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술과 지식 재산, 문자는 권력이다
인쇄술과 지식 재산, 문자는 권력이다
학생기자단과 함께 하는 교실 속 NIE, ‘역사 진로직업 체험’
  • 권성하 기자
  • 승인 2018.08.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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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교육사랑신문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8년도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역신문활용교육의 일환으로 '학생기자단과 함께 하는 교실 속 NIE, 역사 진로직업 체험'을 총 1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역사 속 인물들의 직업과 생애를 통해 오늘을 사는 학생·청소년들의 꿈과 끼를 키우고, 진로와 직업의 세계를 풍부하게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열 번째 주제는 ‘인쇄술과 지식 재산’입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인쇄술은 어떻게 발전했고, 지식 재산은 어떻게 보호받고 공유됐는지 학생기자들과 함께 살펴봤습니다. <편집자 주>
조르주 장의 책 ‘문자의 역사’는 문자의 발생에서 성장의 역사를 보여준다. 신의 발명품인 문자의 역사에서 알파벳 혁명, 출판업과 문자 해독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굿모닝충청 권성하 기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사람의 역사는 곧 언어의 역사다. 언어를 사용하면서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문자’는 역사의 기록이다.

문자는 문명을 낳았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강 유역, 중국의 황허 유역 등 인류 문명의 여명을 알린 4대 문명은 모두 고대 문자 발생지다. 문자와 문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고대 문명에서 문자는 지배자의 위세를 자랑하거나(이집트), 공문서나 증빙자료로 쓰였고(메소포타미아), 밀봉할 때 찍는 소인의 기능을 하거나(인더스 유역), 갑골문자에서 보듯 신과 소통하는 수단(황허 유역)이 됐다.

문자는 스스로 진화했다. 초기 여명기에는 권력의 상징으로 기능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회집단과 계급 사이의 지식 분배까지 결정했다. 지배층은 부와 권력, 그리고 ‘문해 능력’을 되물림했다. 문자는 특권이 됐고, 피지배 계급은 끊임없이 문자의 세계에 편입되고자 갈망했다.

알파벳은 문자를 가진 집단이 세상을 지배했던 결정적 증거다. 게르만 민족은 로마제국과 혈연이나 문화 어느 것도 연관되지 않고도 알파벳과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그리스·로마 문명의 계승자가 됐다.

구텐베르크 불가타 성서 제1권 구약성서 중 ‘성 제롬의 편지’와 요하네스 쿠텐베르크.

역설적이지만 계급적 신분질서가 확고했던 조선에서 문자가 가진 권력의 속성을 깬 사건이 터진다. 바로 1443년 한글 창제다. 세종대왕께서 ‘불쌍한 백성들이 제 뜻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니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만드신 문자’가 훈민정음이다. 창제 의도가 처음부터 권력의 분배다. 참으로 성군이시다.

문자의 역사에서 한글은 모음문자의 완성으로 평가된다.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는 “어느 언어, 어느 문명에서도 이루어 내지 못한, 모음을 정확한 형태로 구별할 수 있는 문자를 조선에서 만들었다”고 극찬했다.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음 표기에 대한 인류의 노력이 15세기 조선에서 이뤄졌다는 찬사다.

문자가 가진 권력 속성은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지식의 공유는 원래 손으로 직접 써서 베끼는 필사(筆寫)에서 출발했고, 차츰 나무에 문자를 새겨 종이에 찍어내는 목판인쇄로 발달했다. 인쇄술을 통한 문자 지식의 전달은 철저히 통제됐다. 책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는 조선 정부가 삼강행실도를 통해 어떻게 지식의 전파하고, 사회 관습을 형성시켰는지를 보여준다. 국가 주도로 대량 인쇄된 삼강행실도는 조선의 이데올로기인 효와 충, 열을 강조했다. 국가는 배포한 사람과 목적, 편집의 기술과 수용자들의 반응을 모두 통제했다.

하지만 금속활자가 발명되면서 동양과 서양은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 1999년 미국의 시사잡지 ‘라이프’는 1000년 동안 인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100대 사건 중 1위로 1455년 구텐베르크(Gutenberg·1398~1468)의 금속활자 발명을 꼽았다. 불의 발견보다 더 위대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서양에서 금속활자 인쇄술은 책의 대량 생산으로 이어졌고,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던 지식을 확산시켜 유럽 전체를 계몽하는 역할을 했다.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곧바로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인쇄되자마자 유럽 각지에 책이 보내졌고, 다음 세대로 전달해 지식의 축적도 가능해졌다.

유럽의 역사를 뒤흔든 루터의 종교혁명도 금속활자로 찍어낸 문건에서 비롯됐다. 산업혁명과 과학혁명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은 “종이와 인쇄가 있는 곳에 혁명이 있다”고 역설했다.

아시아와 한국은 달랐다. 목판술과 금속활자 등 모든 인쇄술의 발명에서 서양을 앞질렀지만 지식혁명에는 실패했다. 우리가 이미 7세기부터 사용했던 목판 인쇄술조차 서양은 중세까지 꿈도 못 꿨다. 1000년 동안 중노동에 가까운 필사가 유일한 지식 전달 수단이었던 서양이 어떻게 괄목상대할 수 있었을까?

책 ‘이이화 역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인쇄 이야기’는 목판인쇄도 활판인쇄도 세계에서 가장 앞섰던 우리 민족의 인쇄술을 들려준다.

차이는 문자 권력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에 있었다. 한국은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대개의 동양권 국가처럼 정부가 인쇄와 출판을 도맡았다. 고려시대에는 서적원(書籍院)에서, 조선시대에는 교서관(校書官)에서 직접 담당했다. 지식에 대한 공유는 물론 저작물에 대한 권리 의식이 애초부터 없었다. 한국에서 일반 대중이 인쇄와 출판을 하게 된 것은 1883년 설립한 박문국(博文局)이 이듬해 갑신정변으로 폐지된 후다.

반면 서양에서는 금속활자의 발명과 함께 민간 인쇄·출판업이 출범했다. 금속활자 개발에 성공한 구텐베르크는 곧장 ‘성경’ 출판에 손을 댔다. 하지만 대량생산된 출판본의 오탈자 탓에 사업은 실패한다. 이를 극복한 게 출판업자 알두스(Aldus·1452~1516)다. 구텐베르크의 실패 원인을 분석한 알두스는 문헌의 편집과 교정을 전문가에게 의뢰해 일종의 책임편집제도를 완성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문자는 '데이터'다. 빅데이터와 공공데이터, 그리고 오픈데이터의 문해능력이 새 시대의 권력이다.
알두스가 개발한 이탤릭체로 된 단테의 ‘신곡’ 서문.

알두스의 성공요인은 또 있다. 책의 제작비를 낮추고 운반 효율을 높이려는 고심 끝에 누구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는 크기로 책을 줄였고, 이게 문고본(paperback)의 탄생이다. 또 소비자들이 예쁜 디자인과 글씨체에 지갑을 연다는 사실을 깨닫고, 읽기 편하면서 아름다운 ‘이탤릭체’를 개발해 책을 출판했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다. 문자가 인쇄술과 함께 종교혁명과 산업혁명, 과학혁명을 이끌었다면 이제 지식재산과 정보공유가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다. 물론 인공지능(AI)과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어떤 직업이 생기고 사라질지 고민해야 할 때라는 조언이 쏟아진다.

여명처럼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가 불안하기 짝이 없고, 답이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솔루션은 쉽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문자가 권력이다. 바로 ‘데이터(data)’가 문자다. 의미 있는 정보를 가진 모든 값인 ‘데이터’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금속활자인 셈이다.

지난 1997년 베를린에서 열린 G7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부통령이던 엘 고어는 “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사용했지만, 인류 문화사에 영향력을 미친 것은 독일의 금속활자입니다”라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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