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섭의 그림읽기] 술에 절었어도 빈틈 안 보인 화성의 자존심
[변상섭의 그림읽기] 술에 절었어도 빈틈 안 보인 화성의 자존심
  •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 승인 2018.01.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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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굿모닝충청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예진흥부장] 술은 낭만이고 멋이자 호기다. 술 못하면 남자 축에도 끼지 못했다. 여북했으면 유명인사 프로필에 두주불사가 단골메뉴였을까. 과거에는 그랬다. 하지만 멋과 풍류에 반하는 명정기(酩酊記)도 수두룩하다. 전날 끊긴 ‘필름’의 잔상을 부여잡고 머리를 쥐어뜯는 호주가들의 행태 말이다.

단원 김홍도(1745-1806)는 한술 더 떠서 두보의 음중팔선가 첫 구절의 주인공인 하지장의 추태를 묘사한‘지장기마도(1804)’를 통해 주당의 면모를 에둘러 드러냈다. 음중팔선은 당나라 때 술과 시를 사랑했던 여덟 시인을 일컫는다.

하지장의 추태가 가관이다. 말을 탔는데 배를 타고 있는 듯 흔들거리고, 취중에 길을 가다가 우물에 빠졌는데 그대로 잠들어버리는 대책없는 주태백(知章騎馬似乘船, 眼花落井水底眠)이라고 화제가 설명한다. 과장이 심하지만 주구장창 술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무슨 뜻인지 다 안다.

그림에서 술 냄새가 풀풀 나지만 수준급이다. 서와 화의 조화가 일품이다. 화성 단원의 솜씨인데 탓할게 무엇인가. 술 실력으로 견줘도 당나라 음중팔선 못지않다. 단원이란 번듯한 호를 놔두고 취화사(醉畵士)라고 한 속내가 이를 말해준다.

취필을 휘둘렀다. 격이 떨어지면 흠 잡힐까봐 눈을 치켜뜨고 손에 힘을 모아 쥐고 크로키하듯 그렸다. 작품 감상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화성의 자존심이 발동한 나머지 술에 절었어도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취필은 그림의 왼쪽 글이 증명한다. 갑자년(1804) 동지가 지난 후 단구(단원)가 화원이자 친구인 박유성의 집 서묵재(丹邱寫宇瑞墨齎)에서 그렸다고 명기돼 있다. 세모에 어울려 술이 몇 순배 돈후 취기를 빌려 그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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