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전 동구 대청호 일대는 '춘래불사춘'
[르포] 대전 동구 대청호 일대는 '춘래불사춘'
40년 강한 규제 탓에 집조차 마음대로 짓지 못하고 식당·민박 운영도 금지
퇴비 놓고서는 농민과 비농민 간 분쟁 기류까지
  • 신성재 기자
  • 승인 2023.02.0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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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 입춘(立春)인 4일 오후 찾은 동구 세천동은 을씨년스러울 정도의 적막함이 감돌았다. 간간히 길거리를 걷은 주민들을 목격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애처롭게 주름진 얼굴에는 외롭게 가라앉은 일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사진=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

[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 “봄이 오면 뭘 하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찬 기운이 가시고 완연한 봄이 와야 하건만, 대전 동구 세천동과 대청동 주민들에게 ‘마음의 봄’은 오지 않고 있다. 강한 환경규제로 묶여 있는 탓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냉랭한 기류가 마을을 무겁게 뒤덮고 있어서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봄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체념어린 정서마저 자리 잡고 있다.

<굿모닝충청>이 절기상 입춘(立春)인 4일 오후 찾은 동구 세천동은 을씨년스러울 정도의 적막함이 감돌았다. 간간히 길거리를 걷은 주민들을 목격할 수 있었지만, 주름진 얼굴에는 외롭게 가라앉은 일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을 입구 인근의 한 허름한 슈퍼마켓에 들어서자 마을 주민이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지역을 옥죄고 있는 환경규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23년 간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김 모(75) 할머니는 “40년 전 대청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규제 탓에 마음대로 집도 짓지 못한다. 민박도 식당도 운영하지 못하는데, 저희는 어찌 먹고 살란 말이냐”며 "살아생전 과연 부당한 규제가 풀릴지조차 의문스럽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세천동·대청동을 비롯한 대청호 일대는 43년 전인 1980년 대청댐 건설 이후 상수원보호구역 및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환경보전을 위해 각종 개발이 일체 금지된 상태다. 이 때문에 민박 시설이나 식당도 운영하지 못한다.

대전 동구 세천동의 낡고 해진 가옥. (사진=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
대전 동구 세천동의 낡고 해진 가옥. (사진=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

주민들의 경제적 활동에 지장이 생기자 정부는 이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각종 제약이 있어 사용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가령 원주민이 기존의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을 경우 등기부상 변동이 생겨 지원금을 더 이상 받지 못해 이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자신을 전직 직업 군인이었다고 소개한 주민 박 모(55) 씨는 “지역에 장미축제를 한들 뭘 하나 싶다”며 “여행객들이 놀러 와도 식당이나 숙박시설을 운영하지 못하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어떤 금전적인 이익을 누리지 못 한다”고 성토했다.

규제는 마을의 분쟁까지 야기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보상의 일환으로 마을 공공사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퇴비 등 비료를 지급할 시 농민과 비농민 간의 다툼이 일곤 한다는 것이다.

농사를 짓지 않은 주민들이 비료가 정작 자신들에게 필요 없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칙적으로 퇴비 등 비료를 주민들에게 배분할 수 없어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탓에 분배와 관련해서도 갈등이 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지난 2021년 건립된 마을공동작업장을 유명무실하게 방치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서글픈 분노를 자아낸다. 당초 주민들이 농산물 제조와 가공 사업을 원해 작업장이 조성됐으나, 이를 허용할만한 규정이 없어 재배와 생산물 저장, 기자재 보관 등에만 사용할 수 있는 실정이다.

다만 시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조례 제정을 검토하고 있는 만큼 주민들은 다소나마 희망을 품고 있다.

황용진 대청동 통장협의회 회장이 4일 대청동마을 공동작업장 앞에 서 있다. (사진=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br>
황용진 대청동 통장협의회 회장이 4일 대청동마을 공동작업장 앞에 서 있다. (사진=굿모닝충청 신성재 기자)

황용진 대청동 통장협의회 회장은 “나이든 주민들은 소일거리조차 찾지 못한 채 퇴락하는 마을과 함께 세월을 씁쓸히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며 “이미 하수관로가 설치돼 오염물질이 대전하수처리장 시설로 흘러가는 등 주민들이 식당이나 민박을 개업해도 대청호가 오염될 우려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철지난 규제로 이를 불허하는 것은 부조리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박희조 동구청장은 지난 달 27일 <굿모닝충청>과 만난 자리에서 “설거지 물 한 방울도 대청호로들어가지 않는다”며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합리적인 규제 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그러면서 박 청장은 “환경에 대한 인식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대 형성이다. 올해는 음식점과 숙박시설에 대한 규제 완화에 집중하고자 한다. 절대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며 “(공감대 형성과 정부 정책 유도 등) 결정적일 때 칼을 뽑겠다”고 전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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