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의 눈] 책갈피 사이에 人生이 머물다
[시민기자의 눈] 책갈피 사이에 人生이 머물다
  • 이희내
  • 승인 2017.11.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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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내 방송작가,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굿모닝충청 이희내 방송작가,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과 다양한 인생이 흘러들었던 장소가 있다.

바로 대전 유일의 헌책방 거리였던 “원동 헌책방 골목”.

누군가 말했다.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것 세 가지는 바로 친구, 구수한 장맛, 그리고 책이라고.
해묵고 손때 가득한 헌책방 거리의 책들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보석이기도 했고, 세상에 잊힌 고서를 만날 수 있는 보물섬 같은 곳이었으며,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고학생들에게는 구세주였다.

오늘도 이 곳은 발 디딜 틈 없이 쌓인 책들 사이로 세월의 두께가 쌓이는 듯 하다.

대전 원동 헌책방 골목 사람들
근 50여년을 이어온 대전 동구 원동 헌책방 거리.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된지 오래다.

작년에는 이 곳의 터줏대감이라 불리는 ‘청양서점’이 45년 만에 문을 닫으면서, 원동 헌책방 거리에서 풍기던 오래된 책 냄새의 흔적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1970년대부터 한 자리에서 2대째 헌책을 팔아왔던 청양서점은 이제 인터넷 서점과 대형 서점들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

헌책방 한 곳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느새 당연한 풍경이 됐다. 원동 헌책방 거리는 1958년 원동서적을 시작으로 헌책방 수십여 곳이 자리를 잡으면서 형성됐는데, 이제는 맏형 격인 고려당 서점을 필두로 남은 곳들은 거리가 부르기가 어색할 만큼 이제 몇 채도 되지 않는다.

20대, 30대부터 헌책방을 꾸려왔던 주인들도, 추억을 함께한 단골손님들도 세월의 힘 앞에서 은퇴할 나이를 맞은 것인지.. 헌책방 거리는 자연스럽게 빈 점포들이 늘어가고 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의 새로운 선택
부산의 명물 거리 중 하나인 “보수동 헌책방 골목”.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한 피난민 부부가 보수동 사거리에 헌책을 파는 노점을 연 것이 그 시작이었다. 하나둘 생겨난 노점들은 책을 싸게 사려는 학생, 정보를 나누려는 지식인, 낭만을 찾는 청춘남녀들을 상대로 발 디딜 틈 없는 책방 거리를 이뤘다. 60-70년대에 이르러서는, 70여 곳의 책방이 성업하며 부산을 상징하는 문화 중심가로 자리 잡았다.

세월이 흘러 이곳도 이제는 40여 곳의 책방만이 남은 200여 미터 골목길. 과거의 명성은 어느덧 낡은 책처럼 빛이 바랬다. 하지만 국내에 남은 마지막 헌책방 골목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추억을 찾는 사람들은 오늘도 그곳에 머물며 함께 한다. 수많은 책들만큼 수많은 인생 이야기가 골목에 펼쳐져 있다.

하지만 이곳도 세월의 흐름을 피해갈 순 없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도 불황이 찾아온 지 오래다. 하지만 이들의 대처는 달랐다. 책방 주인들은 번영회를 조직하고 살아남기 위한 각종 자구책을 내놓았다. 새로 나온 책과 헌책을 함께 팔거나, 인터넷 판매 사이트를 만들고, 축제를 열어 사람들에게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알리는 것이었다.

더불어 헌책방 골목의 이런 자체적인 노력에 부산시가 힘을 더했다. 이미 오래된 바닥 정비와 가게 셔터 그래피티 작업은 물론, 조명 및 음악 방송 시설도 설치되었고,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 성공으로, 헌책방거리는 부산의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되었다.
 
人生을 바꾸는 한 권의 책
2016년 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10명 중 2명이나 된다고 한다.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12.1권으로,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을까 말까다.

책 안 읽는 사회가 되어버린 현대사회. 이렇게 책을 멀리하는 요즘 세태가, 헌책방 골목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힘들었던 그 시절, 이곳에서 인생의 책을 찾아, 성공해 찾아왔다는 중년의 단골손님을 보면서, 꼭 갖고 싶었던 절판된 책을 찾아 1년여를 찾아 헤매이다 헌책방에서 책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문학도를 보면서, 이들 역시 보람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이다.

누가 버린 헌책이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의미가 되는 것처럼, 도시도 마찬가지다. 옛 것이 새로운 것과 만났을 때는 또 다른 힘을 가진 것이 태어나게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곳에는 그 새로움이 필요할 때인지도 모른다.

예전 헌책방에서 보물찾기 하듯 찾아냈던 인생의 책 한 권을 아직도 기억하는 가. 책 갈피갈피 숨어있던 우리들의 인생들..

이제 다시 펼칠 책 속에서 우리의 세상은 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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