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남겨진 이들의 슬픔…그들도 알았더라면
[커버스토리②] 남겨진 이들의 슬픔…그들도 알았더라면
굿모닝충청 -‘자, 살자! 캠페인’
[르포] 유가족 대상 마곡사 템플스테이 현장
  • 김갑수 기자
  • 승인 2018.09.20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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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사진=채원상 기자] 어느덧 무더위가 가고 가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9월의 어느 날 저녁, 충남 공주의 천년고찰 마곡사에는 범종의 은은한 소리가 태화산자락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범종을 함께 치며 그 울림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가 스스로 삶을 포기함에 따라 유가족이 된 사람들을 위한 ‘마음향기 템플스테이’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충남 곳곳에서 모인 약 20여 명의 유가족과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 충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 등이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다.

곧바로 저녁예불이 이어졌다.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따라 하기 쉽지 않은 읊조림이 한동안 이어졌고, 절도 반복됐다. 스님의 목탁소리와 가을비 소리가 범종의 울림 대신 법당 안에 가득했다.

장소를 옮겨 연정국악원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작은 음악회가 이어졌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한오백년 사자는데 웬 성화요” 구성진 가락이 울려 퍼졌다.

잠시 휴식을 가진 뒤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시작됐다. 진행은 동국대 이범수 교수(불교상담개발원 부원장)가 맡았다.

이 교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존중해 주자”는 등 주의 사항을 전달한 뒤 먼저 간 가족의 이름을 종이에 적게 했다. 잠시 눈을 감고 고인을 만나는 시간도 가졌는데 조용한 흐느낌이 들리기도 했다.

이어 고인의 이름이 적힌 종이 위에 촛불이 놓여졌다. 이 교수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밝게 비춰주자는 의미”라고 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히자 참가자들은 각자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아이였는데, 졸업하면 할머니‧할아버지 여행 모시고 가겠다고 했는데…. 응석 한 번 안 부리고 그렇게 가다니…. 정아(가명)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외손녀를 잃은 A씨의 외침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딸을 앞서 보낸 B씨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아무 것도 못하겠다. 앞이 캄캄하고 희망이 안 보인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따라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수년 전 아들을 잃은 C씨는 “이런 이야기는 부모, 동생에게도 못 한다. 이 자리에서만 할 수 있다”며 본인 역시 그런 고통을 겪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자녀들을 생각해야 한다며 다독였다.

실제로 뜻하지 않게 자녀를 잃은 부모 중 일부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답답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D씨는 “자살자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그동안 지옥 같은 길을 걸어왔다”며 “속상한 것과 우울증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가고 있다. 죽고 싶을 때 마음대로 죽는다면 세상에 몇 명이나 남아 있겠나? 삶에 대한 의욕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먼저 아픔을 겪은 자들이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세상 그 누구도 해 줄 수 없는 ‘견딤의 힘’을 제공해 주고 있는 장면이었다.

아들을 잃었다는 E씨는 “엄마까지 그렇게 되면 나도 못 살아”라는 딸의 말에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여전히 아들이 사무치게 그립지만 손주들을 키우며 그래도 지금은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을 보냈다는 F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식들이 부모님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집을 새로 지어줬다. 같이 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안타깝고 많이 보고 싶다”며 “저승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잘 되게 빌어 달라”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는 예정된 시간을 넘겨 한동안 계속됐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거워진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충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김도윤 부센터장과 SNS로 이런 대화를 나눴다.
“오늘은 안타까움 못지않게 답답함을 느끼는 자리였습니다. 과연 무엇으로 이분들에게 다시 살아갈 희망과 동기를 제공해 드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 참담한 기억과 고통을 잊을 수 없고, 그 기억 위에 그래도 새로운 삶을 쌓아올려도 된다고 말씀은 드리지만, 그 무게를 덜어드릴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묻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족들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게만 해주어도 고마운 일’이라고 하시지만, 저희도 어쩔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지요.”

꼬불꼬불 산길을 지나는 동안 ‘저들에게 하루하루의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소서!’라는 기도를 반복했다. ‘남겨진 이들이 평생 짊어지게 될 슬픔을 알았더라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루가 지나 유가족들의 템플스테이 후기를 받아보고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다.
“우리 아들이 잘 있으리라 믿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요. 자리를 마련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곳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약간의 치유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다시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렵고 말 못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헤아려 품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김갑수 기자 kksjpe@goodmorningcc.com
사진=채원상 기자wschae1022@goodmorningc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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