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백두산 라이딩-②] 수줍은 색시처럼 사알~짝 나타난 천지
[임영호의 백두산 라이딩-②] 수줍은 색시처럼 사알~짝 나타난 천지
  •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 승인 2019.09.18 14: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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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하는 동안 직접 보며 지나온 과거로부터 상념의 자락을 꺼내고 이것을 반추하면서 삶을 더 윤택하게 한다고 말한다. 여행은 어지러운 일상에 힘을 보충해준다.
나 역시 그렇다. 낙선할 때마다 백두산에 갔다. 백두산은 이번까지 네 차례다. 나는 자전거와 백두산 둘 다 좋아한다. 두발 자전거로 백두산에 올라간다니 흥미 당기는 일이다. 자전거도 타고 백두산도 보고, 좋아라하고 예약했다.
가기 전에 친구들이 물었다. 그 긴 거리를 진짜 타느냐고. 전 구간을 타는 것은 아니다. 중국 단동(丹東)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차로 붐빈다. 더군다나 자전거 길이 만들어 지지 않아 위험천만이다. 자전거 탈 수 있는 장소는 국경선인 압록강변이나 백두산 임도(林道) 중 일부분 선택하여 진행한다. 백두산 라이딩 기행을 2편으로 정리, 게재한다.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굿모닝충청 임영호 동대전농협조합장] 이제 8월 25일이다. 하루 밤을 통화시(通化市)에서 잤다. 통화시는 인구가 200만이라 한다. 중국은 건물이든 무엇이든 일단 크다. 그런데 속은 너무 허술하다. 날씨는 흐렸다. 비가 온 줄 알았다. 도로에 물기가 잔뜩 하다. 여기는 미세먼지 때문에 새벽 물청소를 한다.

둘째날, 통화시에서 송강하를 거쳐 이도백하에 가다

아침 먹을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서 주변산책에 나섰다. 우연히 새벽시장을 볼 기회가 있었다. 편도 2차선 전체가 차 없는 거리라서 사람으로 혼잡했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네 먹거리와 크게 다를 게 없다.

고구마, 감자, 채소, 이효석(1907~1942)의 수필집에 나오는 개암나무의 ‘개암’도 장터에 나왔다. 돼지고기를 냉장시설 없이 그냥 난전에서 파는 사람도 있고, 양 두 마리를 세워놓고 그 자리에서 젖을 짜 파는 농부도 있었다. 우리네 60년대 풍경이다.

G2라 하지만 미국과는 모든 면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현자 이광요(李光耀)는 생전에 중국은 인구가 미국보다 네 배나 많지만 기술혁신을 이루지 못하여 미국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예언했다. 그 이유로 좋은 아이디어 놓고 경쟁하거나 토론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진시황과 같은 1인 지배체제이다.

통화시의 시장
통화시의 시장

그런데 미국이 지나치게 이런 중국에게 잽을 날리는 이유는 뭘까? 시진핑은 중국몽(中國夢)을 슬로건으로 내놨다. 실력을 더 기르자는 등소평의 도광양회((韜光養晦)와는 달랐다. 미중의 패권싸움이다.

이도백하로 향하는 길
이도백하로 향하는 길

아침을 먹고 8시 쯤 통화시를 출발하여 3시간 30분이나 버스를 타고 점심 먹을 장소로 이동했다. 긴 시간 버스이동은 중국에서는 다반사이다. 서쪽 백두산의 첫 동네 송강하(宋江河)에서 12시 전에 점심을 들었다. 오전 일과는 이것뿐이다.

백두산 북파의 관문인 이도백하(二道白河)로 가는 길에서 자전거를 탔다. 제주도 도깨비 도로에서 나타나는 착시 현상이 나타났다. 내려가는 느낌이나 실제는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자주 말하나 눈이 얼마나 불완전한가?

《장자》(莊子)에서 성인들은 배(腹)를 위하고 눈(眼)을 위하지는 않았다. 5㎞는 오르막이었다. 여기를 지나니 7㎞ 정도 내리막길이다. 그 끝에서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여 30㎞를 더 왔다. 도로는 환상적이었다. 이따금 과속으로 달리는 트럭 때문에 신경이 쓰였지만 공기는 맑았다.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꽃말을 가진 흰 자작나무 숲에서 나오는 차갑게 느껴지는 신선함이 어느 코스보다 맘에 들었다.

이제는 임도길이다. 비포장 숲속 길을 산악용 자전거로 가는 것은 쉽다. 다만 속도가 느릴 뿐이다. 7㎞ 지나니 목적지에 왔다. 오늘 타기는 이것이 끝이다. 70㎞ 가량 탔다. 마침 종착지에 시냇물이 흘렀다.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했다. ‘탁족’(濯足)이다.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은 애국심이 엄청나게 많았다. 상소를 해도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죽음으로써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려고 강물에 투신하려 하자, 지나가는 어부가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냐고 물으니, 나라가 이래서는 안 되고,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되고 하자, 고기 잡는 어부는 말했다. “이보게나, 창랑(滄浪)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말을 씻으면 그만이지 세상사에 아등바등 하지마라.” 탁족’(濯足)은 혼탁한 세상을 멀리한다는 의미다. 나도 잠시나마 탁족하면서 고국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세상사 시비와 거리를 두었다.

셋째날, 이도백하에서 아침 일찍 백두산에 오르다

오늘 숙소는 이도백하이다. 이도백하는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다. 이도백하진은 해발 500m에 있어 작지만 제법 도시다웠다. 창가에서 보니 슈퍼도 보이고 불고기집도 눈에 들어왔다.

붉은 네온사인 불빛이 방 속으로 어른거려 나그네의 마음을 흔들었다. 잠을 청해도 오지 않았다. 오늘은 일찍 자야하는데... 내일 새벽 2시 30분 기상이다. 백두산 천지의 일출 보기위하여 일찍 출발하여야한다. 올라가는 길이라 겁도 난다. 적어도 가파른 오르막길 5㎞는 타야한다.

흰 자작나무 숲
흰 자작나무 숲

이 길은 관광객들이 작은 소형버스로 올라가는 길이다. 그들이 몰려오는 9시 전에 모든 일정을 끝내야한다. 일행 중 내가 나이가 제일 많다. 거의 10여살 아래다. 천천히 주위 경관을 음미하면서 타고 싶었으나 온통 발 아래로 신경을 써가며 굴렀다. 그래도 제일 끝이라 여유가 있다.

남의 페이스에 신경 쓰면 오버한다. 중도탈락이다. 왜 한국인에게는 유독 남과 비교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할까. 자존감이다. 자기 좋아하는 것보다 남이 좋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움 받을까 두려워 자신을 포장한다.

2400m 오르자 해가 떠올랐다. 해가 질 때와 해가 뜰 때 하늘을 분간하기 어렵다. 나는 어떤 해일까. 계속 무엇인가 하고 싶을 욕망이 있을 때는 뜨는 해이다. 새벽 4시 40분쯤이다. 기온은 14도.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간밤에 비가 내렸나 바닥이 축축하다. 구름은 바람이 다가오면 흩어져 연기처럼 사라진다.

경사가 30도 정도는 족히 되었다. 2500m 지점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비를 꺼내 입었다. 고산지대라 머리는 아프고, 바람은 세게 불고, 손은 시리고, 발판을 아무리 밟아도 자전거가 올라가지 않는다. 이럴 때 ‘끌 바’를 선택하는 것이다.

자전거에서 내렸다. 비가 더 세차다. 안경에 빗물이 들어와 밖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일행 중 끌 바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지독한 일행들이다.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스펙을 사랑한다.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길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길
백두산에서 바라본 일출
백두산에서 바라본 일출

안개비 너머로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가 피었다. 빛의 진짜 정체인 무지개다. 물방울로 생긴다.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풍경을 보려고 하는 자의 눈에만 보인다. 안개비 너머로 정상이 보였다.

몇 차례 이곳에 왔지만 올 적 마다 새롭다. 10년 전보다 통제구역이 많아졌다. 전에는 온통 한국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중국 사람이 십중팔구라 한다. 출발 전에 가이드가 금지사항을 신신당부했다. 태극기 들기와 각종 구호가 담긴 현수막 게시, 만세 삼창을 하지 말 것. 비정한 중국의 소유권 행사다.

천지(天池) 가장자리로 자전거를 가지고 갔다. 회색구름이 몰려왔다. 어디가 천지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2-3분 기다리니 수줍은 색시처럼 살짝 모습을 보여 준다. 아~~ 백두산이다. 우리의 산, 백두산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

울컥하는 마음이 치민다. 왜 우리의 산 백두산이 아니고 중국의 장백산(長白山)일까? 분명히 1712년 조선 숙종 때 청나라와 함께 국경선 표석을 세운 백두산정계비(定界碑)에는 서위압록(西爲鴨綠) 동위토문(東爲土們)으로 쓰여 있다. 분명히 간도를 가로지르는 도문강(圖們江)까지 우리 땅으로 규정했다. 간도는 송화강(松花江)을 경계로 북쪽지역이다.

그 후 1909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만주 철도부설권을 얻고 간도지역을 청나라 땅이라고 인정하였다. 바로 간도협약(間島協約)이다. 국가 간에는 힘이 센 자가 정의다. 국가의 지도자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가를 통치해야한다.

자전거를 타고 오른 백두산 천지
자전거를 타고 오른 백두산 천지

내 나이 60대 중반 다시 여기에 올 기회가 많지 않다. 실컷 천지를 보자. 비를 맞아서인지 무척 추웠다. 영상 14도인데 바람 불고 옷도 젖고 해서 한기가 느껴진다.

천지를 처음 본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고 그 무거운 자전거를 번쩍번쩍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도 찍었다. 뒤 배경이 궁금하다. 비구름일까? 천지일까? 이제 하산할 시간이다. 아쉽지만 내려 가야한다. 수많은 경관을 봤지만 천지가 가장 아름답다. 더구나 상처를 입고 찾아올 때마다 어머니 품처럼 나를 안고 달랜다. 아름답고 고마운 우리의 백두산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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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호 2019-09-18 22:19:41
조합장님은 아직 청춘이시고,
뜨는해 이심이 확실합니다.

계속 무엇인가 하고싶은
욕망이 있을때는 뜨는해...

꿈이 산소이시고,
열정이 밥이시며,
실패가 경험이시었으며,
희망이 미래이신 조합장님은
청춘이십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어
청춘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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