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① “아이 앞에서 욕설·구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어요”
[커버스토리] ① “아이 앞에서 욕설·구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어요”
무너진 ‘코리안 드림’-가정폭력 희생자 전락
  • 남현우 기자
  • 승인 2017.06.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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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국내에서 배우자를 구하기 어려웠던 농촌총각들을 대상으로 국제결혼 중개업이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중국, 베트남, 필리핀의 수많은 여성들이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 남성들은 도시 여성들의 농촌 기피 현상을 해결하고자, 동남아 각국의 여성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각자의 이상을 좇았지만, 하루 또는 이틀 만에 치른 국제결혼은 백년가약의 꿈이 아니라 일장춘몽의 아픔으로 되돌아왔다.
결국 한국 사회는 이주여성을 ‘돈 주고 사온 여성’이라는 색안경 속에 가두기 시작했고, 그 인식의 피해자는 고스란히 이주여성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고국을 떠나온 결혼 이주여성들. 그들의 상당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쫓겨나지 않을까 움츠러들었고, 머나먼 타향에서 의지할 곳 없는 외톨이로 힘든 하루하루를 이어가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한국 사회의 또 다른 구성원인 결혼이주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실제 사례와 대전의 지원센터 프로그램 등을 통해 되짚어 본다. [편집자 주]

 

매맞는 이주여성들 “우리는 노예선을 탔다”

[굿모닝충청 남현우 기자] 7년 전인 2010년, 필리핀 출신의 A(29, 당시 22세)씨는 국제결혼업체의 중매로 충남의 한 농촌으로 시집을 오게 됐다.

“한국 남성이 잘 산다”는 업자의 말에 A씨는 어려운 집안 형편이기에 조금이라도 짐을 덜고자 고민 끝에 결혼을 결정했고, 20살 차이가 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며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녀의 꿈은 곧 산산이 부서졌다. 한없이 이해하고 아껴줄 것만 같던 남편은 A씨가 낯선 한국에 채 익숙해지기도 전부터 구박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 뒷바라지를 잘 못한다”, “아이 낳으면 데리고 도망갈 거 아니냐” 등 A씨에 대한 의심과 질타로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술에 취한 날에는 욕설은 물론이거니와 폭행도 반복됐다. 하지만 A씨는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엄마로서 아이의 양육에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만은 여느 아이들처럼 어엿한 ‘한국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러던 그녀가 올해 6월 말 경찰과 함께 이주여성피해자지원센터를 찾았다. 그녀가 센터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7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온 A씨의 가슴은 아이가 보는 앞에서 “나한테 시집온 이유가 돈 벌러 온 것이었냐”며 남편의 구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A씨는 친정에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보태고 싶었고 그동안 남편에게 조심스레 부탁해왔다.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중매업자를 통해 약속을 받은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남편의 구타였다.

A씨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려 했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며 “아이한테만큼은 국적을 떠나 엄마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고 싶었지만 아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남편으로부터 욕설과 폭행을 당했을 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고 토로했다.

A씨의 남편은 센터와의 상담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아내가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친정에 돈을 보내주기 위해 나와 결혼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A씨는 다시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에서 그녀가 돌아갈 곳은 시댁뿐이기 때문이다.

A씨는 “생활비는 남편이 준 카드로 쓴다. 가지고 있는 돈이 없다. 생리대 하나 사는 것, 과자 한 봉지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집을 나온다 해도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언제 또다시 폭력을 당할지 모르면서도 그녀는 남편 곁을 떠날 수가 없다.

베트남 출신 B(20)씨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지난 2016년 한국 남성과 결혼을 한 B씨는 입국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이혼을 선택했다. 남편에게 내연녀가 있었고, 내연녀로부터 폭행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B씨는 법원으로부터 이혼판결을 받고 2000만 원의 위자료를 받기로 했지만 일용직에 종사하던 전 남편은 한번에 위자료를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아 매달 20만 원씩 나눠 지불하기로 했다. 현재 그녀는 이주여성쉼터에 머무르고 있다.

쉼터 관계자는 “남편이 돈을 주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이 없는데 B씨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현재 그녀는 쉼터에서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해 자격증을 땄고 쉼터와 연계된 직장에서 일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립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B씨의 상황도 마냥 희망적이지는 않다. 그녀에게는 국적 취득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민자의 경우 간이귀화에 해당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24개월 국내에 거주하고 자신 또는 남편의 재정이 3000만 원 이상이거나 혹은 그만큼의 부동산 혹은 직장 여부를 증명해야
한다.

때문에 남편과 이혼한 상태인 B씨에게는 체류기간동안 3000만 원을 모아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당장에야 돈을 벌고 있지만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쉼터의 일자리 지원이 중단이라도 되면 B씨의 국적 취득의 꿈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C(25)씨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C씨는 한국에 입국함과 동시에 알콜 중독인 남편으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폭행을 당했고, 이를 견디다 못해 결국 이혼을 선택했다.

C씨는 현재 한국에서 쫓겨날 신세에 처해 있다. 결혼생활 하던 당시 C씨의 여권과 신분증을 모두 시어머니에게 뺏겼기 때문이다. 이유는 “언제 도망갈지 모른다”였다.

이 때문에 체류 연장을 신청하지 못하게 된 C씨는 이주여성피해자지원센터 상담사의 도움으로 시어머니와 통화를 했지만 돌아온 말 한마디는 “잃어버렸다. 다시 발급을 받아라”였다.

C씨는 캄보디아 대사관을 찾았지만 이내 좌절했다. 여권을 재발급 받으려면 120만 원을 대사관에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녀가 있는 경우 체류기간의 연장 없이 자녀가 성인이 되는 만19세가 될 때까지 체류할 수 있지만 아이조차 없는 C씨는 막막하기만 하다.

센터 관계자는 “여권 재발급 비용이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에서 결혼생활을 하며 수중에 만 원짜리 한 장 제대로 쥐어보지 못한 여성도 꽤 있는 상황이어서 참 답답하다”며 “지원기관들도 사정이 넉넉지 못하다 보니 도와주고 싶어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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