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②] 치욕과 슬픔 간직 증약터널 "역사적 가치 높아"
[커버스토리 ②] 치욕과 슬픔 간직 증약터널 "역사적 가치 높아"
  • 남현우 기자
  • 승인 2019.04.2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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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무렵은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철도가 준공되던 때다.
일본의 주도로 경부선 철길이 깔리면서 대전에는 여러 터널이 생겨났는데, 이 중 한 곳이 대전 동구 세천동과 신상동 일원에 있는 증약터널이다.
증약터널은 경부선 전체 노선에서 가장 오래된 터널로, 당시 건축과 철도기술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인 하야시 곤스케의 휘호도 이 곳 증약터널의 머리맡에 간판처럼 걸려 있는가 하면, 한국전쟁 당시 대전에 고립돼 실종된 미군 소장을 구해 낸 故 김재현 기관사의 일화까지, 증약터널은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증약터널의 현재 모습은 흙더미에 온 몸이 묻혀 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증약터널의 정면에는 터널의 몰골을 비웃듯, 수억 원을 들여 조성된 세천체육공원이 들어서 있다.
'가치를 인정받은 대전 철도역사의 산물 증약터널, 방치돼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지역의 문화유산 관리 문제를 짚어 본다.

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하야시 곤스케의 '악신경분' 휘호가 담긴 액석. 곳곳에는 한국 전쟁 당시 생긴 총알 흔적도 보인다. /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굿모닝충청 남현우 기자] 

경부선 最古 터널, 보존 상태도 양호...  사료 가치 높아

1904년 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증약터널은 경부선 전체 노선에서 가장 오래된 터널로 알려졌다.

증약터널은 총 3개의 터널로 구성돼 있으며 세천리에서 증약으로 넘어가는 산모퉁이에 제1·2터널이, 마달령 부분에 제3증약터널이 위치해 있다.

터널의 구조와 형태 등 원형 등이 잘 남아있는 상태여서 우리나라의 건축과 철도기술은 물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비롯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는 분석이다.

경부선과 호남선철도의 공사는 일제강점기에 진행됐기 때문에 당시 설치된 터널들은 '말굽아치' 형태인 일본 현지의 터널과 유사하다.

증약터널의 경우 110여 년간 자연 상태로 방치돼 있음에도 아치 상·하부와 측벽 등에 쓰인 자연 암석과 벽돌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구조양식이나 건축기술 등 연구에 좋은 사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학계의 주장이다.

지역의 한 건축학과 교수는 "증약터널은 당시 일본의 말굽형 아치와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이 터널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며 "구조물들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당시의 건축 양식이나 기술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증약터널은 당시 조선인들의 강제노역과 한국전쟁의 역사를 증명하는 총탄자국 등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어 한국 근현대사적 측면에서도 그 가치가 매우 높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야시 곤스케. 사진=위키백과/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하야시 곤스케. 사진=위키백과/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치욕의 역사, 하야시 곤스케와 ‘악신경분’

증약터널에는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겼던 치욕의 역사가 담겨있다.

먼저 제1증약터널의 머리맡에는 ‘악신경분(嶽神驚奔)’이라는 글자가 적힌 액석이 있는데, 이는 건축 당시 일본의 주한공사였던 하야시 곤스케가 적은 휘호다.

하야시 곤스케는 1900년경 주한공사로 부임, 1904년 한일의정서 성립 및 한일협약 체결,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등 재임기간 7년 동안 한국의 국권 침탈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하야시 곤스케가 증약터널에 새긴 ‘악신경분’은 ‘악한 신이 놀라 달아나다’라는 의미로, 우리나라의 산신(山神), 즉 토속 신앙에서 믿음의 대상을 쫓아버림으로써 한국의 철도를 장악하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슬픔의 역사, 한국전쟁 흔적 새겨진 터널

증약터널은 한국전쟁이라는 슬픔의 역사도 품고 있다.

제1증약터널의 ‘악신경분’ 액석과 벽면, 제2터널과 제3터널에는 한국전쟁 당시에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총알 흔적이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증약터널과 관련해서는 미 육군 제24보병사단장인 윌리엄 F. 딘 소장 구출작전 중 순직한 故 김재현 기관사의 일화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44년 철도국에 입사한 김재현 기관사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난 1950년 7월 19일 북한군에게 포위된 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해 미 특공대 33명과 함께 기관차를 몰고 충북 옥천 이원역을 출발해 대전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딘 소장을 발견할 가능성이 없어 후퇴하던 중 세천역 부근 세천터널, 지금의 증약터널에서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28살의 나이에 순직했다.

김 기관사의 유해는 동료들에 의해 영동산 아래에 묻혔다가 휴전 이후 고향 논산으로 이장됐다가 지난 1983년 철도인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 영관급 묘역에 안장됐으며, 당시 작전에 쓰인 기관차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국립대전현충원에 전시 중이다.

지난해 코레일 대전충남본부 대전기관차승무사업소가 대전 동구 판암동 인근 故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를 찾은 모습. 사진제공=코레일/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지난해 코레일 대전충남본부 대전기관차승무사업소가 대전 동구 판암동 인근 故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를 찾은 모습. 사진제공=코레일/굿모닝충청=남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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