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우리는 서로를 길들여야 한다”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우리는 서로를 길들여야 한다”
  • 이규식
  • 승인 2016.01.1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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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흥동성당 옆 벽면에 조성한 어린왕자 벽화 사진=이규식

조금 생각한 뒤, 어린 왕자는 물었다.
“‘길들인다’가 무슨 뜻이야?”
“넌 여기 사람이 아니구나. 뭘 찾고 있니?”
 여우가 말했다.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가 무슨 뜻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인간들은 총을 갖고 있고, 그걸로 사냥을 해.”
여우가 말했다.
“그건 정말 골칫거리야. 인간들은 닭도 키워. 그들이 가진 유일한 장점이기도 해. 넌 닭을 찾는 거니?”
여우가 물었다.
“아니, 난 친구를 찾는 거야. ‘길들인다’가 무슨 뜻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너무 많이 잊혀진 의미인데, ‘서로 인연을 맺는다’라는 뜻이야.”
여우가 대답했다.
“인연을 맺는다고?”
“물론이지. 너는 아직 내게 다른 수만 명의 소년들과 똑같은 작은 아이일 뿐이야. 나는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 또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지. 나는 너에게 다른 수만 마리의 여우들과 똑같은 한 마리의 여우일 뿐이지. 하지만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하게 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 또한 너에게 세상에서 하나 뿐인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아아, 이제 좀 알 것 같아. 꽃이 한 송이 있고… 그 꽃이 나를 길들인 거야…”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공나리 옮김 ‘어린왕자’, 솔 발행
 

▲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오십여 년 전 안응렬 교수가 처음 우리말로 옮긴 후 참으로 숱한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전문가의 공들인 번역으로부터 일본어판 중역, 베끼기 짜깁기 날림 출판 그리고 이러저런 정체불명의 책에 이르기까지 ‘어린왕자’의 숱한 번역서들은 그간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웠던 우리 출판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였다. 2014년 작가 생텍쥐페리 타계 70년이 지나고 비로소 저작권이 풀리면서 ‘어린왕자’ 어린왕자 출판은 제2라운드를 맞이하였다. 2014년 프랑스에서 ‘어린왕자’ 원작을 모티브로 한 후속편 영화와 소설이 등장하면서 열기는 한층 뜨거워졌다.

이 작은 책이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삶과 인간관계 지침서임에도 그동안 우리 나라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이 ‘심오한’ 철학서를 읽도록 채근해왔다. 저자의 수채화 삽화가 곁들여 있고 왕자, 여우, 뱀 그리고 꽃들이 등장한다고 동화로 간주했던 이 책에는 삶의 핵심적인 지침, 인간사이 소중한 관계의 철학이 겉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간에 스며들어 있다.

길들인다, 관계를 맺는다, 책임이 있다, 유일한 존재가 된다,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의식이 필요하다, 말은 오해의 원천이므로 눈으로 보아야 한다… 얼핏 별 의미없어 보이는 흔한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 생텍쥐페리는 짧지만 굵었던 44년의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통하여 체득한 삶의 요체를 죽기 1년전 ‘어린왕자’라는 우화체 작품을 통하여 설파한 것이다.

지금처럼 삶이 팍팍하고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힘들어 할 때 ‘어린왕자’의 천진한 마음과 눈길, 맑은 호흡이 전해주는 주옥같은 구절을 유심히 읽어 볼만하다. 특히 우리 삶은 결국 우리가 길들인 것의 총체임을 피력하는 ‘길들인다’ 라는 표현은 이 작품에서 놓쳐서는 안될 백미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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