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스님의 ‘산방원려(山房源慮)’] 종교란?
[탄탄스님의 ‘산방원려(山房源慮)’] 종교란?
  • 탄탄(呑呑) 스님
  • 승인 2018.08.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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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呑呑)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여진선원 주지 동국대 출강

불가(佛家)에 입문하는 이들이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일가 친인척 일체의 모든 인연을 끊고, 입산하여 면벽수도(面壁修道)를 하려 출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무엇을 얻고자 스스로 고행의 길을 걷는 것일까?

번뇌의 숲을 벗어나 생사계를 초월한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한 경지에 오르고자 함이며 궁극적 목적인 열반(涅槃)에 들기위함 일것이다.

생사의 괴로움을 초극한 해탈,번뇌를 말끔히 지워버린 상태, 즉 궁극의 경지, 그 이상향이 이를테면 적멸(寂滅)의 세계이다.

부처가 머무는 성전을 적멸보궁이라고한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셔 놓은 법당이다.

불단(수미단)은 있으되 불상이나 후불탱화마저 없다.

불보 종찰 통도사 대웅전에 불상이 존재하지않는 이유는 부처님 머리뼈 정골 사리를 모시고 있어서이다.

자장 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사리를 안치한 곳이라고 알려져있다.

큰 절의 대웅전을 나오면 불이문(不二門)이 있으니, 되돌아 볼 일이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산 자와 죽은 자가 다르지 않다는 뜻이리라, 번뇌와 욕망을 녹일 마음속 불이문을 세워 본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본질임에도 현대의 종교가 마음 보다 물질에 천착하여 세상의 웃음 꺼리로 가끔은 전락 하기도 한다.

수 천억대의 자산과 세계최대의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준 목회자를 바라보는 세상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부정하고 의롭지 않은 교회세습에 논란이 적지않다.

예수는 모순에 쌓인 현실 사회를 타파하여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대접받는 새로운 세상을만들기 위해 온 것이라는 부분이 있다.

절집도 닭벼슬 보다 못하다는 중벼슬을 놓고 소요와 소란이 끊임이 없다.

부처의 가르침인 ‘법구경’에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자의 몸에서 생겨난 벌레가 사자의 살을 파먹어간다는 뜻이다. ‘백수의 제왕‘인 사자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생겨난 작은 적에 의해 무너진다는 경구다.

불교가 무너지는 원인이 외부의 도전이 아닌 내부의 부패에 있다는 뜻이다.

고령의 세대가 늘어가고 인구 절벽의 시대에 모든 종교가 세인들에게 외면을 받고 법회와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이 점점 줄어가는 이유가 무엇 일까?

절집을 국한하여 분석해 보면,그동안 수행자 중심의 선 불교가 주류를 이루워 왔고 세상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선문답으로 민중의 아픔을 외면한채,세상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사회참여를 통하여 개혁의 물결에 선두에서 바르게 대중을 이끌지 못하였으며, 부패한 통치자의 입맛에 나 맞도록 그들의 이익에만 부합하였고,지배 이데올로기를 통한 착취의 합리화에 기여한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이제라도 늦은감은 있지만, 불교개혁의 기치를 올리고자 한다면,모든 제방 사찰의 운영방식은 법회 중심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자신의 구복에만 치중하는 소승적 신앙의 형태를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법회를 이끌어가는 승려들의 교육 수준이 말이 아니다.

속히, 대학원 석사, 박사 수준의 학력을 지니도록 해야하며 설법능력의 고양을 위해서 종단에서는 세상의 트랜드를 연구하고,시대를 이끌어 나갈 설법을 준비하기 위한 연구소 설립이 시급하다. 뿐만 아니라 의식의 통일성과 간결성이 필요하며 승려 뿐 아니라 포교사의 포교당 설립에 제재나 규제를 완화하여 종단은 긴밀히 협력과 지원의 토대를 제공해주어야야 한다.

제방의 사찰을 법회 중심으로 사찰 운영 형태를 전환해야 불자들이 각성한다.

모든 법당에서의 의식을 법회 중심으로 운영하여, 불공은 이에 부수적 이어야 한다. 일체 법회의 날짜를 일요일 중심으로 속히 전환해야한다.

법회 중심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승려의 교육수준이 균등해야하며 일정한 학력이 미달한 주지는 연수나 재교육의 기간을 주어 휴식년을 갖도록 하고 설법에 전문성을 기하는 것이 종단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매년 일정한 시기에 설법,법문 우수자를 선발하여 시상과 포상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모든 승려가 균등하게 대학원 수준이상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종단은 학비를 지원하고 장학제도를 체계화 하여 외전도 권장하고 세상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학부 중심의 중앙 승가대학은 전통의학을 연구하는 한의학 침구과정을 신설하여 중생의 마음의 병뿐 아니라 육신의 병도 치유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련 교과과정을 설치 하고 일반 재가자 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점진적으로는, 대학원 위주의 대학원 대학과정으로 전환하고 우수한 외국 학위자들을 연구원이나 연구 교수로 채용하고 대찰의 전통강원은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삼보 사찰 에서만 운영하여 출가자 감소에 적극 대비 하여야 한다.

산중 사찰에서만  전통적으로 음력날짜를 중심으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며,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법회, 즉 설법의 방향이라고 하겠다.

첨예한 사회문제를 직시하고 성토하여야 한다.

설법과 의식의 동질성이 이루어져야 하며 비근한 예로 사찰의 수입에서 신도의 불공 헌금이나 시주의 동기를 기복적 동기에서 부처님의 법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구제받게 된 자각에서 우러나온 감사와 헌신의 동기로 전환시키는 의식교육이 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하여, 불자에게 부처님 정신을 바르게 기르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설법과 현실은 동떨어져 서로 겉돌고 말 것이다.

개인이 마음대로 승려가 될 수 있는 전통적인 제도를 하루 속히 철폐해야한다.

승려 선발은 양질의 우수한 자원이 지원할 수 있도록 소수 정예화 하여야 한다.

사중에서 허드레 일이나 시키며 적당히 때가 되면 계를 주던 안일한 수계제도에 혁신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불교의 생명은 교육에 있음을 크게 자각 할 때이다.

승가 사회가 교육을 등한히 하게 된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개인이 중을 만드는 제도의 탓이다. 승려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도 개인이 중을 만드는 제도의 탓이다.

종단은 하루 빨리 전국에서 모여 드는 모든 행자를 공동교육으로 훈련 할 수 있는 상설 행자 교육원 제도를 만들어야한다.

모든 승려가 대학원 석 박사수준의 교육을 받고서야 선원이나 강원에 나갈 수 있도록 하여,산중의 절과 도시의 포교당은 수행과 포교면에서 상호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복합적인 체제를 확립하여야 한다.

모든 다른 집단을 참작하되,우리의 고유미를 십분 살리는 방법을 연구해야한다.

오늘의 한국 승려의 정신적인 기백을 마비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승단에 신도를 공적으로 대하는 제도적장치가 없어서 신도를 사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게 된 점에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절집이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있다.

오늘날 승려들의 법문 내용은 수준이 낮고, 사상과 정신을 고취시키는 법문이 자취를 감추고 저급한 법문이 난무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도 이 풍토가 사사로운 풍토이고 공적인 풍토가 못되어 있는 탓이다.

‘정치에 대한 몰이해’, 스님들이 정치를너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정치란 권력욕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바로 그런 생각이 불교계의 답답한 점이다. 정치란 전체에 대한 관심을 말한다. 세속적으로 전체를 실현하려는 것이 정치요,출세간적으로 전체를 실현하려는 것이 종교인 것이다.

전체를 취급한다는 점에서는 이 양자가 비슷하지만, 전체관과 가치관에 있어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정치에 관심이 컸던 분이 공자·예수·석가·소크라테스 같은 성인들이라고 하겠다.

한편 정치란 바른 다스림 아닌가? 힘으로 다스리는 것을 거부하고 이 세계를 진리로써 다스리려는 본질적인 의욕을 보인 이가 그분들이란 것이다.

종교란 하늘나라의 정치라고도 하지 않는가?

바른 정치는 부처님 나라의 질서라고도 해야 옳다.

어짊의 정치가 유교가 구현 하고자 했던 바이며, '정치를 바로 세우는것',이것이 종교다. 종교의 본의는 사람의 마음과 그의 정신을 다스리는데 있는것이다.

그러나 그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란 결국 인간의 일상생활 전반에 작용된다. 그러므로 종교는 필연적으로 세속정치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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