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리즘] 영화 <1987>과 집단기억 그리고 미래
[시사프리즘] 영화 <1987>과 집단기억 그리고 미래
  • 양해림 충남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01.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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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림 충남대 철학과 교수

[굿모닝충청 양해림 충남대 철학과 교수] 지난 2017년 12월 27일 개봉한 영화 <1987>은 박종철 열사의 31주년 기일에 맞추어 1월 13일 500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1987>은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과 죽음을 중심으로 공안당국의 조직적 은폐와 이를 밝혀내려는 검사, 교도관, 기자, 재야인사 등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임무에 최선을 다하여 그 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많은 국민적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국민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져 가던 故박종철, 이한열 열사를 재조명하고, 지난 30년 전의 1987년 6월 항쟁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리라. 

우리는 왜 이미 지나가 버린 1987년 민주화운동과 같은 특정한 대상들이나 사건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하며, 생각할까? 왜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 <1987>과 같은 영화를 제작하고, 기념비를 세우고, 기록보관소를 만들고, 기억의 조형물을 설치할까? 그 이유는 기억이 문제풀이의 필수적인 능력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인간행동의 가장 두드러진 측면 중의 하나다. 참혹한 기억은 우리들의 삶에 손상을 입힌다. 홀로코스트, 6.25 전쟁, 일제강점기, 87년 6월 항쟁, 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그러하다. 기억은 우리가 여러 사실들을 한꺼번에 늘어놓음으로써 일상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풀 수 있게 해 준다. 기억은 <1987>과 같은 영화를 보면서 생각, 경험, 행동 속에 반영되어 지속적으로 표상된다. 또한 이 영화를 통해 우리의 기억은 자료, 능력, 감정과 같은 정보를 보존하고 이 정보를 개인의 필요에 따라 호출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학습은 그러한 표상들을 얻는 것인데, 뇌의 여러 영역들과 활동들이 표상에 관여한다. 사람의 기억은 놀랄 정도로 한계가 있으나, 아울러 놀랄 정도로 인상 깊은 능력을 지녔다. 예컨대 기억은 <1987> 영화에서 의식과 시간사이의 관계, 기억의 개인적인 측면과 역사적 측면사이의 관계, 생각하는 의식 주체가 우리의 인과성 개념을 바꾸어 놓았는지의 여부 등과 연관된다.

기억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학문적 논의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였던 모리스 알박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기억을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 한정하여 접근했다. 특히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은 기억을 시간의 관점에서 주관적 경험에 부속되기 때문에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개인의 의식이 철학적 성찰의 주요한 요소라 간주한다. 베르그송은 연속적인 변화를 순간적으로 파악한 것을 이미지라고 불렀고, 그 이미지들을 뇌라는 또 다른 이미지를 통해 포착해 형성한 것이 지각인데 이런 지각에 의해 구성된 것이 바로 기억이라 했다. 알박스는 베르그송과 같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기억을 사회적, 집단적, 구성적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면서 이를 집단기억이란 개념으로 표현했다. 영화 <1987>년과 같은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대한 집단기억이라는 것이 자민족 역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 대한 기억은 다양한 모습으로 다시 상기된다. 일제 강점기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소녀상 세우기, 1948년 제주 4,3항쟁 다시 기억하기,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사건 발굴,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재평가, 1987년 6월항쟁 다시 기억하기 등이 이런 사례에 속한다.

기억은 단지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1987> 영화에서 보듯이, 과거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기억을 해본 사람이라면, 기억이 과거의 재구성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한다. 기억하려고 해도 잘되지 않던 것이 갑자기 영화를 통해 기억되기도 하고, 기억된 것도 때로 왜곡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기억은 개인적 정체성의 연속을 위해 필수적일 뿐 아니라 문화의 전수와 사회의 진화 및 연속을 위해서도 필연적이다. 과거 1987년과 같은 민주항쟁의 집단기억은 향후 우리의 역사과제에 대한 문제풀이여야 한다. 왜냐하면 과거의 집단기억은 우리 미래의 삶에 연속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과거에 대한 정합적인 생각을 제공하고, 그 생각은 현재의 경험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기억의 결합력이 없다면, 경험은 살아가는 동안에 만나는 무수한 조각들로 파편화될 것이다. 영화 <1987>년과 같은 집단기억이 제공하는 정신적 시간 여행이 없다면, 우리의 개인사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의 미래에 대한 삶의 이정표로 작용하는 2017년 촛불항쟁과 같은 승리의 순간들을 회상할 길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 과정은 우리가 승리의 사건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고, 악몽 같은 사건들과 실망스러운 일들의 정서적 충격을 쉽게 희석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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