숭(야생 복숭아), 가죽(참죽), 풋밀(덜익은 밀) 등
기타 : 겅거니(반찬), 군둥내(부패된 김치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고래구멍(아궁이), 깽매기(꽹과리), 꾀벗다(옷 벗다), 꾀까드럽다(꽤 까다롭다), 나쌀(나이 살), 돼지막(돼지우리), 배알(감정), 승질(성질), 쇠지름(소기름), 소뜯기기(풀밭으로 가서 소 풀 먹이기), 찍깨(집게) 등

이처럼 우리는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에 걸쳐 진산에서 쓰이던 다양하고 풍부한 지역어를 만날 수 있다. ‘겅거니’, ‘군둥내’, ‘꾀벗다’, ‘돼지막’, ‘소뜯기기’ 등은 진산, 금산지역이 아니면 듣기 어려운 생소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의 지역어를 정리해서인지 일본어의 잔재도 많이 보인다. 나래비(ならび, 줄), 바가야로(ばかやろう, 멍청이), 몸뻬(もんぺ, 고무줄 달린 여자 바지), 쇼부(しょぶ, 승부) 등. 이러한 말들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로 지속적인 언어순화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국적불명의 말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소통하기 편리한 표준어(공통어)에 의해 지역어(방언)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어를 순화해서 잘 사용하는 일과 아름다운 지역어를 살리는 일, 우리에게 모두 소중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앞으로 ‘진산언어박물관’과 같은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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