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금강 라이딩] ②고도(古都) ‘백제의 길’
[임영호의 금강 라이딩] ②고도(古都) ‘백제의 길’
  •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 승인 2016.06.03 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강은 한강, 낙동강에 이어 우리나라의 3대 강이다.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대청호를 거쳐 청주, 대전, 세종, 공주, 논산, 부여, 서천, 군산만을 경유하여 서해로 흘러간다. 나는 지난 14일 1박2일 일정으로 금강을 여행하기 위해 완행열차를 타고 서대전역에서 군산 대하 역으로 가서, 금강하구에서 대청호까지 자전거로 라이딩을 했다.

 

부여에서 맞이한 아침

둘째 날, 6시 10분 숙소에서 나왔다.
하지(夏至)가 가까워져서인지 해가 일찍 떠 있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사방이 온통 침침하다. 그래도 미세먼지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얼마 가지 않아 백제보가 보였다. 계백장군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계백장군을 연상해보려 했지만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백제보

백제보의 풍경은 역시 저녁이 최고다. 여기는 주로 밤 마실을 오는 곳이다. 해가 서산에 걸릴 때쯤 금강은 노을에 흥건히 적셔지고, 전깃불이 하나 둘 들어오면 황홀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빛은 형이상학적이다. 이미지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다.

창강서원이 풀 섶에 홀로 서 있었다.
백제보에서 아래로 10분정도 달리니 강가 작은 마을에 서원하나가 서 있다. 창강서원(滄江書院)이다. 창(滄)은 큰 바다라는 뜻으로 창강은 큰 바다와 같은 강이라는 의미다. 임진왜란 때 절충장군을 지낸 황신(黃愼, 1560~1617)을 모신 서원으로 유생들을 가르치던 작은 사립학교였다.

이 숭고한 뜻도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어 정치세력의 근거지가 되고 자기문중의 힘으로 악용되어 그 폐단이 극심해졌다. 이에 대원군은 집권하자마자 전국의 서원들을 일부만 제외하고 모두 철폐했다. 학식 자체는 높으면 좋은 것이나, 비뚤어진 마음으로 학식을 이용하면 이는 사람을 해치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시대에서도 그랬다. 율법학자들은 유대인의 기둥이었다. 그들은 본래의 사명을 잃고 잔치자리에서 회당 높은 자리를 앉거나 장터에서 인사 받으려고만 했다.

창강서원

서원을 돌보지 않은지 꽤 되는 모양이다. 시계는 하루 종일 11시 10분을 가리키고, 서원마당에는 잡초가 난장판을 벌리고 있다. 민선시대 단체장들이 할 일이 많아서 인가, 20년 전 관선시대 군수들의 흔적만이 간간이 눈에 띈다.

공주보

공주보까지는 30km. 긴 거리다. 1시간 반은 가야 한다. 넓은 평야를 달리는 기분이다. 새들도 아침이라 바쁜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소란스럽다. 멀리서 이따금 꿩 우는소리가 들린다. 꿩은 이때가 산란기일 것이다. 어린 시절 고향 산골에 살 때 보리밭에서 주운 꿩알을 가지고 환호하며 집으로 달려오던 형이 생각난다.

금강변에 핀 양귀비꽃

양귀비꽃은 어디서 왔을까? 정말 군초일화(群草一花)다.
그 너른 들판에 단 한 송이 피었을 뿐인데 나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양귀비에 몸과 혼까지 빼앗긴 당나라 현종도 한때는 현명한 군주였었다. 충직한 신하 한휴(韓休)를 모함하자 그는 “나는 그 자 때문에 몸이 말랐어도 천하는 살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황제가 양귀비의 미색에 취해 일거에 무너진 것이다. 지금 그 양귀비꽃을 보니 가히 혼절할만하다.

긴 고개를 넘었다. 연미산인가? 국도 옆 자전거 도로는 소음 천지이고, 대형차라도 지나가면 정신이 아득하다. 고갯길은 힘이 들었지만, 내리막의 짜릿한 맛도 있었다. 색다른 경험이라 좋았다. 마치 산꼭대기에서 금강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고마나루가 웅진이다.
공주보 근처는 솔밭이다. 갖가지 모양의 소나무가 서 있다. 고마나루 솔밭이라 한다. 공주의 옛 지명은 고마나루로, 곰나루라는 뜻이다. 고마(雇馬)는 곰의 옛말이다. 고마나루는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다.

곰사당

전국에 딱 하나 있는 것이 여기 솔밭에 있다. 조선시대 향교의 대성전을 본떠 만든 곰사당이다. 곰사당의 소재는 공주시 웅진동이다. 대부분의 사당이 성현들을 모시고 있는데 반해, 이곳은 곰을 모시고 있다.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처녀곰과 나무꾼은 서로 사랑하여 자식을 낳고 살았는데, 어느 날 나무꾼이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어미 곰은 새끼 곰들과 죽음을 택한다. 삶의 목적인 희망이란 화살이 꺾였기 때문이다.

곰에 대한 제향은 매년 정기적으로 치러지는데, 개인 제향은 금지되어 있고 관에서 주관한다. 곰에 대한 토테미즘은 백제시대부터 있었다. 솔밭에는 금강의 수신에 제사를 올리는 장소인 웅진단(熊津壇)도 있다.

곰 사당에서 조금 더 시내로 들어오니 자전거 길 바로 옆 웅진 동내에 백제 25대 무령왕릉이 있다. 안내원은 9시가 되지 않아 입장할 수 없다고 했지만, 갈 길이 멀다며 한사코 고집하니 관람을 허락해 주었다.

무령왕릉

무령왕릉이 없으면 백제도 없다.
무령왕릉은 1971년 처음 발굴되었다. 공주 송산리 귀족들의 공동묘지인 고분군내에 7호분이다. 벽돌무덤 형태로 나직막한 산기슭의 남쪽 경사면에 있다. 1997년 이후로 영구보존을 위해 관람을 금지시키고 있다. 도굴이 안 된 무령왕릉은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무령왕릉이 없었다면 백제의 예술품이나 국제관계는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공산성

다시 자전거를 재촉하여 공주시내로 들어왔다. 저 멀리 공산성(公山城)이 보인다. 공산성은 금강 가에 있는 성으로 백제가 한성에서 고구려에 쫓겨 남하하면서 약 60년간 수도를 지킨 방벽이다. 이 성은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 이후에는 공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원래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돌로 개축하였다. 공산성에 올라 금강을 바라보면 그 또한 일품이다.

금강철교

금강철교에 공주 갑부 김갑순이 어른거린다.
대전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 북쪽으로 가야 한다. 강의 남과 북을 연결해 주는 다리가 513m의 금강철교(錦江鐵橋)다.

서울에서 목포로 가는 국도 1호선 상에 있는 다리다. 이 다리는 1933년에 준공되었다. 당시에는 최첨단 공법을 적용하여 건설하였고, 한강 이남에 있는 도로교로는 가장 길이가 길었다.

다리의 형태는 한강철교와 비슷하게 생겼다. 1932년 충청남도 도청 소재지를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공주군민들을 위해 위로차원에서 건설되었다. 2006년에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지금은 자전거 도로와 일방통행로로만 사용된다.

공주 갑부 김갑순

도청소재지를 대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공주 갑부 김갑순(1872~1961)이다.

김갑순은 도청을 대전으로 옮긴다는 고급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 1930년대 대전 시내 땅의 3분의 2를 사들였다. 대전으로 이전할 때 대전 충남도청 청사 부지 전체를 기부했고, 인근에 있는 자신의 땅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것은 불문가지다. 오늘 날 유성온천 개발도 그가 지금의 유성관광호텔자리에 여관을 지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부동산 투기의 원조이다.

김갑순.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공주 감영의 관노로 시작하여 아전을 거쳐 공주의 군수까지 지냈다. 얼마나 처세술이 좋았던지 고종이 원래 이름인 순갑이라는 이름 대신에‘갑순’이라는 이름을 하사했을 정도다. 그가 죽은 지 50년이 지난 지금 그 많던 땅도, 그 많던 자손도 이 땅에서 보이지 않는다.

최대의 선사유적지 석장리도 금강변에 있다.
이제 금강 상류 쪽이다. 세종 시로 들어가기 전, 금강천변에 석장리 박물관이 있다. 실내는 물론 야외에서도 움막, 주먹도끼 등이 전시되어 있어 심상치 않은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곳은 남한 최대의 선사유적지로 금강 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만년에서 전의 문화유산이다.

이 유적은 1964년 미국인 알버트 모어 부부가 홍수로 무너진 금강 변에서 발견되었다. 그해 손보기 교수(1922~2010)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시작되어 무려 30여 년간 발굴이 진행되었다.

창벽 일몰

창벽에서 본 일몰의 금강은 전설이다.
자전거의 속도는 도로의 경사면보다 바람에 의해 더 좌우된다. 이제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위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 갈대의 고개가 아래쪽을 바라본다. 20분 쯤 더 가니 창벽(蒼壁)이 보인다.

창벽 위 산 정상은 사진작가들에게 가장 유명한 일몰 장소다. 태양이 금강 위로 떨어질 때 위에서 보는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창벽 아래쪽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어씨네 민물장어집이 있다.

세종 한두리대교

한참을 달리니 세종보와 함께 고층아파트들이 만든 새로운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세종시다. 세종보는 한글 자음과 측우기를 형상화해서 만들었단다. 한참을 바라봐도 그 의미가 도무지 통하지 않는다. 보의 설치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참 많다. 물을 저장하여 농업용수나 공업용수로 쓸 수도 있지만, 흐르는 강을 막는다는 것이 생물의 다양성이나 수질오염 등 강의 건강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종보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합강 공원이 나온다. 충북음성군에서 시작하는 청주시의 중심 물줄기인 미호천과 금강본류가 합수되는 지점이다. 멀리 합강정(合江亭)이 보인다. 여기는 오토캠핑장으로 유명하다.

점심에 이모네 밥상엔 행복이 있었네.
이제 12시가 다 되어간다. 자전거 도로 옆 부용산업단지 인근에 라이더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 있다. ‘이모네 밥상’이다. 우리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의 일종인 ‘짜글이’를 시켜놓고 주인 아주머니의 끊이지 않는 구수한 입담을 즐겼다. 주인아주머니는 4년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유쾌해졌다. 삶이 행복하다는 증거인가? 신은 회초리가 아니라 시간으로 인간을 달련시키는가 보다.

로하스길

식사를 마치고 달리기 시작하니 금세 철길이 나온다. 매포역 부근의 시멘트 사일로다. 다시 신탄진 철교를 향해 달린다. 그 옆에는 현도교가 보인다.

여기서 위쪽으로 30분 쯤 올라가면 금강의 출발지인 대청댐이 나온다. 산책길과 자전거 길을 분리해서 만든 대청호 로하스(LOHAS)길은 금강의 아름다움을 맘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갑천변 스카이라인

금강의 상류, 대전 갑천에 오다.
대전을 향해 100m가량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갑천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길과 마주한다. 나는 대전천이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이제 대전 도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신탄진 이후 상류는 갑천이다. 대전천과 유등천이 하나로 모여 하류에서 갑천이 된다.

지금 대전은 대전천, 유등천을 거쳐 갑천의 시대다. 갑 천 주변으로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고 경관 또한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집에 오니 오후 4시다. 찍힌 거리를 보니 어제 오늘 200km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