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하와이 독립운동 모습 담긴 사진과 영자신문 최초 공개
1920년대 하와이 독립운동 모습 담긴 사진과 영자신문 최초 공개
하와이 한인사회 민족교육 지도자 강역각 후손, 독립기념관에 자료 기증
  • 채원상 기자
  • 승인 2018.08.13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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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신문 'THE YOUNG KOREAN'. 사진은 창간호가 아닌 2호 사진

[굿모닝충청 채원상 기자]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20~30년대 미국 하와이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과 영자신문이 공개됐다.

독립기념관이 13일 하와이 한인사회의 민족교육 지도자이자 청년운동가인 강영각 후손으로부터 자료를 기증받아 기념식과 함께 자료공개 행사를 가졌다.

독립운동연구소에서 열린 자료공개행사

자료 기증은 강영각 부친인 강명화의 외증손이자 양우조 친손인 양인집 어니컴(주) 대표이사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성사됐다.

기증 자료들은 1946년 강영각이 작고한 후 장남인 필모어 강이 보관해오던 것으로 자칫 하와이의 한 대학에 기증될 뻔한 것을 양인집씨가 독립기념관 기증을 유도해 이뤄졌다.

기증한 사진첩

기증된 자료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강영각과 하와이 한인 청년단체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첩 2권(323매)과 그가 발행인이자 주필로 활동한 영자지 'The Young Korean' 35점과 'The American Korean' 24점 등 모두 382점이다.

특히 기증 자료 모두 강영각 자신이 직접 자필 메모를 기록한 사진첩 2권과 그가 발행인이자 주필로 있던 영자신문 모두 최초로 세상에 공개되는 원본 자료다.

강영각이 구성한 한인 풋볼팀 사진

이를 통해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전반까지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독립운동을 어떻게 지원했는지와 하와이 청년 활동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됐다.

1939년 정기청년대회에 모인 600명의 한인 청년들 모습

또, 이번에 공개된 신문 자료는 미주 지역 한인사회 최초 영자신문으로 기록됐다.

한글신문이 아닌 영자신문 발간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창간호는 없고 2호부터 자료가 있다.

이 신문은 3.1절 기념행사, 한인단체집회, 한국독립기념일 태극기 퍼레이드 등을 보도하며 독립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다.

강영각(1896-1946)은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에서 출생해 1905년 아버지를 따라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이민을 떠난 후 클레어몬트 포모나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청년이다.

신문에 소개된 한국광복군 결성 기사

강영각은 포모나대학을 졸업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강영각의 가족 가운데 부친 강명화와 네 명의 형(영대, 영소, 영문, 영상)은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의 중추적 역할을 한 지도자이자 재정후원자로 미주지역 한국독립운동사의 중요인물들이다.

자료기증식(왼쪽부터 양인집 어니컴(주) 대표이사, 이준식 원장, 강영각 딸 수잔 강)

게다가 강영각 누나인 영실의 남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장을 역임한 양우조이다.

이들은 모두 한 가족이 배출한 6명의 독립유공자로써 한국독립운동사의 진기록을 세우고 있다.

13일 자료기증식에는 하와이에 거주하는 장남 필모어 강이 건강상 문제로 참석 못함에 따라 강영각의 딸인 수잔강 여사(하와이 거주)와 국내에 거주하는 양인집씨 등 유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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