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그날’을 기다린 심훈, ‘그 날’은 왔건만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그날’을 기다린 심훈, ‘그 날’은 왔건만
  • 이규식
  • 승인 2016.03.22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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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다린 심훈, ‘그날’은 왔건만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던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훈, ‘ 그날이 오면’ 전부
 
 

▲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상록수’를 쓴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심훈은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대표작 ‘그날이 오면’에서 시인은 ‘그날’이 올 것임을 확신하였다. ‘그날’이란 무엇일까. 모든 수난과 저항 끝에 죽음을 넘어서서 얻게 되는 자유의 그날이며 독립의 그날이다.

그러므로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라는 불가능한 환각 체험까지도 이 시에서 자연스럽게 진술되고 있다. ‘그날’은 오랜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꼭 성취해야 할 민족의 최대 과제이며 신념이었던 까닭에 논리적 모순과 초논리에도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의 후반부에 이르면 이미지는 더욱 강렬해진다. 그만큼 민족 해방의 환희가 크고 감동적임을 뜻한다. 그러나 아울러 당시의 삶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의도 또한 포함되어 있다. 민족 자존과 단결을 일깨우는 여러 항일 저항시 중에서 ‘그날이 오면’이 갖는 예언시로서의 미덕은 이렇게 입증되고 있다.

시인이 그토록 갈망했던 광복과 독립을 쟁취한지 70 여년이 지났건만 우리 사회의 크고작은 갈등과 갖가지 불안, 시시각각 파고드는 외세의 영향력이 빚어내는 어수선한 삶의 현실을 시인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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