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쥘리앵 소렐, 문제적 개인의 사회비판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쥘리앵 소렐, 문제적 개인의 사회비판
  • 이규식
  • 승인 2016.01.19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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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러분의 계급에 속하는 영예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보시듯이 저는 자신의 비천한 운명에 반항한 농부일 뿐입니다.
(……) 저는 제 젊음이 동정할 만하다는 사실에 신경 쓰지 않고 도리어 저를 통해 저와 같은 하층민으로 태어나 어떻게 보면 가난에 짓눌리면서도 운 좋게 좋은 교육을 받고 부유한 사람들의 오만이 사교계라고 부르는 곳에 대담하게 끼어들려 한 저 같은 하층계급 젊은이들의 용기를 영원히 꺾으려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배심원 여러분, 그 점이 바로 저의 죄입니다. 그러니 저는 저와 같은 계급의 동료들로부터 판결을 받지 못하는 만큼 더 가혹하게 벌을 받을 것입니다. 저의 눈에는 배심원석에 부유한 농민은 보이지 않고 오직 분개한 부르주아들만 보입니다…”

-스탕달 ‘적과 흑’(2권), 이규식 옮김, 문학동네 발행-
 

▲ 이규식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적과 흑’은 열아홉 살 쥘리앵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자신의 출신계급을 벗어나는 비상을 꿈꾸다가 스물세 살에 단두대에서 처형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따라서 성장소설의 면모 또한 갖추고 있다. 소설의 무대는 쥘리앵의 성장을 따라 베리에르라는 시골에서 신학교가 있는 중소도시 브장송으로, 마침내는 파리 대귀족의 살롱으로 옮겨간다. 당시 사회의 지배계층은 부자가 된 부르주아, 성직자, 귀족들이었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얻은 대혁명의 변혁을 무화시키며 과거의 신분제가 다시 고착되어가는 왕정복고 시대의 질식할 것 같은 반동적 분위기, 앙시앵 레짐의 재건을 꿈꾸는 극우 왕당파의 음모, 상승하는 부르주아들의 금전욕과 허영심, 성직자들의 위선과 권력욕, 귀족들의 허위의식과 권태를 스탕달은 쥘리앵이라는 문제적 개인을 통하여 통찰하고 비판한다.

일개 무명 장교에서 시작하여 대륙을 정복한 나폴레옹이 누구나 장교가 될 수 있고 부자도 될 수 있으며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는 꿈을 불어넣던 시대가 지나가고, 그 꿈을 먹고 자란 가난한 청년의 능력과 열정이 위험시되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쥘리앵이 처형당하는 진정한 이유가 된다. 쥘리앵 자신이 명민하게 이것을 통찰하고,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최후진술에서 계급 문제를 언급하고 사형을 언도받는다.

아름다운 젊은이의 꿈과 몰락. 1830년대 프랑스와 2010년대 우리 사회,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비등한 이즈음 ‘적과 흑’ 쥘리앵의 짧은 삶은 우리는 많은 것을 성찰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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