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칼럼] 1만 시간의 법칙과 전문가에 이르는 길
[리더십칼럼] 1만 시간의 법칙과 전문가에 이르는 길
  • 서상윤
  • 승인 2017.11.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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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윤 Talk~톡 스피치 대표 한국교육콘텐츠개발협회 회장

[굿모닝충청 서상윤 Talk~톡 스피치 대표] 전문가가 되는 법칙에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란 어느 분야에 위대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1만(一萬)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경험칙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 분야를 하루에 세 시간 씩 1년(대략 1000시간 정도)을 투자하면 알기 시작하고, 3년(대략 3000시간)을 투자하면 보이기 시작하고, 십 년(대략 10000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개념은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의 논문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앤더스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일만 시간의 법칙이 널리 알려졌다.

이 법칙을 강의하다보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까지 10년 이상을 매일 3시간 이상 씩 공부했는데 왜 지금 전문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학생들은 정규수업과 야간 자율학습 그리고 사교육까지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공부에 투자를 한다.

그런데 왜 전 과목에 대해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지 못 했을까? 그리고 똑같이 노력하는데 왜 누군가는 더 나은 결과를 얻을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일만 시간의 법칙’은 방법이 틀렸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히 투자만으로는 실력이 향상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혹시 늘 하던 방식대로 하거나 충분히 익숙해져서 힘들거나 어려운 것은 더 이상 하지 않으면서 그냥 시간만 보내는 것은 아닐까?

목적의식을 명확히 하고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고 매 순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야 한다. 지금은 내가 잘 할 수 없고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 시간을 투자해서 나아지고 좋아진다면 이것이 진정한 일만 시간의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는 것과 잘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의 차이는 바로 ‘1만 시간의 법칙을 통한 반복’이다. 즉 아는 것이 잘하는 것으로 승화되려면 1만 시간의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강의를 할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자세는 높이 사지만 그러한 자세가 반드시 성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즉 지금 배워서 그것을 성과로 이끌려면 1만 시간, 대략 10년의 반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이때 필요한 것은 ‘팀워크’이다. 당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과 일하는 것 그것이 팀워크이고, 팀워크는 시간을 초월하여 바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성과는 ‘좋아함’에서 나온다. 좋아하면 많이 하게 되고, 많이 하게 되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성과가 나온다. 경쟁력은 ‘좋아함’에서 나온다. 경쟁력은 ‘팀워크‘와 ’좋아함‘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의 저서 일만 시간의 재발견에서도 단순한 시간 투자가 아닌 진정한 노력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성공은 제대로 된 방법으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시간만큼, 빠르고 가깝게 다가온다. 처음엔 어렵고 힘들겠지만 노력도 습관이 되고 한계를 극복할 때의 기쁨과 짜릿함은 마르지 않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가을의 서정인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時)를 소개하면서 마무리 짓고 자 한다. 이 시는 대추가 붉게 익어가는 과정(성과를 내는 일)에서 겪은 수많은 고초들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안에 땡 볕 두어 달
저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 한 알’이라는 다소 작게 느껴질 수 있는 존재에 태풍과 천둥과 그리고 벼락까지 담아낸 시이다. 대추가 가을이면 영글어 붉고 둥글어진다는 당연함에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있을까?’,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 있을까?’ 하고 질문을 던진 순간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쩌면 ‘그냥 살아왔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자신의 ‘삶’ 역시 모든 것을 견디고, 세월의 축복을 받은 귀한 존재란 사실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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