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26] 천년 느티나무에 깃든 삶…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느티나무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 226] 천년 느티나무에 깃든 삶…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느티나무
  • 채원상 기자
  • 승인 2023.04.14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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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글 윤현주 작가, 사진 채원상 기자] 충남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는 천년나무라 불리는 느티나무가 있다.

고려시대부터 마을을 지켜왔다는 이 느티나무의 수고는 27m, 흉고(지면으로부터 1∼1.2m 높이의 나무 둘레)는 610cm로 거목 중의 거목이다.

그리고 그 크기만큼이나 아름다운 수형이 시선을 압도한다. 한 아름이 넘는 줄기는 곧고 단단하며,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은 가지는 하늘을 떠받치고 선 듯 웅장하다.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나무임을 짐작할 수 있는 이 느티나무에는 애틋한 설화가 전해진다.

고려 현종 시절, 거란족의 침입과 약탈로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처와 함께 노모를 모시며 살아가던 선비가 있었다.

선비는 어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보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거란족 정벌에 참여한다.

선비는 길을 떠나기 전 가족에 대한 애정과 걱정을 담아 느티나무 가지를 잘라 심어 놓았다.

그러나 고려의 거란족 정벌이 끝난 후에도 선비를 돌아오지 못했고 선비의 처는 매일 밤 선비를 기다리며 느티나무 앞에 정안수를 떠 놓고 치성을 드렸다.

치성이 끝나면 정안수 물을 선비가 심어 놓은 느티나무 가지에 주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선비는 돌아오지 않았고 처 또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동안 말라비틀어져 있던 느티나무 가지에 뿌리가 내리고 잎이 자라기 시작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느티나무 둥치는 장정 다섯 아름이 될 정도로 커졌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음울한 날이면 선비의 처가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봄에 가지에 잎이 늦게 나오면 가뭄이 들어 한 해 농사를 걱정해야 한다는 지혜를 동네 사람들이 깨닫게 해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선비와 처의 충절과 효심을 기리기 위해 이 느티나무를 천년나무라 칭하며 오래전부터 정성을 다해 지켜오고 있다.

매년 7월 7일 칠석날이며 ‘칠석제’를 열어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며 제를 올리는데, 칠석제에 앞서 초하루에는 막걸리 20말(400L)을 나무에 뿌리는 거름주기 행사를 연다.

봉림리 칠석제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90년대 마을에 우환이 연달아 생기기 시작하자 2004년 다시 마을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코로나로 인해 잠시 주춤했지만, 지난해부터 예전처럼 풍성한 동제를 진행하고 있다.

천년 느티나무와 칠석제를 통해 나무는 우리가 문명의 싹틔운 그 순간부터 지역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삶의 일부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나무는 우리와 삶을 공유해왔기에 때때로 신화의 주역이 되었고, 문화를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봉림리 느티나무를 통해 또 하나의 문화가 생성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429-1 느티나무 759년 (2023년)

[나무, 천년의 세월을 담다]는 충청남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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