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인문학 서재] 겉 명분에 속지 말고,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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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 승인 2018.01.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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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굿모닝충청 임영호 우송정보대 특임교수] 하버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1821~1881)의 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끈질기게 받들어 읽고 있다. 인간의 본질에 관한 사색과 종교적 고뇌, 선을 권하는 교훈적인 내용이 들어있다. 더구나 인간의 내면 깊숙이 공존하고 있는 악마성과 탐욕스러운 본성을 심리학자보다 더 잘 묘사했다.

그러나 이 맛을 느끼려면 얼마간의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단어적 문장, 깊이있는 철학적 이야기, 너무나 많은 등장 인물, 문장 한 줄 길이만큼 긴 러시아식 이름이 읽는 자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도스토옙스키의《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신과 종교, 삶과 죽음, 사랑과 욕망 등 인간 내면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런 것들은 실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읽지 않으면 소용없다. 겉에 유혹할 만한 사탕발림이 있어야 한다. 작품소재는 막장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재산과 돈, 명예, 여자문제, 출생의 비밀, 살인 등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추리소설 기법의 최악의 패륜범죄 이야기다.

살인은 가장 무서운 악행으로 인간이 야수와 같다. 그중 아버지 살해는 범죄 가운데 가장 죄질이 무겁다. 이는 한 가정의 해체로 통한다.

이 소설의 주 무대는 1860년대 어느 지방의 작은 도시이다. 탐욕스럽고 호색한으로 아주 이기적인 늙은 아버지 표도르, 아버지와 성격과 행동이 비슷하여 아버지와 으르렁거리며 대놓고 싸우는 장남 드미트리, 무신론자로 학식 있고 이성적이나 형의 약혼자를 차지하려 하는 차남 이반, 마을의 존경 받는 어른인 조시마 장로의 가르침대로 사랑을 내면화하고 수도원에서 성장하면서 갖게 된 두터운 신앙심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막내 알료샤, 가족으로부터 전혀 사랑받지 못하고 집에서 머슴처럼 일하며 온갖 차별을 받고 사는 냉혈동물인간 요리사 스메르자코프가 등장인물이다.

장남 드미트리는 첫째 아내가 낳은 자식이고, 이반과 알료샤는 두 번째 아내가 낳았다. 스메르자코프은 표도르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떠돌이 백치 여인을 범하여 낳은 사생아다. 아버지 표도르가 자식들을 버리다시피 하여 이들 스스로 동가숙 서가식 하며 어렵게 자랐다. 부자간의 정은 조금도 없다.

네 아들은 선과 악, 뜨거운 욕망과 차가운 이성을 상징한다. 선은 천사 같은 알로샤이고, 악은 악마 같은 스메르쟈코프다. 인간을 이렇게 둘로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인간은 선과 악이 섞여 있는 전쟁터이다. 내면에서 선과 악이 치열하게 투쟁한다. 게다가 인간은 욕망을 가진 존재다. 절제 없는 욕망은 드리트리처럼 파멸로 이끌고, 인간성 없는 이성은 이반처럼 내면의 죄를 범한다. 선과 악, 욕망과 이성은 인간의 마음속에 섞여 있다. 인간은 욕망과 이성의 외줄 타는 존재다.

도스토옙스키는《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인간은 바로 이처럼 복잡한 족속이다’라고 정의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나름대로 통찰이다. 귀족이었던 도스토옙스키는 사상범으로 몰려 28세에 시베리아로 유배를 간다. 사형범으로 죽게 되는 운명이지만 총살 직전 풀려난다.

그곳에서 수많은 흉악범들의 범죄행위를 보고 듣고, 서로 간 증오를 목격하고, 인간부류들의 내면을 탐구한다. 감옥에 있던 시절, 읽을 수 있던 유일한 책이 성경이었다.

그때부터 그의 정신세계에 신이 등장한다. 게다가 불시에 찾아오는 간질 발작과 낭비벽과 도박으로 돈돈하며 늘 쪼들리는 빈곤한 생활을 하였다. 이 소설의 글자 하나하나가 돈이기에 등장인물들을 수다쟁이로 만들었다.

아버지와 장남은 재산문제와 그루센카라는 여인을 두고 질투와 증오심으로 서로 멱살 잡고 싸운다. 어느날 아버지 표도르가 살해당하자 당연히 드미트리가 살해자로 지목된다. 공공연히 아버지를 죽인다고 떠들고 다녔고 구체적인 정황증거가 그에게 불리했다.

억울하지만, 드미트리는 재판절차에 따라 형의 선고대로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한다. 본인이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죽이고 싶었으며 어쩌면 죽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미트리는 직선적 성격으로 자기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스스로 도둑놈이라고 말할 만큼 자기 나름의 양심이 있었다.

실제 범인은 사생아 스메르자코프이다. 자기가 숭배하는 이반이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을 알고 이반을 위해 오랫동안 범행계획을 세우고 지병인 간질발작 틈을 타서 아버지를 죽인다. 더구나 이반은 스메르쟈코프의 부친 살인에 묵시적 동의를 했으며 ‘신은 없고 모든 것은 허용된다’라는 사상을 불어 넣어 스메르자코프하여금 살인을 감행하게 했다.

이반은 스메르자코프의 자백에 자기도 공범이라고 괴로워한다. 법정에서 ‘저는 그냥 살인자일 뿐입니다’ 라고 고백한다. 마음으로 저지른 잘못 또한 유죄라는 생각이다. 이반의 반응에 낙담한 스메르자코프는 아무런 유서없이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반과 알로샤는 드미트리를 구출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은 대심문관 편이다. 심오한 철학으로 일반독자는 이해하기 쉽지않다. 무려 십여 쪽에 걸쳐 무신론자 이반이 대심문관의 이름으로 유신론자인 도스토옙스키의 종교관에 대립하여 주장한다.

만약 지금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면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악마가 예수에게 시험했으나 예수가 거부한 기적과 신비, 권위를 가지고 지금의 교회는 연명해왔다. 결국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지금의 교회는 악마 편이라고 일갈한다. 

대심문관은 빵과 하느님이 주신 자유의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은 진정 자유를 원하는가, 아니면 빵만을 원하는 것인가. 예수께서 빵을 만드는 기적을 행하였으면 나약하고 비열한 존재인 인간들은 무릎을 꿇고 절대복종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에게 짐스러운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이것이 인간을 영원히 불행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은 고통을 거쳐 수난으로 이어져 결국 속죄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첫 장에 요한복음 12장 34절이 나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여기서 밀알은 누굴까? 토스토옙스키의 의도가 숨어있다.

높은 도덕성과 불굴의 용기의 일류사, 알로샤에게 많은 감화를 준 조시마 장로,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알로샤일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양파 한 뿌리’의 일화가 떠오른다.

지옥에서 나오려는 한 노파의 유일한 선행이 양파 한 뿌리다.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인간들에게 양파 뿌리 하나와 같은 작은 사랑만 있어도 그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살면서 선행이란 것을 얼마나 했나. 오히려 권력과 욕망에 사로잡혀 남에게 폐만 끼친 것이 아닌가. 진정 인간을 구제하는 것은 진심 어린 양파 한 뿌리와 같은 사랑이다. 지옥이란 무엇인가? 이 소설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고통’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위대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밑바닥 삶을 토대로 의미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인간군상들에 성찰하게 했다. 급하게 마음먹으면 완독하지 못한다.

그저 유유자적하게 이 책으로 일주일을 보내겠다면 죽기 전에 읽을 수 있다. 내용은 대충 알지만 끝까지 읽지 않은 자가 태반이다. 2000쪽에 가까운 길고도 어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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