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② 정부도, 공단도, 의사도 외면하는 ‘환자 복지’
[커버스토리] ② 정부도, 공단도, 의사도 외면하는 ‘환자 복지’
진료의뢰서가 뭐길래-의료전달체계 문제점
  • 남현우 기자
  • 승인 2017.11.23 0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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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티눈이 나면 보통 어느 병원으로 가는가? 모든 사람들이 집 앞 피부과를 간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이 피부과에서 수개월동안 티눈 하나를 치료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돈이 조금 들더라도 더 좋고 큰 병원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티눈으로 상급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진료의뢰서라는 서류가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이 환자는 어떤 증상이 있는데 큰 병원에서 치료해주길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요청서다.
진료의뢰서 제도는 생명이 위급한 중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가벼운 환자는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고 필요에 한해 진료의뢰서를 받아 상급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전달체계다.
즉 법적으로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상급병원에서도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데, 문제는 ‘의사의 자존심이 달려있는 문제’, ‘상급병원 의사가 내 후밴데 선배로서 면인 서지 않는다’ 등 터무니없는 이유로 진료의뢰서를 거부하는 사례가 대전에서 발생한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진료의뢰서는 의사의 영역이다. 티눈 같은 가벼운 질환은 주지 않을 수 있다. 중환자를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정당화시키고 있지만 의무적으로 가입한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건강보험제도 자체에 무의미함이 제기될 만한 상황이다.
진료의뢰서, 그저 필요한 제도라는 이유로 시민들이 그 손해를 감내해야만 할까? [편집자 주]

[굿모닝충청 남현우 기자] 지역 의료계가 선·후배 사이로 얽혀 있는 점, 자질 논란이 있을 것이라는 염려로 의사가 진료의뢰서를 작성해 주지 않아 건강보험 가입자 중 일부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지역 의료계는 “극히 드문 일이고 오히려 의원급에서는 제대로 된 진료로 없이 진료의뢰서만 떼러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반박했다.

충남대 의과대 출신의 한 의료인은 “진료의뢰서 제도는 오래전부터 대형병원의 ‘환자 싹쓸이’ 수단으로 쉽게 이용돼 해마다 지적이 일고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들이 더욱 양질의 진료를 받기 위한 욕구로 상급병원을 찾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동네 의원을 방문해 진료도 하지 않고 진료의뢰서만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박 씨처럼 수개월 동안 특정 의원에서 치료를 받았음에도 진전이 없는 경우 더 나은 병원으로 가고자 하는 환자를 의사가 어떤 방법으로든 제지해서는 안된다”면서 “이 과정에서 해당 피부과 의사의 반응은 의료인으로써 낯 뜨거운 일”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문 일이다. 한 두 건의 사례로 지역 의료계를 동일한 잣대로 일반화시켜서는 안된다”며 “진료의뢰서 제도 개선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일고 있는 만큼 의료인에게는 양심이, 환자에게는 양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해당 피부과 의사가 충남대병원 전문의가 자신의 후배라는 이유로 진료의뢰서를 거부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지역 의료계가 특정 대학 출신 의료인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대전은 유일하게 충남대병원만이 3차 진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돼 있는데, 동네의원의 의사 대부분이 지역 의과대 출신이고 충남대병원 전문의들과 대부분 선·후배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한 다리 건너면 선배, 두다리 건너면 후배’식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충남대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한 의사는 “대전의 1차 의원급부터 3차까지 지역 의과대 출신 선배들이 많다. 어느 의원에 어떤 선배가 있고 어디 과에 어느 후배가 있는지 몇 명만 건너면 다 아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러한 복잡한 이유로 얽혀있는 진료의뢰서 문제에 대해 건강보험공단 측은 “진료의뢰서는 의료법에 따라 의사 고유의 영역이다. 환자가 원한다고 해서 반드시 작성해 줘야 하는 문서가 아니고 오롯이 의사의 재량”이라고 일갈했다.

공단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 지정과 진료의뢰서 제도는 보건복지부가 제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과 의료법에 의거해 선정되고 시행된다”며 “이 중 진료의뢰서는 의료전달체계로 중·경증 환자를 구분해 치료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언급한 사례도 해당 의료인의 판단으로 결정된 것이고, 이것이 의료법 등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며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진료의뢰서는 환자가 요청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의 판단으로 작성하는 것”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공단에서 의료인에 대해 제재하는 것은 의료사고를 유발했거나 진료비를 부당하게 청구했을 경우 등에 한해 과태료, 의사 면허정지 등의 행정 징벌”이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한 것 이외에는 제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대전에서 상급종합병원은 충남대병원이 유일한 만큼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형병원은 많다”며 “보건복지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고려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상급종합병원은 43곳에 불과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단 관계자는 “공단 자체적으로 제시할 만한 대안은 사실상 없다. 건강보험공단도 보건복지부가 의료법 및 건강보험법에 입각해 결정한 제도 하에 있기 때문”이라며 “진료의뢰서를 두고 환자 뿐만 아니라 의료인들도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진료의뢰서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 사례가 아주 미미하더라도 이 제도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시민들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진료의뢰서는 필요한 제도’라며 시민들에게 손해를 감내할 것을 강요하는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가 하란대로 할 뿐’이라며 나몰라하는 공단, ‘진료의뢰서 작성은 의사 고유의 영역’이라며 실력보다는 자격을 운운하는 지역 의료인들의 태도에 문제는 없는지 되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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