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우의 환경이야기Ⅱ] 제천간디학교 6학년 박지해 인턴활동가
[염우의 환경이야기Ⅱ] 제천간디학교 6학년 박지해 인턴활동가
염 우 (사)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청주새활용시민센터 관장
  • 김종혁 기자
  • 승인 2023.06.10 0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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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해 인턴활동가. 사진=청주새활용시민센터/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염 우 청주새활용시민센터 관장] 

큰아들 해솔이는 군대에 가 있고, 고3 지솔이는 학교기숙사에 들어갔다. 허전한 마음 가득했던 지난 3월, ‘지해’는 봄날의 햇살처럼 우리의 곁으로 찾아왔다. ‘지해’, 어떻게 이름도 솔들의 앞 글자일 수 있을까?

제천간디학교 6학년 박지해 일반 학교로 친다면 고등학교 3학년이다. 제천간디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통합하여 운영하는 비인가 대안학교이다. 졸업을 앞둔 6학년들은 3달 동안의 사회체험활동을 거쳐야 한다. 일종의 인턴십 과정이다. 사회체험활동을 할 장소(일터)는 학생들 스스로 정한다. 회사일 수도 있고 매장일 수도 있고 청주새활용시민센터와 같은 공익기관일 수도 있다.

제천간디학교는 같은 충북에 있고 선생님들과 친분이 있는 덕에 두어 차례 청주새활용시민센터로 탐방학습을 다녀간 적 있다. 탐방학습을 통해 우리 센터를 알게 된 지해는 사회체험활동을 반드시 이곳에서 하겠다고 맘을 먹었다고 했다. 2월 어느 날 사전답사를 왔고 나와 사무국장과 면담을 하였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예쁘고 야무져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자신의 의지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이 당찬 친구를 거부할 명분은 전혀 없었다. 관장도, 사무국장도, 실무활동가들도 모두 OK였다.

박지해 인턴활동가를 위해 우리 센터가 목적의식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였다. 급여를 줄 수 없지만 점심식사는 챙겨주기(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라 하지 않나?), 학생이 아니라 활동가처럼 대하기(사회체험활동이니까), 가급적 일 많이 시키기(경험을 쌓는 박인활도 좋고 업무량을 더는 센터도 좋고)였다. 좀 더 순화해서 표현하자면 보다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었다.

지해는 모든 것을 잘했다. 밝고 성실하고 활기가 넘쳤다. 또박또박 말을 하였고 의견도 정확하게 표현했다. 응답은 눼~!, 반문은 눼~?, 하지만 크고 확실했다. 시민들에 대한 전화 응대도 차분하고 상냥했다. 웬만한 것에는 움츠러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경우 없이 나대지도 않았다. 꾸며서 나올 수 없는 일상적 모습, 태도와 행동이 바르고 명쾌한 친구이다. 물론 세 달 동안 모든 걸 파악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자해의 역할은 주로 기록 담당이었다. 우리 센터는 체험·교육·회의·전시·이벤트 등 행사가 끊임없기에 잘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행사 사진도 잘 찍고, 회의 결과 정리도 원만히 수행하였다. 언론연재 기고에도 참여하였고 주간회의 때 덤으로 맡긴 칼럼 요약발표도 깔끔하게 완수하였다. 우리 센터는 현수막을 안쓰는 대신 주로 블랙보드를 활용하므로 글씨 쓰는 것도 일이다. 사무국장이 노하우를 특별히 전수해 준 이후로는 글씨쓰기도 그의 몫이었다. 지구의날 기념 ‘쓰레기줄이기 청주시민 실천다짐행사’, 세계 환경의 날 기념 ‘2023 청주시민 환경한마당이’라는 큰 행사를 함께 치렀다. 행사 리플릿을 도맡아 만들기도 하였다. 행사 당일에는 사무국장과 함께 고정된 역할을 맡지 않고 주위를 살펴보고 있다가 필요한 상황에 투입되는 조커 역할을 맡았다.

어느 날 지해가 나에게 말했다. 관장님하고 똑같은 캐릭터가 있어요. 그래? 호빵맨은 아니지, 누군데? 아따맘마에 나오는 아리 아빠랑 같아요. 이런! 내가 얼굴 크거나 동그란 거에 얼마나 민감한 사람인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자신의 최애 캐릭터라고 했다. 병주고 약주기도 할 줄 아는 녀석이다, 다들 비슷하다며 지해 편을 들었다. 비교해 보니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지해가 활동하는 동안 센터에 화룡이라는 또 다른 식구가 생겼다. 화룡이는 센터 주변을 맴돌던 누런색 털을 지닌 흔한 길냥이였다. 어느 날부터 새활용센터에 정주하기 시작하였고 새활용의 ‘활용’을 따서 이름을 ‘화룡’이라 지어주었다. 화룡이 보다 먼저 센터의 손길에 닿았던 다른 누런 고양이가 있었고 그 고양이가 화룡이와 다른 누런 고양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마지막 근무 전날, 찍어 놓았던 사진과 기록 속에 숨겨져 있던 미묘한 무늬와 체중의 차이를 지해의 놀라운 관찰력과 분석력으로 밝혀낸 것이다.

지해는 근무 태도도 훌륭했다. 뒤늦은 코로나19 감염으로 자가격리를 했던 1주일을 제외하고는 만근이었다. 인턴 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두 시간 지각을 하였다. 이사 준비를 하느라 세탁기를 돌렸는데 배수관이 잘못되어 방안에 홍수가 났기 때문이었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가장 큰 수해였다고 한다. 양해를 구하고 늦은 것이니 지각이 아니라고 해 주었다. 물 퍼내고 수습하느라 고생은 했지만 감전 등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으니 불행 중 다행스런 일이다.
 

청주새활용시민센터 활동가들과 함께한 (가운데)박지해 인턴활동가. 사진=청주새활용시민센터/굿모닝충청

지해가 인턴으로 활동하던 3개월, 우리 센터는 실무활동가 한 명이 결원인 상태였다. 고등학생 인턴활동가는 업무적 측면에서 그 공백을 충분히 채워주었을 뿐 아니라,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던 센터의 공간 곳곳을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변화시켜 주었다. ‘몇 개월 후면 졸업인데, 우리 센터의 상근활동가도 채용해 버릴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과 진로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에, 지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뺏으면 안되겠다 싶어 생각을 고쳐먹었다.

조촐한 송별회식을 했다. 함께 고기도 먹고 카페에도 갔다. 하지만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짓을 이번엔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무거워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근무 마지막 날 담임선생님이 와서 지해의 실습 태도애 대해 물어보았다. 유급시켰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농담이었지만 솔찍히 더 잡아두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대신 ‘휴먼카이드’라는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지해 같은 선한 친구들이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더 많이 신뢰하고 선한 영향력을 넓혀가며 선한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지에 ‘지해, 땅처럼 깊음, 바다만큼 넓음, 다 잘했다.’라고 적었다.

새활용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충청도 사투리 이야기, 화룡이에 관한 이야기, 드라마 나쁜 엄마에 대한 이야기까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미래 사회활동가와의 기대에 찬 대화였는지, 딸래미 붙잡고 늘어놓은 소소한 수다였는지 모르겠다. 지해와 함께 했던 3개월은 40~50대 업사이클 활동가들의 마음을 흔들 만큼 소중했던 추억으로 쌓였다. 오늘 환경이야기 주제를 정하느라 고민하는 걸 보더니 사무국장은 내게 지해에 대한 이야기를 쓰라고 권했다. 그래서 썼다. 그런데 지해야, 나보다 사무국장이랑 더 친했었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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