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다한 살롱’을 아시나요?
‘허다한 살롱’을 아시나요?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37) 시각예술가 허은선과 리다를 만나다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6.07.1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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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대전 대흥동 골목을 걷다보면 아기자기한 숲을 떠올리게 된다. 깊고 울창해서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어두운 숲이 아니라 그리 크지 않은 나무들이 숲을 이뤄 바닥에 있는 풀도 흠뻑 햇살을 즐기는 그런 숲이다.

그래서 대흥동에서 약속한 장소를 찾는 일도 나뭇가지를 들추며 새들이 지은 작은 집을 찾는 기분이다. ‘허다한 살롱’도 대흥동의 여러 초입 중 한 곳, 높지도 낮지도 않은 가지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는 우리 둘이 같이 작업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허은선의 ‘허’와 리다의 ‘다’가 옹기종기 모인 살롱이죠.”

그러니까 이 살롱은 두 시각예술가의 공동 작업실이자 예술가들의 조용한 사랑방이기도 하면서 예술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다. 이런 소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떤 공간일지 상상하기 시작할 것이다. ‘허다한 살롱’은 이런 상상에 딱 들어맞는 곳이다. 충분히 아기자기하고 넉넉하게 이국적이며 예술적 재미가 넘쳐나는 작은 공간에 푹 빠지고 나면 이 살롱을 이끌어나가는 젊은 예술가들의 관심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설치미술과 행위예술을 주로 하고 있는 허은선 씨 먼저.
“저는 서양화학과를 졸업했어요. 그런데 그림만으로는 뭔가 표현에 부족함을 느껴서 영상과 설치미술을 병행해왔어요. 영상을 다루다보니까 그 안에 자꾸 내가 들어가게 되고 또 영상 안에서 표현의 한계를 겪다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직접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퍼포먼스나 행위로 공간과 사람을 마주하는 거죠. 이렇게 미술을 근간으로 하고 신체미술로 여러 관심들을 표현하고 있어요.”

   
   
   
 

허은선 씨는 이처럼 공간과 몸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기록한 영상을 전시하거나 퍼포먼스 페스티발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예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그는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것일까?
“공간에 묻혀있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요. 공간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있죠. 그 중 슬픔을 자극하고 응어리진 감정을 꺼내는 거죠. 사람들의 마음을 터치해 함께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허은선 씨는 사람들 사이를 막고 있는 벽이 아쉬웠다. 타자가 만들고 자신이 세운 벽, 그래서 그의 주제는 소통이다. 남의 이야기에 온전히 반응하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때 예술로의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저는 예술로 토해내고 관객도 같이 느끼는 소통이죠. 이렇게 예술이라는 신선한 자극으로 색다르게 슬픔을 끌어내는 경험을 나누는 겁니다.”

이런 주제는 지난 해 벨기에에서 보여줬던 퍼포먼스에서 직접 볼 수 있다. 퍼포먼스는 수많은 종이학들이 노란 공간을 하나 둘 채워가며 진행된다.

종이학 하나하나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세계의 곳곳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의 희생자를 상징한다. 예술가는 수많은 사고의 날짜가 기록되어있는 종이학을 실에 매어 하나씩 매달아나가는 것이다.

이 행위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냄으로 상징적인 기억과 기도를 보여주면서 세상의 모든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업이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고 싶은 소외된 현대인들을 위해 진행된 퍼포먼스도 있다. 대나무숲 프로젝트라 이름붙인 소통 프로젝트는 사람들을 불러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대나무숲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가 남들에게 하지 못하는 나만의 비밀을 외치게 한다. 이런 장면들과 소리들은 편집되어 영상으로 남아있다.

리다 씨는 주로 평면작업을 하는 시각 예술가로 수채화와 아크릴을 주된 도구로 작업하는 회화작가이다. 

“저는 불안이라는 감정에 천착하고 있어요. 불안은 불완전함에서 기인하는 감정인데, 모든 존재가 그렇고 또 세계마저도 불완전해요. 그래서 불안은 가장 근본적인 것일 수도 있죠. 또 불안의 양상도 다양해요. 내가 원하는 지점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의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불거지는 불안을 표현하는 것도 저의 관심입니다.”

이렇게 불안을 주제로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리다 씨가 주로 다루는 소재는 뜻밖에도 조용히 광합성을 하며 생태계의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식물이었다. 식물은 어떤 불안을 예술가에게 보여줄까?

“경험은 의식에 남아 기억이 되죠. 그런데 이것들은 온전히 남지 않아요. 시간에 의해 파괴되거나 덧씌워지고 또 왜곡되죠. 저는 의식의 한 부분을 도려내어 가시화해요. 말하자면 우리가 선택한 사물은 기억의 배설물인 셈이죠.”

이렇게 드러난 의식의 부분은 자연스레 존재의 불안을 표현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예술은 이렇게 무거운 배경이 다가 아니다. 편안하게 그의 그림을 즐기는 일이 다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두 예술가가 시각예술을 한다는 점 말고 이색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허은선 씨는 대구 출신으로 2014년, 산호여인숙에 입주 작가로 대전과 인연을 맺었고 대전 남자와 결혼하면서 대전 사람으로 변신했다. 리다 씨 역시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대전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대전으로 터를 옮긴 경우이다. 대전 남자들의 도시선양이라고 할까?

“저에게 대전은 소제동에서 대흥동까지, 여기 원도심 일대에요. 처음부터 그렇게 만났죠. 또 대흥동을 엄청 사랑해요. 그래서 웨딩사진도 대흥동에서 찍었거든요.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매력 있어요. 오래된 도심이 주는 예술적 영감은도 아주 크죠. 이 동네는 빈티지 가구 같은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낡았고 쓸모없어 보여도 멋스러운 매력을 가진. 그래서 더 변하고 있는 대흥동이 아쉬워요.”

대흥동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예술가들이 밀려나고 대신 원룸이 들어서는 현실에 아쉬움을 잊지 않았다.

“저는 결혼하고 처음 대전에 와서는 적응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서울로 다녔어요. 일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이랬던 리다 씨의 몸과 마음 모두를 대전에 정착하게 계기를 마련한 것은 블랭크라는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그룹이다. 블랭크는 20~30대의 젊은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의 플랫폼이다. 모임이 가지는 강제성 같은 것은 전혀 없이 안부를 물어가며 서로의 주제를 나누는 자연스러운 정류장 같은 것이다. 대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힘을 얻은 리다 씨와 허은선 씨는 아예 대흥동에 작업실이자 본부를 만든다. ‘하다한 살롱’의 출발이다.  

이렇게 발을 뗀 ‘허다한 살롱’은 슬슬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여러 예술적인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일단 7월에 이곳에서 소소한 프리마켓을 열 계획입니다. 처음은 각자의 작업실이 필요해서 만났지만 점점 우리의 개성과 사랑을 불어넣어 예술이 자라는 곳이 될 거예요. 우리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죠. 모두 지켜봐야 해요.”

이뿐 아니다. 리다 씨는 대흥동을 기반으로 오픈 스튜디오를 비롯해 많은 전시와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대전문화재단 신진예술가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대만과 유럽에서 퍼포먼스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허은선 씨는 10월에 태국에서 또 다른 예술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계획되고 있는 허다한 예술 활동이 허다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허다한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찾아온 것은 허다한 살롱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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