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률의 영화읽기] 억압과 착취의 성차별을 남성의 권리로 행세
[고광률의 영화읽기] 억압과 착취의 성차별을 남성의 권리로 행세
10편 10색 - 영화, 생각을 지배하다 : 델마와루이스 ②
  • 고광률 소설가
  • 승인 2017.08.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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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고광률 소설가]

가증스러운 남성의 갑질을 떠나서
영화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루이스(수잔 서랜든)와 델마(지나 데이비스)가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말을 이용하여 일박이일 여행을 떠나는 얘깁니다. 그 별장으로의 여행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만…. 이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소소한 여행조차 그녀들에겐 허락되지 않습니다. 여자의 삶에 있어 일상·평범·소박 따위는 없었습니다.

이들이 여행에서 만나는 것들은, 부딪히는 것들은 모두가 적들입니다. 어딜 가나 득시글거리는 남자들, 질주하는 자동차들(자동차는 남성을 상징하지요), 심지어 말 타고 거들먹거리는 마초적인 카우보이들, 마침내 경찰들까지…… 방해와 장애물들입니다.

좀 왈가닥한 루이스가 델마와 주말여행을 출발합니다. 루이스의 외박 잦은 동거남은 연락이 안 되고, 델마의 남편은 완고한 ‘상남자’인지라 여행 ‘허락’은커녕 말조차 못 붙입니다. 이래서 델마는 ‘무단가출’을 한 셈이 됩니다. 갈 길이 바쁜데, 델마의 요청으로 휴게소 바에 들릅니다. 거기서 할렌이라는 남자를 만나는데, 델마가 할렌의 유혹에 넘어가 같이 술 마시고 춤까지 춥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그 대가로 델마의 몸을 요구하지요. 거절하는 델마를 강간하려던 할렌을 루이스가 총으로 쏩니다. 이른바 정당방위를 하려다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지요. 경찰을 찾아가 자수를 하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델마가 시시덕거리며 할렌과 춤추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본 때문이지요. 누가 강간으로 봐준단 말인가. 결국 여행은 도주극으로 바뀝니다. 루이스는 도피자금이 필요해 전화로 동거남 지미에게 돈을 찾아 송금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델마의 남편은 부재중인지라 전화조차 받지 않습니다.

수컷들이 만든 굴레 속에서
지명수배령이 떨어지고, 델마가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미식축구 시청에 빠진 남편은 무조건 빨리 돌아오라고 합니다. 그러자 델마가, 너는 내 남편이지 아빠가 아니라면서 대항합니다.

돈을 찾는 자리에서 루이스는 동거남을 만납니다. 동거남은 루이스가 걱정돼 온 것이 아니라, 루이스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 자기가 차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과 우려 때문에 온 것이지요. 대다수 수컷들이 보통 이렇지요. 동거남은 루이스에게 반지를 주며 결혼 제의를 합니다. 루이스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면서 거절합니다.

이 사이에 대책 없는 델마는 주유소부터 들러붙은 날건달에게 몸과 마음을 줘버립니다. 그걸로 끝났다면 땡큐(날건달과의 멋진 섹스를 루이스가 축하까지 해주거든요)인데, 이 건달(좀도둑)이 노린 것은 델마의 몸과 마음 따위가 아니라, 루이스가 도피자금으로 확보한 6600달러였던 것입니다. 돈을 모두 잃은 루이스는 절망에 빠집니다. 돈 없이 어떻게 도망을 다니나요. 그런데 델마가 돈을 구해오지요. 섹스 전에 날건달이 일러준 ‘매뉴얼’대로 가게에서 강도짓을 한 것입니다.

경찰의 추격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델마의 집에 도청장치를 하고 추적 경찰들이 상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델마의 남편은 전화비 걱정을 하는 쪼잔한 놈입니다.

한편 루이스와 델마는 어려움에 처할수록 왠지 모를 자유와 해방감을 느낍니다. 그들의 자유와 해방은 속박된 일상이 아닌 범죄와 일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루이스의 돈을 털어간 날건달이 경찰에 잡힙니다. 소지한 돈의 출처를 캐다가 그녀들이 맥시코로 향한다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수사를 지휘하는 경찰이 날건달에게 의미 있는 말을 합니다. 네가 그 돈을 훔치지 않았다면, 그녀들이 강도짓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가 그녀들을 더욱 망쳤다, 라고요.

델마의 집에 전화를 건 루이스는 경찰 지휘자와의 통화 도중에 도주처가 탄로 났음을 알게 됩니다. 날건달에게 빠졌던 하염없이 ‘순진무구’한 델마가 그 놈에게 일러준 통에.

그녀들은 컴컴한 허허벌판 밤길을 교대로 운전합니다. 자동차가 없고, 남자가 없는 해방의 길입니다. 여명이 밝아오는 벌판에서 루이스는 생각합니다. 어디로 가나?

델마는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죽인 할렌을 생각하며 웃습니다. 루이스는 이런 델마에게 격분합니다. 루이스가 할렌을 쏜 것은 단순한 분노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텍사스에서 당한 과거 불행에 대한 복수였던 것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남은 자들은 들으라
이들의 고요한 질주에 경찰 순찰차가 따라붙습니다. 델마가 루이스를 검문하는 경찰을 총으로 위협하고 트렁크에 가둡니다. 그 전에, 거들먹거리다가 울먹이는 경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날 이렇게 만든 건 내 남편이다. 넌 부인에게 잘 해라.”도망 다니는 일이 어디 쉬운가요. 일찍 자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갈등과 후회도 밀려옵니다.

루이는 경찰 지휘자인 할 슬로컴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가 ‘텍사스 사건’도 알고 있다며 루이스의 자수를 회유합니다. 흔들리는 루이스에게 델마가 경찰과 협상할 것이냐고 묻습니다. 델마는 또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난 이미 뭔가를 건너왔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어.” 그러면서 다시 고요한 자연 속을 주행합니다. 구속·속박·제약·편입견이 없는 세상을 향해 달리는 것이지요. 깨어 있는 느낌이고, 모든 게 달라 보인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면서 미래 삶의 소소한 희망들을 말하기도 하지요.

이때 그녀들의 차와 여러 차례 조우했던, 늙다리로 보이는 불량스러운 트럭운전사가 다시 따라붙습니다. 이 불행한 수컷은 그녀들을 먹잇감인 양 말과 상스러운 동작으로 마구 희롱합니다. 그녀들은 이 수컷을 유인하여 트럭을 폭파시켜버립니다. 일종의 경고이자 응징인데, 이 장면이 파시즘적 페미니즘의 시빗거리가 되는 겁니다. 물론 관객들이 판단할 몫이지요.

운명과 맞장 뜨다
이제 헬기까지 달고 개떼처럼 몰려온 경찰차는 바짝 따라붙었습니다. 지난한 도주가 끝났다는 것을 그녀들도 압니다. 둘 다 담배를 피워 물고,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고, 이번 휴가가 어땠는지 서로 묻고 답한 뒤, 낭떠러지 앞에서 차를 후진합니다. 상황은 급박합니다. 하늘에는 헬기, 수십 대의 경찰 차량, 총알을 장전하는 저격수들이 호들갑을 떱니다. 여자 둘 잡으러 엄청난 수컷들이 아름답고 순수한 자연 경관 속으로 몰려온 것입니다. 마치 처녀지에 들어와 날뛰는 승냥이새끼들처럼.

운전대를 움켜쥔 루이스가 말하지요. “포기할 수는 없잖아?” 델마가 응수합니다. “우리 잡히지 말자. 계속 가는 거야.” 뭐라고? 가자! 확실해? 밟앗!

둘이 탄 66년형 T-버드 무개차가 마침내 천 길 낭떠러지 위 허공을 날아오릅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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