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얼굴 1
[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얼굴 1
정진명 시인, 우리말 어원 고찰 연재 ‘7-얼굴 1’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4.03.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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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굿모닝충청 정진명 시인] 1997년에 제가 한국 최초의 어원사전 편집을 마치고 학민사에서 출판하려고 상의했ᅌᅳᆯ 때 김학민 사장이 잠시 보류하자고 한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신체어나 이목구비 같은 낱말의 뿌리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뒤늦게 숙제하는 마음으로 정리하려는데, 막상 그간 밝혀진 자료를 살펴봐도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은 없네요. 그래서 소박하더라도 제 생각을 정리해 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목구비는 눈코입귀를 말하는데, 이것에 관해 말하기 전에, 그것이 달린 머리통 전체를 말하는 것이 순서일 듯합니다. 먼저 ‘얼굴’입니다.

‘얼굴’은, 원래는 몸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18세기 들어서 '낯'과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덕분에 ‘낯’은 낮춤말로 내려앉았죠. ‘얼굴’이 본래 낯이 아니라 몸을 나타내는 말이었다면, ‘얽+울’의 짜임이 한눈에 보입니다. 굳이 ‘얼+굴’로 나누어 ‘얼’과 ‘굴’의 뜻을 따져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보자면 뼈대를 가리키는 말로 ‘모습’을 제대로 표현한 말입니다. 허우대와 비슷한 뜻이죠. ‘울’은 명사화 접미사로, ‘방울’의 ‘울’이 ‘올’입니다.

이번에는 ‘얼굴’ 때문에 낮춤말로 떨어진 ‘낯’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낯’은, 머리 중에서 얼굴 부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낯짝’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낯이 나타나는 부분(쪽, 짝)이라는 뜻이죠. 그러니 ‘낯짝’의 대립어는 얼굴을 가리는‘숱’입니다. 머리는 얼굴인 ‘낯’과 머리카락이 뒤덮인 ‘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낯은 ‘대낮’ 같은 말에서 보이는 ‘낮’과 같은 뿌리를 지닌 말로 추정됩니다. ‘낯’은, ‘숱’과 대비되는 환한 곳을 뜻합니다. ‘낯’을 아이누말에서는 ‘nota’이고 길약말로는 ‘netf’여서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조어를 재구하면 ‘낟’이 됩니다. 이것이 ‘낮’을 거쳐 ‘낯’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머리는, 동물은 ‘마리’라고 하는데, 같은 어원에서 온 말입니다. ‘말’은 우리말에서 크거나 중요하거나 높다는 뜻입니다. ‘말잠자리, 산마루’ 같은 말에서 볼 수 있죠. 머리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높고 중요한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멀’의 조어는 ‘먿’으로 재구되는데, 이것은 ‘맏’과 같습니다. ‘맏아들, 맏딸’ 같은 말에서 보듯이 가장 위라는 뜻입니다. 아이누말에서는 머리카락이 ‘moru’이고, 가야의 지배층이 쓰던 드라비다어로는 뇌가 ‘mūḷai’여서 역시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머리의 모양이 둥글어서 ‘두루마리, 달무리, 도꼬마리’ 같은 말에서 보듯이 ‘말다’(捲)의 어근 <말>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된 말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mVl>형으로, <mVŋ>이 자음 교체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제 이목구비의 본때 자리로 가보겠습니다. 먼저, 얼굴 한복판에 있는 코는 뾰족하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말로 ‘활고자’, ‘구지뽕’, ‘곶’ 같은 말이 있습니다. 활 ‘고자’는 활의 양쪽 끝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지뽕은 가시가 달린 뽕나무를 말합니다. 이 경우 ‘구지’는 가시라는 뜻이고, 가시는 뾰족하죠. ‘곶’은 해안에서 바다로 뻗어나간 길쭉한 땅을 말합니다. 이것이 ‘고’가 아니고 ‘코’인 이유는 ㅎ종성체언이기 때문입니다. ‘고ㅎ’가 옛말이었습니다. 이유 없이 ㅎ이 붙는 말입니다. 얼굴 한복판에 우뚝 솟아서 뾰족하게 보이기에 붙은 말입니다.

귀는 간단합니다. 구멍의 옛말이 ‘구시’인데 이것이 ‘굳’이 되었다가 ‘귀’로 정착한 것입니다. 구멍이 뚫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죠. 또 귀는 가장자리라는 뜻도 있습니다. 귀가 얼굴 복판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귀는 구멍이라는 뜻과 얼굴의 가장자리에 붙었다는 뜻이 동시에 들어있는 말입니다.

‘눈’은 길약말로는 ‘nyunü’이고, 아이누말로 ‘보다’는 ‘nukal’이어서, 우리말의 ‘눈깔’과 똑같습니다. 가야의 지배층이 쓴 드라비다말로 점이나 열심히 보는 것은 ‘nuṉi’이고, 한번 보는 것(一瞥)이 ‘nõkkal’이어서 ‘눈깔’과 거의 같습니다. 대체로 비슷한 말을 썼습니다. 그렇지만 말뜻은 알아내기 참 힘든 말입니다.

눈의 특징은 우묵하다는 것입니다. 새싹이 나오는 곳도 눈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오목하다가 싹이 밀고 나오면서 볼록해지죠. 이렇게 오목하면서도 동시에 볼록한 특징을 지닌 존재가 ‘눈’입니다. 그런데 눈이 다른 부위와 특별히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가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다른 부분은 얼굴에 붙어있을 뿐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반면에 눈은 자유자재로 움직이죠. 이런 특징을 말로 나타내면 어떻게 될까요? ‘논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본다는 뜻과 이어진 말은 ‘노리다, 노려보다’가 있고, 움직인다는 뜻과 이어진 말은 '논다'입니다. 어근 ‘놀’이 ‘눈’으로 발전한 형태로 추정됩니다. ‘논’과 ‘눈’은 정말 닮았죠? 얼굴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눈’이 된 것 같다고 한번 상상해 봅니다.

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말의 다른 말과 전혀 이어지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입의 특징은 음식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성과 관련이 있는 동작 언어를 살펴보면 ‘입다’가 있습니다. 사람이 옷을 입는 것이나 몸이 음식을 입는 것이나 다를 게 없죠.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누어에서는 ‘먹다’를 ‘ipe’라고 합니다. ‘읇다’도 ‘입’의 관련어로 보입니다.

‘입’의 사투리는 아주 다양한데, ‘굴레, 아가리(아구, 아갈빠리), 주둥이’로 나타납니다. ‘아가리’는 입을 나타내는 만주말 ‘aŋgga’와 같은 어근형이며 ‘굴레’는 입을 뜻하는 일본말 ‘kuti’와 대응합니다. 일본말 ‘kuti’는 우리말의 ‘구덩이, 굴’과 같은 원형 어근입니다. ‘입’은 원형 어근 <kVp>가 <tVp>와 <čVp>를 거쳐 <ip>으로 굳은 것으로 이보이는데, 이에 따르면 <입>은 둥근 모양에서 나온 말로도 보입니다.

‘아가리’는 ‘악+아리’의 짜임인데, ‘아리’는 축소사 ‘아지’의 변형이니, ‘악’이 입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악쓰다’는 말에도 ‘악’이 있습니다. ‘억지’도 ‘악’의 모습입니다. 억지 부리는 것도 결국은 말이 안 되는 것을 관철시키려는 것이니 말로 하게 되어 입을 좋지 않게 말하는 것입니다. ‘윽박지르다’의 ‘윽’도 같은 뿌리입니다.

입안에는 여러 가지가 또 있습니다. ‘혀’는 잡아당긴다는 뜻입니다. 혀가 입 밖으로 길게 나올 수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썰물’은 15세기 표기로 ‘ᅘᅧᆯ믈’입니다. ‘ᅘᅧ다’의 꾸밈꼴이죠. ‘ᅘᅧ다’는 잡아당긴다는 뜻인데, 나중에 ‘켜다’로 자리 잡습니다. 그러니까 썰물은 ‘누군가 잡아당겨서 끌려가는 물’이라는 뜻이죠. 그 누군가가 누굴까요? 달입니다. 이런 말로 보면 우리 조상들은 아득한 때부터 밀물과 썰물이 달의 작용이라는 것을 안 것 같습니다. 원시인을 얕잡아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혓바닥’은 혀가 음식에 닿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코끼리의 코처럼 음식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합니다. ‘바닥’은 ‘받+악’의 짜임인데, ‘받’은 

‘받다’의 어근이고, ‘악’은 ‘벼락, 가락’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은 꼬리말(접미사)입니다. 이것이 혀의 본래 쓰임에 가장 적합한 풀이일 텐데, 맨 밑을 뜻하는 ‘바닥(底)’이 있어서 이것으로 풀어도 되겠습니다. 이때의 ‘받’은 곳(處)을 나타내는 우리말입니다. ‘바탕’도 마찬가지이죠. ‘바탕’은 ‘밭+앙’의 짜임이죠. ‘앙’은 ‘마당, 봉당’에서 보이는 접미사입니다. 어느 쪽으로 풀어도 뜻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 두 말의 뿌리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죠. ‘받는’ 것이나 밑을 뜻하는 ‘바닥’이나 모두 마찬가지 뿌리입니다.

입안에는 이빨이 있죠. ‘앞니, 대문니, 송곳니, 어금니’가 그것입니다. ‘앞니’는 앞에 있다는 뜻에서 붙인 말입니다. 앞니 중에서 위아래에 있는 두 개씩 큰 이빨은 ‘대문니’라고 하죠. 한 집안의 대문처럼 떡 버티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송곳니는 뾰족해서 딱딱한 것을 찍거나 깨뜨릴 때 쓰기 좋은 이빨이죠. 따라서 송곳니의 ‘송곳’은 뾰족하다는 뜻이 있어야 합니다. 뾰족한 것은 가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송곳’의 ‘송’은 뾰족하다는 뜻입니다. ‘송, 손, 솔’ 같은 모습으로 쓰이죠. 『훈몽자회』에 송곳이 ‘솔옷’으로 나와서, 이를 또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오솔길’의 ‘솔’이 가늘다 뾰족하다는 뜻입니다. 전라도에서 많이 쓰는 말 중에 ‘솔찮다’는 말이 있는데, 이 ‘솔’이 ‘적다, 가늘다’는 뜻입니다. ‘곳’은 쇠를 뜻하는 말입니다. ‘쇠끝’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못처럼 뾰족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끝’이 ‘곳’의 변형입니다.

‘어금니’는 ‘엄니’라고도 하는데, ‘엄’은 크다는 뜻입니다. 『훈민정음언해』에 ‘엄’으로 나오고 『훈몽자회』에도 ‘牙:엄 아’로 나옵니다. 따라서 ‘어금니’는 ‘엄니’에 ‘ㄱ’이 끼어든 것입니다. 이것은 ‘개울→개굴창, 모래→몰개’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비교언어학으로 보면 아주 재미있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누어로 어금니는 ‘ikui-nimak’이어서 비슷하고, 터키어로는 ‘뒤쪽’이 ‘arka’여서 비슷합니다. 아이누어에서는 기역이 끼어든 까닭을 알 수 있고, 터키어에서는 어금니가 가장 뒤쪽에 있는 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말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들었습니다. 여러 언어의 자취가 녹아있는 셈입니다.

아마도 코끼리의 이빨도 상아(象牙)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牙는 큰 이빨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치(齒)와는 구별되는 특별한 이빨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중국 민족도 어금니를 큰 이빨로 인식한 모양입니다. 그 형태상의 특징이 말에 잘 반영되는 것은 민족의 특성을 떠나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특성으로 작용한 모양입니다.

‘입술’은 ‘입+시울’의 짜임입니다. ‘시울’은 활시위에서 보이는 ‘시위’로 바뀝니다. 어떤 것을 둘러싼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입술의 경우 이 ‘술’을 ‘살’로 볼 수도 있습니다만, 살보다는 입을 둘러싼 것이 더 정확한 의미여서 거기에 대응하는 말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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