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인] “그들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합니다”
[굿모닝충청인] “그들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합니다”
대전시청 ‘아이디어 뱅크’ 여성가족청소년과 오인숙 주무관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8.07.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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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이정민 기자] 지난 해 11월 대전 서구의 이주여성쉼터 지하 1층에서 ‘누룽지 제조 사업장’이 문을 열었다.

폭력피해 이주여성들이 이곳에서 경제적 자립을 위해 누룽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올 3월 기준 누적 매출액은 900만원을 기록했다.

개소 당시인 지난 해 11월부터 두 달 간은 홍보 기간인 점을 감안하면 3개월 만에 1만 원짜리 누룽지 세트를 900개나 팔은 셈이다.

이 사업은 오인숙(53‧사진) 대전시 여성가족청소년과 주무관의 머리로부터 나왔다.

주변 동료들은 오 주무관을 두고 ‘아이디어 뱅크’라 부른다.

그는 명성 걸맞게 다양한 아이디어로 국비 사업을 따낸 전력을 갖고 있다.

꼭 업무적 측면이 아니라도 승진하거나 수상한 동료의 이름을 갖고 3행시를 만들어 액자로 선물해 줄 정도다 보니 번뜩이는 아이디어만큼은 누구나 인정한다는 전언이다.

오늘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있는 오 주무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봤다.

타 지자체가 ‘눈독’ 들이는 누룽지 사업장
폭력피해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동남아 출신의 20~30대 젊은 여성들이다. 끔찍했던 폭력을 피해 이주여성쉼터에 입소했지만 2년 후에는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오 주무관은 “폭력피해 이주여성들은 낯선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도, 자립하기도 쉽지 않다”며 “따로 직업훈련을 받지만 시설 자체가 넉넉하지 못해 입소자들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떠올린 게 누룽지 사업장이다. 이주여성쉼터 내 생활공간 안에서 사회적응과 경제자립을 위한 훈련장을 만들면 그들도 쉽게 일할 수 있다는 게 발단이었다. 대부분은 동남아 출신이라 쌀 음식이 익숙하다는 점도 아이디어에 한몫했다.

“시 공무원노조, 농협, 한국수력연구원 등의 1사 1기계(누룽지) 지원으로 사업이 추진됐습니다. 당시 예산이 세워지지 않았음에도 기업과 단체들은 ‘의미 있는 기부’라며 기꺼이 동참해줬습니다”

그는 며칠 간 고민 끝에 상품명을 ‘多맛!’으로 정했다. 다문화의 ‘다’자와 현미, 아로니아, 강황 등 상품의 ‘다’양한 맛의 의미를 부여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전국 최초 생활시설 내 경제자립‧사회적응 훈련장이어서 인천시 등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문의가 잇따랐다. 개소 소식을 들은 여성가족부는 누룽지 500박스를 주문하기도 했다.

폭력피해 이주여성들의 입가도 올라갔다. 서서 일하는 고된 작업임에도 “더 일하고 싶다”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동영상의 ‘동’자도 모르는 오 주무관이 만든 동영상은?
여성폭력피해 지원기관은 다른 시설보다 인건비, 복리후생 등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

처우가 낮음에도 피해자 인권을 위해 발로 뛰는 기관 종사자들을 보면서 오 주무관은 가슴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들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지난해 연말 대전 지역 이 같은 기관 35개를 대상으로 한 성과 나눔 행사를 열었다.

더 깊은 감동을 위해 그는 각 기관으로부터 한 해 동안 추진했던 사업 동영상을 받아 아름다운 영상으로 만드려 했다.

그런데 오 주무관은 동영상을 만들 줄 모른다. 고심 끝에 아는 동영상 제작 업체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며칠 간 밤을 새며 각 기관의 동영상에다 큐시트를 적었다. 제 정성에 감동했는지 업체 대표는 무료로 동영상을 제작해줬다”며 “영상이 상영됐던 그 행사장은 어느 곳보다 따뜻했던 거 같다”고 회고했다.

감동한 것은 동영상 업체 대표뿐만이 아니었다. 오 주무관은 대전 여성폭력피해방지협의회로부터 올해와 작년 두 차례나 감사패를 받았다.

“8600만원이 적다고요? 저희한텐 큰 예산입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신규 사업도 따냈다.

이 중 지난 2016년 하반기부터 추진된 공방 사업이 눈길을 끈다.

성매매 피해 소녀들은 하루 4시간 동안 수공예품, 도자기 등을 만들어 일당을 받아간다. 소녀들이 이 돈으로 다시는 성매매 늪에 빠지지 않게 만들겠다는 의도다.

(사)‘여성인권티움’이 시범 사업으로 추진하던 이 사업에 대전시가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국비 2000만원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3000만원 지원을 받아 추진됐다. 결과가 좋았는지 올해는 예산 8600만원이 전액 시비로 편성됐다.

언뜻 보면 적은 예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산이 열악한 여성 인권 분야에선 8600만원은 상당히 큰 금액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처럼 오 주무관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운동 덕분이다. 매일 아침 5시 30분부터 6시 30분가지 운동장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아이디어 뱅크, 업무 열정에도 “아직 부족”
업무 열정도 둘째가면 서러울 정도다.

2014년 서구에서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선정하는 업무를 봤다. 기초생활수급자 상당수는 가족 해체 위기에 처해져 있어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서류를 보고 또 봤다. 주변에선 오 주무관을 두고 ‘가족 단절 해결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오 주무관은 업무 열정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졌음에도 아직 부족하다고 자평한다. 올 초부터 터진 ‘미투’ 운동을 보면서 이런 생각은 더 강해졌다.

“성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열정만으로 일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성 인권 감수성을 키워 어려운 상황에 처해져 있는 사람들을 돕겠습니다”

홍성 출신인 오 주무관은 호수돈여고와 충남대를 거쳐 1992년 동구에서 공직사회를 시작했다. 이후 시와 서구 등에서 26년 째 복지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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