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애너벨 리
아주 오래 전
바닷가 어느 왕국에
한 소녀가 살았습니다.
당신이 알지도 모를 애너벨 리.
이 소녀는 날 사랑하고 내게 사랑 받는 것 외엔
다른 아무 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나는 어렸고 그녀도 어렸지요.
바닷가 이 왕국에.
그러나 우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으로
사랑했습니다. 나와 애너벨 리는.
하늘의 날개달린 천사들이
우리를 시샘할 만큼의 사랑으로.
그로 인해 오래 전 바닷가 이 왕국에서
바람이 한 차례 구름으로부터 불어와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
하지만 우리 사랑은 더 강했습니다.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사랑보다
우리보다 현명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보다.
그리하여 하늘의 천사들도
바다 속 악마들도
내 영혼과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을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달빛이 빛날 때마다 나에게 항상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주고 있습니다,
나는 느끼고 있어요. 별들이 솟아오를 때마다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동자를.
그리하여 나는 밤새도록
내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의
곁에 눕습니다. 거기 바닷가 무덤,
파도가 밀려드는 바닷가 무덤에.
- 애드가 앨런 포, ‘애너벨 리’ 부분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일부 구절을 생략했지만 더 이상은 축약할 부분이 없는 사랑의 시 애너벨 리. 음산하고 어두운 이미지의 시인 애드가 앨런 포에게서 이런 맑고 순수한 사랑의 시가 샘솟아 나왔다니. 자전적 요소가 강한 이 시는 원어든 번역이든 나지막히 읽으면 그 자체로 음악이 되고 노래가 된다. 시가 노래라는 반증이 이 이상 더 있으랴. 중학교 시절 수학 과외 선생이었던 텁수룩한 공대 4학년 대학생이 강한 사투리 액센트로 읽어주던 시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때마침 이즈음 서울 국립극장에서 연극 ‘애너벨 리’가 공연중 이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