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의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의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 이규식
  • 승인 2016.12.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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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내가 서양 문명의 혜택을 입었다면
그것은 단 한 가지, 의자이다.
그렇지만 나의 의자는
바로크풍이나 로마네스크풍과는 거리가 멀고
더우기 대감들이 즐기던 교의 따위도 아니다.
나의 의자는 강원도산 박달나무로
튼튼한 네 다리와 두터운 엉덩판과 가파른 등이
나의 계산에 의해 손수 만들어졌고
칠이라고는 나의 손때뿐이다.
나의 의자는
나의 무게를 저울보다는 잘 알고 있고
나의 동작 하나 하나에 대해 민감하며
나의 거칠어지는 피부를 어루만질 줄 안다.
나의 고독은 나의 의자와의 교감이기에 고독이 아니고
나의 독백은 나의 의자와의 대화이기에 독백이 아니다.
낮을 밤에 이어 시를 쓰노라면
나의 의자에서 시가 우러나며
나의 다리, 나의 엉덩판, 나의 등이 되어
때로는 지하 8척 아래로, 때로는 구중의 탑 위로
나를 운반하지만
나의 의자는 항시 제자리에 있다
나의 의자는 세계의 축(軸), 나의 만세반석이다.
세상에는 빈 것이 하도 많지만
나의 의자는
비록 공석 중이라도 비어 있지 않다.

- 김종문, ‘의자’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김종문 (1919-1981) 시인의 독특한 경력은 눈길을 끈다. 일본 아테네 프랑세에서  공부하였고 광복 후 군에 투신하여 5.16 쿠데타 이전인 1957년 소장으로 예편한 뒤 문학에 헌신하여 주지주의와 서정을 신선한 이미지로 결합한 뛰어난 시창작에 몰두하였다. 평론에도 일가견을 이루었고 문단단체에도 활발하게 리더로 참여하는 등 양립하기 어려운 여러 활동을 탁월하게 실천한 인물이다.

‘의자’는 우리 현대 시문학사에서 여러 시인들이 즐겨 노래한 대상이었다. 본질적으로 사물이지만 인간의 삶 가까이 있으면서 일상의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 함께하는 친근성도 그렇고 내구성이나 수명면에서도 여느 생활용품과는 확연하게 차별된다. 더구나 이 시에 언급되는 강원도 박달나무로 튼튼하게 만든 의자라면 물성을 넘어 더 내밀한 교감과 소통의 대상, 감성의 반려라는 차원으로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의자에 대한 엇갈리는 시선과 관점이 공존한다. 대중가요에서 처럼 ‘서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 당신의 자리가 되드리리다’라는 노래에서 우선 고단하고 상처받은 마음이 쉴 수 있는 휴식처, 위안의 수용자로서의 의자를 떠올린다. 개인의 것이거나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공공장소의 의자이거나를 막론하고 의자가 주는 포용력, 위로의 힘은 크다. 그러나 세상에는 의자의 또 다른 상징과 목표가 존재한다.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이지... 아아아 억울하면 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는 목적지향적인 처세술에 의자가 원용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하고 각박한 세태의 저변에는 의자를 휴식과 나눔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남을 지배하고 공허한 권력을 누리려는 목표로서 더 크고 화려한 의자를 탐하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은 아닐까.

“나의 의자는 항시 제자리에 있다 / 나의 의자는 세계의 축(軸), 나의 만세반석이다.”라는 대목에서 김종문 시인이 바라보고 의지하는 의자에 대한 관념이 명확해진다. 내가 의자에 의지하여 삶을 충전하고 위안을 얻듯이 나는 지금까지 그 누군가의 의자가 되어주었던 적이 있었는지 돌이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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