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쓴 유언, 우크라이나가 사랑하는 타라스 쉐브첸코
나 죽거든 부디
그리운 우크라이나
넓은 벌판 위에
나를 묻어 주오
그 무덤에 누워
끝없이 펼쳐진 고향의 전원과
드네프르 강 기슭
험한 벼랑을 바라보며
거친 파도 소리 듣고 싶네,
적들의 검은 피
우크라이나 들에서
파도에 실려
푸른 바다로 떠나면
나 벌판을 지나
산언덕을 지나
하늘나라로 올라
신께 감사드리겠네
내 비록 신을 알지 못하나,
이 몸을 땅에 묻거든
그대들이여
떨치고 일어나
예속의 사슬을 끊어 버려라
적들의 피로써
그대들의 자유를 굳게 지키라
그리고 위대한 가정
자유의 새 나라에서
날 잊지 말고 기억해다오
부드럽고 다정한 말로
날 가끔 기억해주오.
-타라스 쉐브첸코, 김석원 번역, ‘유언’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지난주에 소개한 빅토르 위고 ‘최후의 말’이 조국 프랑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시인의 굳건한 믿음을 노래한 작품이라면 타라스 쉐브첸코 (1814-1861)가 쓴 ‘유언’은 우크라이나 민족시인이 토로한 뜨겁고 열정적인 조국애, 이민족의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자존과 독립을 염원하는 진솔한 외침이다.
우크라이나 국립 키예프 쉐브첸코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김석원 교수는 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7년 한국어문학과를 창설하여 지금까지 열성을 다하여 한국어전공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다. 김 교수가 번역하여 2005년 재발간한 쉐브첸코 시집 ‘아 우크라이나여! 드네프르 강이여!’는 농노출신, 그림과 문학수업, 농노에서 해방, 비밀단체 결성, 경찰에 체포되어 중앙아시아로 10년간 유배, 귀환, 시집 ‘코브자르’ 발간, 이듬해 사망, 그해 우크라이나로 유해가 돌아오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시인의 삶의 굴곡, 조국과 동포 사랑이 격정적으로 때로는 속삭이듯 펼쳐진다.
이 작품은 1845년 집필되었는데 당시 쉐브첸코는 몹시 아팠다고 한다. 죽음을 예감한 듯 이 작품을 남겼지만 그는 1861년 세상을 떠났다. 막상 죽음에 즈음해서는 유언을 남기지 못했다는데 쉐브첸코 묘지가 있는 카니프 쉐브첸코 박물관에는 세계 100여개국어로 번역한 이 시가 걸려있다는데 김석원 교수가 한국어로 번역하여 걸어놓았다고 한다.
대학이름은 물론 수도 키예프에서 가장 길고 멋진 거리가 쉐브첸코 거리이며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그를 기념하는 도서관과 박물관이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국가공식행사나 학교행사에 이르기까지 쉐브첸코의 시를 인용하거나 시를 붙이는 전통이 있다. 2004년 말부터 3개월에 걸쳐 계속된 부정선거 규탄 항쟁에서도 쉐브첸코의 시가 등장했는데 세계 각국의 국민시인 중에서 쉐브첸코 만큼 온 국민이 사랑하고 작품을 암송하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나 비옥한 국토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수백년 외세의 침략으로 고통 받았던 나라로 1991년 독립하기까지 우여곡절 외세의 침략과 분연한 저항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독립 후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러시아와의 분쟁 등으로 긴장이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앞으로 당면할지 모를 여러 난관도 쉐브첸코 시를 사랑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지혜와 감성으로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으로 믿는다. 이런 우뚝솟은 시인을 가진 그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